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는 없다[광화문]

머니투데이 양영권 사회부장 | 2022.02.15 05:00
메타(페이스북)가 운영하는 메타버스 플랫폼 호라이즌 월드와 호라이즌 베뉴에 '퍼스널 바운더리'라는 정책이 도입된다는 뉴스가 나왔다. 메타버스 내에서 아바타 사이의 거리가 최소 1.2m는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다른 아바타가 개인 공간을 침범하는 것을 막아 사이버상의 성범죄를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다.

메타버스 아바타에 대한 스토킹이나 성추행을 범죄로 취급할지 논란이 있지만 이는 그 자체로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바타가 성추행을 당할 때 현실의 인간이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언어학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바타라는 '기표'는 현실의 인간이라는 '기의'를 만나 하나의 기호가 된다. 기표와 기의는 자의적으로 결합하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분리할 수 없게 되고, 어떤 면에선 기표가 우위를 점한다. '태극기'라는 기표가 훼손당했을 때 국민이 갖는 분노를 생각하면 된다.

스토킹이나 성추행뿐 아니라 혐오·차별적인 발언이나 아바타 자체에 대한 명예훼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실의 인간과 1대1 매칭이 되는 아바타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쉽다. 로지, 루이, 김래아라고 이름 붙여진 가상인간에 대해서도 성추행이나 명예훼손 등의 범죄 피해자성을 인정할지까지 나아가면 머리가 아파진다.

메타버스는 가상세계, 또는 초월세계라고 번역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의사소통 체계이다. 자신의 아바타로 이곳에 입장해 회의를 하고 물건을 사고 제품을 홍보하고 다른 아바타들과 유대관계를 갖는다.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의사소통을 한다는 점은 기존 전화나 인터넷, VOD, 홈쇼핑 등과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은 현실과 흡사한 3차원 공간에서 이뤄진다는 점이다. 방대한 정보를 빠른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5G(세대) 디지털 환경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데이터의 양(量)은 곧 질(質)이다. 처리 가능한 데이터 용량이 늘어나면 시각적인 것을 넘어 촉각과 후각 등 다른 감각까지 재현할 수 있다. 메타버스를 통해 우리의 의사소통의 질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메타버스는 창조가 아니라 재현이라는 데서 현실의 문제들이 개입한다. 감각적인 공간을 재현하는 것은 데이터 처리 기술만 뒷받침한다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제도를 도입하는 데는 정치가 소환된다. 메타버스 내의 질서를 유지하는 권력을 분배하는 것이 곧 정치이다. '퍼스널 바운더리'의 사례는, 시스템 운영자의 입장에서 범죄로 규정되는 행위를 사후 처벌하기보다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을 택하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차단 대상을 단순히 현실에서의 불법적인 행위에 한정할 것이냐, 정치적 올바름(PC)에 해당하지 않은 것이나 비윤리적인 언행까지 포함할 것이냐로 논의는 확장될 것이다. 아바타의 성추행을 금지해야 한다는 데는 많은 이들이 동의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바타의 동성애 반대 발언이나 외도 등에 대한 생각은 갈릴 수 있다.


이미 메타버스 내 가상 부동산에 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있고, 메타버스 내의 사회적 관계도 개인들의 자산이기 때문에 제도 하나하나가 곧 현실 인간의 재산과 정서에 영향을 준다. 현실세계의 사법기관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 경찰청과 법무부는 이미 메타버스 내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여성가족부, 국가인권위원회, 국세청 등 다른 국가기관도 곧 개입에 나설 것이라고 예언해 본다. 메타버스 운영자나 현실 당국에 대항해 메타버스 안팎에서 시위가 벌어질 날을 상상하는 게 그냥 공상일 수 없다. 사회부장 이름을 달고 이런 디지털 세상에 대한 칼럼을 쓰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메타버스의 메타(Meta)가 의미하는 '가상'이나 '초월'은 더이상 없다. 세계(Universe)는 초월할 수 없고 '연장(Extension)'될 뿐이다. '익스텐버스(Extenverse)'라는 조어가 더 어울린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유토피아는 불가능한 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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