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나은 작가, 인생 로코를 쓸 수 있던 이유

머니투데이 한수진 기자 ize 기자 | 2022.02.01 09:47
이나은 작가, 사진제공=SBS


"앞으로 내 모든 시간은 연수를 사랑하는데 쓸 거예요."


이나은 작가가 각본을 맡은 SBS '그 해 우리는'에서 남자 주인공 최웅(최우식)은 오랜 연인을 향해 이렇게 독백한다. 재거나 여지를 남기는 것 없이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것. 이는 이나은 작가가 드라마에서 이야기하는 사랑이기도 하다. '그 해 우리는' 등장인물들은 서로가 서로의 관찰자가 되어, 하나의 자아가 실현하는 사랑의 순수함을 다양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그렇게 인물들은 주위를 따뜻한 시선으로 감싸며, 사랑을 위해 용기를 낸다.


'그 해 우리는'은 청춘들의 애틋하고도 설레는 현실 연애담으로 웰메이드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리에 지난달 종영했다. 넷플릭스 전 세계 드라마 10위권까지 진입했고, 타이틀롤로 나선 최우식은 지금 가장 핫한 '로코킹'이 됐다. 본 작품은 풋풋했던 학창 시절 첫사랑의 추억을 소환하다가도, 누구나 한 번쯤 웃고 울었을 지난 연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며 '과몰입'을 유발했다. 이 같은 이야기를 펼쳐낸 이나은 작가에 대한 시청자 관심도 자연스레 따랐다. '작가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라는 시청자 반응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지배했을 정도다. 그만큼 이 작가는 자신만의 작법으로 시청자들의 공감과 감성을 제대로 파고들었다.


이나은 작가는 2016년 웹드라마 '전지적 짝사랑 시점'으로 드라마에 발을 들였다. 따로 글쓰기를 배운 적도, 전공자도 아니었다. 사회 초년생 시절 웹드라마 제작사에 자막 담당자로 입사했다가 우연히 드라마 작가의 길을 걷게 된 케이스다. '전지적 짝사랑 시점'으로 집필을 시작한 후 '연애미수'(2019)라는 웹드라마를 내놓기도 했다. 지상파 드라마로는 '그 해 우리는'이 입봉작이다. 그렇게 이 작가는 드라마 세 편만에 로맨스물의 대세가 됐다. '그 해 우리는' 속 등장인물들처럼 본인도 29살의 젊은 청춘인 그는, 젊은 혈기의 진취적인 글로 보다 많은 이들에게 자신의 이야기가 닿길 꿈꾸고 있다.


이나은 작가, 사진제공=SBS


두 남녀주인공이 5년을 교제하다 이별한 후 5년 뒤에 재회해요. 돌고 돌아 결국 서로에게 맞닿는 첫사랑의 내용을 담았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꾸리게 됐나요?


“저는 항상 어설프고 실수가 많았어요. '좀 더 잘할 걸'이라는 아쉬움과 후회를 남겼어요. 사랑에 실패도 많이 해봤죠. 그래서 웅이와 연수(김다미)를 통해 다시 한번 기회가 있었으면 했어요. 다시 기회를 얻어 성장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저에게도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면서요."


시청자들이 '작가가 대체 어떤 인생을 살았길기에'라는 반응이 많은데 아시는지요?


"네 저도 그런 반응을 봤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평범한 인생을 살았어요. 놓치고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죠. 저 스스로에게 위로를 주는 글을 쓰다보니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제 인생이 각별했으면 이런 이야기가 안 나왔을 거예요. 평범했기에 가능했죠."


대본을 쓸 때 어떤 공감 포인트를 주려 했나요?


"저는 기술적, 능력적으로 뛰어난 작가는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가진 장점이 뭘까 생각하다가 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현실적으로 우리가 쓰는 언어로 전해야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집필했어요."


등장인물 다수가 결핍과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어요.


"제가 아는 인간들은 모두 결핍이 있다고 생각해요.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어요. 각자에게 결핍을 부여해 현실에 있는 친구처럼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들이 어떻게 상처와 화해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을 가지고 써나갔죠. 거기에는 제 성격이나 가치관이 담기기도 했고요. 힘들 때 애써 눌러서 담담하게 보내려고 해요. 인물의 감정과 저의 감정이 더해졌죠. 개인적인 서사나 인물의 아픔은 잘 쓸 수 있었지만 이들이 서로 만나 주고받는 아픔이나 영향을 미치는 장면은 고민을 많이 했어요. 해답을 주는 장면이라 시청자에게 좋은 메시지로 다가가려고 애썼습니다.”


등장인물들이 많은 대화와 표현을 통해 사랑을 완성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이야기를 안 하는데 상대의 마음을 알 길은 없어요. 사랑이 있어 고통의 삶도 생각하게 하죠. 사랑은 삶의 영원한 원동력이에요. '왜 이들은 대화를 안하지?' 결국 상처가 된 사람들이 대화로 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마와도 마찬가지죠. 세상 부모는 정말 다양해요. 상처주는 엄마, 위로를 받는 엄마. 결국 대화죠."


이나은 작가, 사진제공=SBS


두 주인공이 다큐멘터리를 찍는 설정이다 보니 관찰자 시점이 강조된 느낌이에요.


"누구나 누군가에게는 관찰자라고 생각해요. 지웅 PD(김성철)는 연수와 웅이를 관찰하고, 지웅은 조연출 채란(전혜원)이 관찰해요. 채란에게는 태훈(인턴PD)이 있고요. 누구나 힘든 순간만 있는 게 아니라 묵묵히 사랑을 주는 존재가 있다는 걸 잊지 않았으면 했어요. 그래서 김성철 배우에게 '본인 감정이 혼란스러워서 여러 감정이 담기는 건 알겠는데 그것 말고 출연자의 시선 끝을 따라가 보라'고 이야기를 했죠. '그 해 우리는'은 여러가지 시선이 들어가다 보니 헷갈리기도 해요. 그런데 이게 우리들에게 하는 대사이기도 해요."


명대사 명장면을 꼽자면요?


"먼저 웅이가 연수를 찾아가 '어떻게 지내냐'고 묻는 6회 엔딩이요. 이 대사를 쓰면서 처음으로 울었어요. 지웅이가 선배 PD에게 '별것 없는 내 인생도 특별한 순간이 올까요'라고 말한 대사도 기억에 남아요. 명장면은 11회 엔딩이요. 웅이가 빌딩 숲 바닥에 누워서 연수에게 아픈 과거를 고백해요. 그때 연수가 웅이이게 입을 맞추는 장면이죠. 두 사람의 관계를 정확하게 전달해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또 연수가 할머니에게 '나는 늘 혼자인 줄 알았는데 혼자가 아니었어'라고 한 말은 제가 친구들과 시청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어요."


글을 따로 배운 적이 없다고 했는데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을까요?


"노희경 작가님이요. 노 작가님의 '그들이 사는 세상' 대본을 보고 배웠어요. 노 작가님은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제가 존경하는 작가예요."


지상파 드라마 입봉작이니 걱정도 있었을 듯해요.


"거창하지 않은 소소한 이런 이야기를 누가 봐줄까 정말 마음 졸이면서 썼던 글이에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해 주시고 재밌게 봐주셨다고 연락을 주셔서 정말 감동이고 감격스러워요."


'그 해 우리는'이 어떤 작품으로 기억됐으면 하나요?


"'나만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아니구나'라는 깨달음을 주는. 시청자에게는 소소한 위로가 되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저 또한 확인받은 작품이에요. 이런 이야기를 더 해도 되겠구나 하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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