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럴해저드'에 관대…과도한 소비자보호, 블랙컨슈머 양산"

머니투데이 대담=이학렬 금융부장, 정리=박광범 기자, 사진=이기범 기자 | 2022.02.14 05:05

[머투초대석]안철경 보험연구원장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안철경 보험연구원장은 저금리, 저성장, 저출산(저출생), 고령화 등에 따라 대표적 레드오션(경쟁이 치열한 시장)으로 꼽히는 보험산업의 미래 생존 전략과 관련해 정부가 보험산업을 사회안전망 구축을 위한 '파트너'(Partner)로 인정하고, 과감한 규제 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헬스케어(건강관리)와 노인요양시설, 종합자산관리서비스와 같은 사회적 필요성이 높은 분야에서 보험사가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보험사도 가만히 앉아있을 것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또 국내 보험산업 고질적 병폐인 보험소비자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를 최소화 해 건강한 보험생태계를 조성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부 블랙컨슈머들의 행태를 방치하면 선량한 보험계약자가 피해를 볼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보험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특히 우리 사회가 모럴해저드에 상대적으로 관대하다는 전제를 뒀지만 금융당국의 지나친 소비자보호 정책이 블랙컨슈머를 양산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10일 안 원장을 만나 대한민국 보험산업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들어봤다.

-지속적인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보험산업 위기론이 커지고 있다
▶보험산업이 성장동력을 잃은 게 사실이다. 사망보험 수요가 줄었다. 전통적 보험사업 구조의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보험사들이 신성장 동력을 확보할 타개책을 정부가 규제 개혁으로 제시해야 한다. 인구감소와 고령화는 보험산업 뿐 아니라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는 면에서 매우 부정적인 문제다. 특히 정부 재정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노후, 건강 등의 리스크는 사적 영역의 보험제도를 활용하는 게 불가피하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있어 보험산업을 굿파트너로서 인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보험산업의 역량을 정부가 활용하면 사회안전망 확충 뿐 아니라 고용창출 효과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은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정책이 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서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고 보나
▶헬스케어사업과 노인요양시설, 종합자산관리서비스 등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돼야 한다. 이 부분은 단순히 보험사들을 위한 게 아니라 정부로서도 사회적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보험사와 협력할 필요성이 있다. 특히 고령화에 따른 연금보험수요가 증가해야 하지만 인센티브 구조가 반대로 가면서 연금수요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연금보험 활성화를 위해 세제혜택 확대 또는 저소득층에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판매채널 등에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보험사들의 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보험사들이 해외시장 진출을 꾸준히 추진해야 하는 이유다. 1990년대를 전후해 국내에 진출했다 최근 철수를 결정한 푸르덴셜생명과 라이나생명 등 외자계 보험사들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 할 필요가 있다. 이들 회사는 투자금의 수백배를 회수했다. 보험사들이 해외에 나가서도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과 실력을 키워야 한다. 내년 도입 예정인 새로운 건전성 제도가 보험사에 부담이기도 하지만 가치경영과 리스크관리를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보험사들이 스스로 경쟁력을 키운다면 보험산업을 '퍼플오션'(레드오션 시장에서 발상의 전환 등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시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보험사들의 새 국제회계기준(IFRS17) 도입 준비상황은 어떠한가. 일부 보험사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고, 기업구조조정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보인다
▶보험사들과 당국이 상당 부분 조율을 해서 시스템적으로 준비는 잘 돼가고 있다. 새 회계제도는 보험사에 부담이기도 하지만 기업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장에서의 구조조정은 회계제도 개선이 아니어도 지금도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물론 새 회계제도 도입이 기폭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들로선 어떤 회사가 건전한 회사인지 알 수 있고, 보험사들은 가치경영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보험산업은 규제리스크가 큰 산업분야다. 실손보험과 자동차보험에 대한 당국의 가격개입 논란은 매번 반복되고 있다. 바람직한 규제 감독 방향은 뭐라고 생각하나

