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신화'→'코 베이징'…스포츠, 20년만에 대선판 뒤흔들까

머니투데이 박종진 기자, 정세진 기자, 박효근 인턴기자 | 2022.02.08 17:06

[the300]

(베이징=뉴스1) 안은나 기자 = 7일 중국 베이징 수도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남자 1000m 경기에 나간 최민정(왼쪽부터), 박장혁, 황대헌, 이준서. 최민정·박장혁은 넘어지고 황대헌, 이준서는 레인 변경 위반으로 실격됐다. 2022.2.7/뉴스1

'눈 감으면 코 베이징'이란 말로 요약되는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편파 판정 논란에 반중여론이 들끓으면서 한 달도 남지 않은 대선에 미칠 여파가 주목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 모두 분노한 민심에 공감하지만 속내는 엇갈린다.

이 후보 측은 친중 노선을 펼친 것으로 평가받는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하려는 듯 경기 직후부터 날선 비판을 쏟아냈다. 윤 후보 측은 중국을 비판하고 선수단을 응원하면서도 민주당을 겨냥해 5년간 구애해온 친중정책의 대가가 뭐냐고 꼬집었다. 정치권에서는 반중심리가 고조될수록 집권여당의 이 후보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20년 전과는 비슷하지만 다른 양상이다. 스포츠와 정치는 엄연히 분리돼야 하지만 국민의 열정이 투영된다는 점에서 상호 영향이 불가피하다.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그랬다. 당시 전 국민의 기쁨은 여당(새천년민주당)에 힘이 됐다. 일약 스타로 떠오른 정몽준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은 노무현 후보와 단일화 이슈로 정권 재창출에 밑거름이 됐다.

월드컵 열기가 식기 전 불거진 미군 장갑차에 의한 '효순이 미선이 사망사건'도 분수령이었다. 붉은 악마의 거리 응원을 경험한 시민들은 촛불시위라는 독특한 집회문화를 처음으로 만들어냈고 광장에서 조성된 반미 정서는 결국 그해 겨울 대선에서 보수 야당에 패배를 안겼다.


이재명 "실망과 분노" 빠른 반응…'친중 정권' 프레임 벗기 전략


7일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황대현이 의문의 실격을 당하자 국민의 격분이 터져 나왔고 이재명 후보가 대선 후보 중 가장 빠르게 반응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며 "실력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한 우리 선수단 여러분이 진정한 승자"라고 밝혔다.

박주민, 전용기 민주당 의원 등도 "올림픽이 아니라 중국 운동회 아니냐", "정직한 땀은 편파 판정에 의해 배반당했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화가 나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베이징올림이 아니라 중국 체전이란 비아냥까지 나온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8일 오후 서울 강서구 방화동 방신전통시장 고객지원센터에서 열린 전국자영업자·소상공인단체 대표단 긴급간담회에 앞서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2022.2.8/뉴스1
이처럼 민주당이 이번 논란에 뜨겁게 반응하는 것은 대선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서다. 선제적으로 중국을 비판하지 않으면 여론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판단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민이 현 정권을 친중 정권이라고 보는 것"이라며 "이 문제를 간단하게 넘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진단했다.

반중 문제가 반일 못지 않게 휘발성이 큰 이슈이기 때문에 불똥이 얼마나 튈지도 미지수다. 장성철 대구가톨릭대 특임교수는 "국민 사이에 팽배해져 있는 반중 정서에 불을 지를 가능성이 높다"며 "정권 교체 여론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대해서 할 말은 하겠다는 윤석열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이득을 볼 수 있겠다"고 밝혔다.



윤석열, 중국 직접 비난 자제…반중정서에 유리한 상황, 메시지 관리


윤석열 후보 역시 국민의 분노에 동참하지만 민주당과 차이를 보인다. 선대본부 차원에서는 격한 반응을 내놓는 반면 윤 후보는 선수단을 응원하는 선에서 발언한다. 후보가 중국을 직접 비난하지는 않으면서 여당과는 다소 다른 반응을 보였다.

이양수 국민의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이날 오전 논평을 내고 "중국의 명백한 편파 판정에 전 세계가 경악했다"며 "중국 선수단에 메달을 몰아주기 위한 노골적이고 명백한 편파 판정"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 중국에 기대고 구애해온 친중정책의 대가가 무엇인지 성찰하기 바란다"며 "전통적 우방과는 불협화음을 감수하면서 유독 친중으로 편향했던 결과가 바로 이런 상황"이라고 했다.

(서울=뉴스1) 국회사진취재단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 신관에서 열린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꿉니다'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2022.2.8/뉴스1
윤 후보는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정책토론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우리 선수들의 분노와 좌절에 깊이 공감하고 우리 선수들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며 "이번 올림픽 상황을 보고 우리 아이들이 공정이라는 문제에 많이 실망하지 않았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선수단을 위로하면서도 중국에 대한 직접 비난은 삼갔다. 윤 후보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사람으로서 특정 국가에 대한 반대 감정을 언급할 수는 없다"며 "그러나 국민이 그런 마음을 가지고 계시는 거는 한중관계가 각자 정체성을 분명히 하면서 상호 존중에 입각해서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중국을 직접 공격하는 대신 문재인 정권의 대중 외교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윤 후보가 굳이 중국에 날을 세우지 않고 메시지를 관리하는 모양새다. 반중 정서 자체가 야당에 유리한 상황에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임현진 서울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친중이라는 표현까지 들을 정도로 지금 정부는 한미관계보다 한중관계를 중시한다. 반중정서가 집권 민주당한테는 불리하다"며 "문화공정이라든지 김치, 한복 등에서 망신을 당했다. 한국이 소수민족이 되어버렸다. 그것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게 하나도 없다"고 밝혔다.

(고양=뉴스1) 이성철 기자 = 지난해 11월11일 오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 대한민국과 아랍에미리트(UAE)의 경기가 열리는 경기도 고양시 고양종합운동장을 관중들이 입장하고 있다. 2021.11.11/뉴스1


2002년 '붉은 악마' '반미 촛불시위'와 또다른 분위기


2002년 열풍이 여당에 도움을 준 것은 분명하나 2022년 반중 정서가 야당에 계속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2002년에는 특정 스포츠 경기 결과를 넘어서 문화적 변화까지 동반됐기 때문에 파급력의 차원이 현재와 다르다는 분석이다. 붉은 악마와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광장 문화가 대한민국에 시작된 게 2002년 월드컵 때였다.

특히 붉은 악마는 반세기 이상 한국 사회를 옥죄었던 '레드 콤플렉스'를 깨는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빨간색이 더 이상 '빨갱이'를 연상케 하는 불온한 색상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게 된 출발점이었다. 월드컵 4강이라는 성적을 넘어 동반된 여러 사회 문화적 변화 전반이 혁신을 내건 당시 집권세력의 이미지와 맞아떨어졌다는 얘기다.

물론 반중정서가 우리나라의 외교정책 전반에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로 번질 수도 있다. 다만 당장 윤 후보로서는 지금과 같은 신중한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

정치평론가인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사드 배치 당시 중국에서 국내 기업이 불이익을 당한 사례를 언급하면서 "감정을 자극하는 건 단기적으로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인 측면에서 냉정하게 국익을 따져보면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반중정서를) 과도하게 활용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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