BL 드라마ㅣ취향존중시대, 수면 위로 떠오른 소년 로맨스①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2.02.15 09:07
'시맨틱 에러', 사진제공=왓챠


MZ세대는 개성을 중시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데 거침이 없다. 그래서 오늘날을 일컫어 '취향 존중 시대'라고도 부른다. 특이 취향이라 할지라도 이를 드러내는데 거리낌이 없고, 오히려 당당하게 소비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비 방식은 최근 문화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관찰된다. 숨어서 보거나 호기심만 갖고 쉽게 시도하지 못했던, 일명 마이너물로 취급되던 장르 일부가 대중화의 급물살을 탔다. 그 중에서도 메이저로 변화의 조짐을 보이는 장르가 있다. 바로 BL이다.


BL이란 ‘Boy’s Love’의 약자로 남성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작품을 속칭한다. 언뜻 보면 LGBTQ나 퀴어와 비슷하지만 좀 더 장르적이고 소비적인 성격이 강하다. 이성 간에는 볼 수 없는 동성간의 섬세한 러브라인과, 편중된 시선 없이 모든 등장인물에 이입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각광받고 있다. 주요 소비층은 10~30대 여성으로 일본, 태국, 대만 등 일부 아시아권에서 이미 수년 전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 일본에서 태동한 BL은 웹툰과 웹소설로 먼저 인기를 끌었으나, 최근 보는 콘텐츠가 각광받으면서 드라마로 활발히 소비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2020년 더블유스토리와 에너제딕서 합작으로 웹드라마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를 제작하며 한국 첫 BL물을 선보였다.


'너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는 공개와 동시에 중국 웨이보의 K-드라마 부문 1위, 일본 라쿠텐 TV의 종합드라마 부문 1위를 휩쓸었고, 영화 편은 넷플릭스에도 입점됐다. 여기에 영화제까지 초청받는 등 첫 한국 BL작으로 국내외 반향을 일으켜 단번에 업계 관심을 이끌었다. 이후 '새빛남고 학생회', '위시유 : 나의 마음 속 너의 멜로디', '미스터 하트', '류선비의 혼례식', '유 메이크 미 댄스' '컬러러쉬' 시리즈, '나의 별에게' 등의 한국 BL물이 쏟아졌고, 작품들 중 대다수가 해외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며 신한류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다.


'새빛남고 학생회', 사진제공=와이낫미디어


여러 BL물을 서비스 중인 OTT 플랫폼 왓챠(WATCHA) 측은 "2030 여성들이 BL 콘텐츠의 주요 시청층"이라며 "BL을 소비하는 시청층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 과몰입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영상 콘텐츠 소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콘텐츠에 대해서 SNS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하고, 해석하고, 2차 콘텐츠를 만들고, 새로운 팬을 끌어오는 영업력까지 가지고 있다. BL 소비층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확대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 설명했다.


인기 웹드라마 '일진에게' 시리즈 등 국내 웹플랫폼계 큰손으로 불리는 종합 콘텐츠 사 와이낫미디어에서도 지난해 BL 드라마를 내놨다. 게임 IP를 원작으로 한 '새빛남고 학생회'다. 본 작품은 왓챠에서 TV드라마 부문 1위를 7번 기록하고, 일본 Abema TV에서도 한국드라마 부문 3주 연속 1위에 올랐다. 와이낫미디어 장우경 이사는 "'새빛남고 학생회'를 제작하기 전 이미 플랫폼 방영 판매가 완료됐다"며 "해외에서 먼저 반응을 보였다. 여러 해외 플랫폼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한국 BL에 대한 니즈를 느꼈다. 그들이 원하는 수요를 파악하다 보니 한국 BL에 대한 해외 관심이 높은 걸 알게 됐다. 저희의 경우는 자사 콘텐츠의 기조를 유지한 학원물로 베이스를 하되, 주제를 확장할 수 있는 콘셉트로 잡았다. 소프트한 BL로 방향성을 짜고 마니아보단 대중성 있게 가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 콘텐츠가 기존 아시아권 BL물과 단숨에 견줄 수 있던 경쟁력도 바로 이것이다. 대개가 소프트한 장르로 10대부터 세대 접근이 폭넓고, 처음 BL물을 접하는 과정에서 부담으로 느낄 높은 수위가 없다. 특히 BL물에선 선이 곱고 예쁘장한 미소년을 선호하는데, 한국 BL물에선 어린 신인배우나 아이돌 출신들이 주역을 맡아 이 같은 기대치를 잘 충족한다. 1~2년 사이 BL물에 대한 출연배우들의 시선도 많이 변화했다. 과거 이미지가 편향될까 출연을 꺼리던 것과 달리, 국내외 팬덤을 공략할 기회의 수단으로 보고 있다. 실제 강인수, 한세진, 장의수 등 다수의 BL물에 출연한 배우들이 특히 해외에서 두터운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나의 별에게', 사진제공=에너제딕컴퍼니, 에이치앤코