▶과거에 비하면 규제가 상당히 완화된 게 사실이다. 금융감독과 규제의 목적은 보험소비자 보호인데, 궁극적인 소비자 보호는 어떤 경우에도 소비자가 약속된 보험금을 불편함 없이 정당하게 지급받는 것이다. IFRS17이나 신지급여력제도(K-ICS) 등 건전성 강화 규제는 변하지 않는 '상수'다. 대신 건전성을 위한 자본확충을 할 수 있는 시장을 조성해주는 게 정부의 역할이어야 한다. 보험사의 건전성과 소비자보호 관련한 규제는 강화하되, 가격 규제와 같은 수익성 관련 규제는 다소 완화하는 규제 간 밸런스(균형)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안철경 보험연구원장 인터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그러나 보험산업에 대한 사회적 불신이 큰 현실 탓에 규제 완화 주장에 힘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유독 국내에서 보험산업에 대한 불신이 큰 원인은 뭐라고 보나
▶우선 보험이 우리나라에선 '제2의 저축' 상품으로 들어오다 보니 태생적인 한계가 있다. 보험 본연의 역할이 저하돼 실질적인 위험관리라는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신뢰를 잃었다. 또 판매과정에서의 설계사 제도, 불완전판매, 푸쉬(Push) 영업관행 등으로 부정적 이미지가 커졌다. 아울러 보험금 지급 측면에서의 잦은 분쟁도 보험산업의 신뢰를 낮추는데 영향을 줬다.

-보험 분쟁과 관련해선 보험 소비자의 모럴해저드 문제도 심각하다
▶사실 우리나라의 모럴해저드는 과도한 수준이다. 가령 독일과 일본에선 '보험사기' 현황을 조사한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한다. 보험사기를 저지르면 선량한 보험가입자에 피해가 전가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여전히 모럴해저드에 관대한 우리 사회에선 일방적인 소비자보호 정책이 자칫 블랙컨슈머를 양산할 수 있다는 측면은 감독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보험산업의 건강한 생태계 유지를 위해서라도 모럴해저드를 최소화 할 대책이 필요하다.

-보험사 스스로 불신을 깰 수 있는 경쟁력과 역량을 키우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다. 가장 중요한 건 소비자 신뢰회복을 위해 보험사는 불완전판매의 최소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아울러 소비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소비자 중심으로 사업모형을 전환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생산자 중심 사업모형이 소비자에게 주는 부정적인 경험에 대해 MZ세대가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향후 MZ세대가 기성세대가 됐을 때 현재의 기성세대만큼의 보험가입이 이뤄지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가 크다. 따라서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밀하게 소비자를 분석해야 한다. 정말로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시장에 내놓아 소비자가 그 가치를 인정해야 하고, 판매단계별로 소비자의 행동에 대한 과학적 분석도 이뤄져야 한다.
보험회사의 자산관리와 장기투자 역량을 키우기 위한 투자도 절실하다. 현재 보험사가 제공하는 연금상품이나 서비스를 보면 투자수익률이 소비자 기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타금융권에 비해 투자자문, 일임, 신탁업 등 자산관리업무 역량도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보험업계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빅테크(대형IT기업)의 공습이다. 빅테크가 국내 보험산업에 얼마나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일부 종목을 제외하고 단기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보험은 사는 것(Buy)이 아니라 파는 것(Sell)이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 등 일부 보험을 제외하고는 소비자가 보험사를 찾아 보험에 가입하는 게 아니라 보험사가 소비자에게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보험을 팔고 있다는 말이다. 다만 빅테크가 단순 판매채널이 아닌 보험산업의 주체로서 진입한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기존 보험산업이 빅테크에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플랫폼 사용에 대한 광고비가 현재의 대리점 수수료를 대체하는 등 꼬리(빅테크)가 몸통(보험산업)을 흔들 수도 있는 문제여서 경계가 필요하다. 빅테크의 보험시장 진출을 계기로 소비자 후생을 높이고 보험신뢰를 회복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물론 공정한 경쟁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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