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으면 코 베이징'이란 말로 요약되는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 논란에 반중여론이 들끓으면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 미칠 여파가 주목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모두 분노한 민심에 공감하지만 속내는 엇갈린다.
이 후보 측은 친중 노선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듯 경기 직후부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윤 후보 측은 중국을 비판하고 선수단을 응원하면서도 민주당을 겨냥해 5년간 구애해온 친중정책의 대가가 뭐냐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반중심리가 고조될수록 집권여당의 이 후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년 전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양상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엄연히 분리돼야 하지만 국민의 열정이 투영된다는 점에서 상호 영향이 불가피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그랬다. 당시 전 국민의 기쁨은 여당(새천년민주당)에 힘이 됐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은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이슈로 정권 재창출에 밑거름이 됐다.
월드컵 열기가 식기 전 불거진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도 분수령이었다.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을 경험한 시민들은 촛불시위라는 독특한 집회문화를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광장에서 조성된 반미 정서는 결국 그해 겨울 대선에서 보수 야당에 패배를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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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실망과 분노" 빠른 반응…'친중 정권' 프레임 벗기 전략━
박주민, 전용기 민주당 의원 등도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운동회 아니냐", "정직한 땀은 편파 판정에 의해 배반당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베이징올림이 아니라 중국 체전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이 현 정권을 친중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이 문제를 간단하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중 문제가 반일 못지 않게 휘발성이 큰 이슈이기 때문에 불똥이 얼마나 튈지도 미지수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국민 사이에 팽배해져 있는 반중 정서에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정권 교체 여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하겠다는 윤석열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이득을 볼 수 있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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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중국 직접 비난 자제…반중정서에 유리한 상황, 메시지 관리━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을 내고 "중국의 명백한 편파 판정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며 "중국 선수단에 메달을 몰아주기 위한 노골적이고 명백한 편파 판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 중국에 기대고 구애해온 친중정책의 대가가 무엇인지 성찰하기 바란다"며 "전통적 우방과는 불협화음을 감수하면서 유독 친중으로 편향했던 결과가 바로 이런 상황"이라고 했다.
선수단을 위로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직접 비난은 삼갔다. 윤 후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 감정을 언급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국민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거는 한중관계가 각자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상호 존중에 입각해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문재인 정권의 대중 외교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윤 후보가 굳이 중국에 날을 세우지 않고 메시지를 관리하는 모양새다. 반중 정서 자체가 야당에 유리한 상황에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친중이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지금 정부는 한미관계보다 한중관계를 중시한다. 반중정서가 집권 민주당한테는 불리하다"며 "문화공정이라든지 김치, 한복 등에서 망신을 당했다. 한국이 소수민족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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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붉은 악마' '반미 촛불시위'와 또다른 분위기━
특히 붉은 악마는 반세기 이상 한국 사회를 옥죄었던 '레드 콤플렉스'를 깨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빨간색이 더 이상 '빨갱이'를 연상케 하는 불온한 색상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을 넘어 동반된 여러 사회 문화적 변화 전반이 혁신을 내건 당시 집권세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반중정서가 우리나라의 외교정책 전반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번질 수도 있다. 다만 당장 윤 후보로서는 지금과 같은 신중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사드 배치 당시 중국에서 국내 기업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감정을 자극하는 건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국익을 따져보면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반중정서를) 과도하게 활용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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