BL물 소비층은 10~30대 여성이 확고한데, 사실상 아이돌과 마찬가지로 '팬덤'의 소비 방식을 보인다. 팬층의 충성심이 높고, 지갑도 잘 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BL물은 퀴어 코드라기보단 팬픽에서 진화된, 팬덤이 아이돌을 소비하는 방식에서 발전된 경향이 있다. 기존 퀴어 코드라기보다는 새로운 소비 문화라고 봐야 한다"며 "소비층 충성도가 높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대중을 상대하지 않고 팬덤만 짚어도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왓챠, 넷플릭스 등 OTT에서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왓챠에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한 '새빛남고 학생회', '유 메이크 미 댄스' 등의 반응에 힘입어 오리지널 BL 시리즈 '시맨틱 에러’를 오는 16일 선보인다. 웹소설, 웹툰, 애니메이션 등으로 검증된 슈퍼 IP로, 주연배우는 아이돌 출신인 크나큰 박서함과 동키즈 박재찬이 맡는다. 왓챠 측 관계자는 "'새빛남고 학생회' 등 기존에도 다양한 BL 콘텐츠를 서비스하면서, 확실한 팬층이 있고 유입에 대한 기대효과가 높다는 걸 인지했다. 특히 '시맨틱 에러'는 원작이 탄탄해 오리지널 콘텐츠로 영상화했을 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만하다고 판단했다. 왓챠의 비전은 '모두의 다름이 인정받고 개인의 취향이 존중받는, 다양한 세상을 만들자'이다. 작품 자체의 매력과 더불어 왓챠의 비전을 잘 반영하는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편성했다"고 밝혔다.


'시맨틱 에러'를 비롯해 올해 상반기에만 '첫사랑만 세번째', '겨울 지나 벚꽃' 등 여러 신작이 공개된다. 새 작품에 대한 국내외 반응도 벌써부터 심상치 않다. 지난 11일 첫회를 공개한 '첫사랑만 세번째'는 공개와 동시에 일본 라쿠텐TV에서 1위를 기록했다. 즉각적인 반응이 좋다보니 업계에서도 한국 BL물의 전망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제작사들은 입을 모아 "한국 BL 콘텐츠의 포텐셜은 높다"고 분석했다. 한 제작자 관계자는 "일본의 경우엔 더 대중화된 BL 콘텐츠가 많다. 이런 사례를 보더라도 태동기인 한국 BL 장르는 앞으로 더 대중적인 장르 문화로 발전할 가능성 높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 대중화가 가속화된다면 그 파급력은 더 상당해질 것이라고 본다"고 봤다.


허나 웹드라마 형식의 작은 규모로 만들어지다 보니, 퀄리티 면에서는 기존 한국 TV채널 드라마에 비해 아쉽다는 평가도 적지않다. 장르 특성상 출연진도 신인만 기용하다보니 연기력 측면도 다소 아쉬운 작품들이 많다. 한국 BL물이 보다 대중화 되려면 이 같은 분위기를 환기할 콘텐츠가 필요한 상황이다. 현재로선 BL물로는 자본이 꽤 투입된 '시맨틱 에러'가 새 흐름을 이을 작품으로 기대되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한국에서 BL물이 대중화되려면 독보적인 큰 콘텐츠가 하나 나와야 한다. 메이저를 뚫고 나올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가능하다. 지금으로썬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동방 상승 효과를 기대할 만한 퀄리티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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