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관통한 20㎝ 최루탄…역사 바꾼 17세 김주열 열사의 죽음

머니투데이 이영민 기자 | 2022.01.28 10:44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최루탄이 얼굴에 관통한 고(故) 김주열 열사의 사진이 충격을 안겼다.

지난 27일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나를 찾아줘-1960 되살아온 아이'라는 부제로 3·15 마산 의거와 김주열 열사 사망 사건을 돌아봤다.

1960년 남원에 사는 17세 김주열 열사는 마산상고 입학 시험을 위해 두 살 위 형과 함께 3월10일 마산으로 향했다. 합격자 발표일인 14일 갑자기 발표가 미뤄지면서 형제는 남원으로 돌아가는 일정일 미뤘다. 그런데 다음날인 15일 형과 함께 마산 시내 구경에 나선 김주열 열사가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이 소식을 들은 김주열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 여사는 곧바로 마산으로 와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찰은 권 여사를 돕기는커녕 도리어 쫓아냈고 권 여사는 홀로 아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들을 찾는 어머니의 호소는 마산 전역에 퍼졌고 기자들의 귀에도 들어갔다.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당시 부산 일보 마산 주재 허종 기자는 이 사건이 단순 실종 사건이 아니라 확신하고 사건을 추적했다. 그러던 어느날 허 기자는 중앙부두에서 김주열 열사를 찾았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부두에 도착한 허 기자는 바닷 속에서 소년의 시체를 발견했고, 카메라를 꺼내 셔터를 눌렀다. 이날 그가 찍은 사진 한 장이 대한민국의 역사를 바꿨다.

당시 발견된 김주열 열사 시신은 최루탄이 얼굴을 관통해 뒷목으로 나와있었다. 직경 3㎝, 길이 20㎝인 이 포탄은 장벽 뒤의 사람에게만 사용하라는 경고문이 쓰여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였다. 세게 날아가게 하려고 프로펠러를 달아 총으로 쏘는 포탄이었다.

김주열 열사가 사라진 날은 3.15 부정 선거 당일이었다. 선거 초반 야당 측 참관인이 부정 선거 정황을 눈치챘고 이에 규탄 시위가 시작됐다. 시위대는 3000명이 넘었고 김주열 열사 형제도 시위대에 끼어서 함께 구호를 외쳤다. 시위대 인원이 점점 늘자 경찰은 헤드라이트를 시민들에게 향하게 하고 최루탄을 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주열 열사는 형의 손을 놓쳤고, 그게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날 밤 박종표 경위는 눈에 포탄이 박힌 시체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상부에 보고했다. 그러자 상관은 박 경위에게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 박 경위는 김주열 열사의 몸에 돌을 매달아 바다에 던졌다. 그 모습을 허 기자가 사진으로 찍어 세상에 알리며 시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4.19 혁명 시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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