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왜 보복적 정의가 중요한가?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2.01.21 02:05

편집자주 |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
독일 뉘른베르크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선거권을 가진 영주들이 제국의회를 열던 중세의 대표적 도시였고 히틀러가 제3제국을 꿈꾸며 역사적 상징성을 얻기 위해 1927년부터 나치당의 전당대회를 개최한 곳이다.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을 때 나치의 침략전쟁을 기획하고 실행한 전범들을 재판하기 위한 장소로 미국이 뉘른베르크를 선택한 것은 의미 있는 결정이었다.

뉘른베르크 재판은 1943년 10월 연합국 주도의 전쟁범죄위원회가 전범 처벌을 준비하기 시작하고 1945년 8월 중대 전쟁범죄인의 소추 및 처벌에 관한 런던협정에 19개국이 서명하면서 국제 군사재판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 재판의 가장 큰 의의는 전쟁에서 역할을 이유로 타국에서 개인이 소추되지 않는다는 주권자 면책이나 국가행위 면책의 전통에서 벗어나 침략전쟁을 일으킨 평화에 반하는 죄, 민간인에 대해 범죄행위를 한 인도에 반하는 죄로 개인의 책임을 물어 처벌했다는 점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이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진행되면서 24명을 기소하고 12명을 사형에 처했다면 도쿄 재판은 1946년 1월부터 1948년 11월까지 진행돼 28명을 기소하고 7명을 사형에 처했다. 도쿄 재판은 맥아더 사령관의 특별선언과 일반명령으로 설치됐다는 점에서 국제조약의 성격을 띤 뉘른베르크 재판과 달랐다. 미국 주도의 전략적 판단이 주로 작용했고 일왕 처벌면책이나 731부대 기소보류,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기소보류 등은 전후 일본 통치와 아시아 질서 구성방식을 전제한 미국의 선택이었다.

소급입법 논란과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두 재판은 이후 집단학살과 침략전쟁, 전쟁범죄, 인도에 반하는 죄 등을 다루는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으로 이어졌고 전환기의 정의를 다루는 국제적 원칙과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두 재판은 보복적 정의, 보상적 정의, 회복적 정의로 이뤄진 정의의 3가지 차원 가운데 진상조사를 통한 책임자 처벌이라는 보복적 정의의 분명한 사례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아이들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역사를 물려주자"고 말할 때 우리가 역사에서 느끼는 가장 큰 회의는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한 보복적 정의의 부재에서 온다. 피해를 물리적으로 보충하는 보상적 정의, 명예회복과 기념사업의 회복적 정의도 중요하지만 진상조사를 통해 가해자를 처벌하는 보복적 정의 없는 화해의 추구는 가해자 없는 피해보상과 가해자 없는 명예회복이라는 불완전한 정의구현으로 남는다.

나치는 유대인 학살을 '최종적 해결', 전쟁포로 살해를 '특별처리', 강제수용소를 '보호감호', 잔혹한 가학행위를 '확고한 태도'로 부르면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언어감각을 마비시켰다. 이처럼 체계적 조작이 만들어낸 환경에서 평범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도 공직에 등용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보복적 정의의 구현과정이다. 이는 물리적 수단을 동원한 직접적 응징과 달리 사회적 공론에 의한 응보적 심판을 의미한다.

화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상호성을 전제한다. 정치적 관점에서 화해는 공동체적 유대의 형성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은 극단적인 범죄나 의도적인 악을 용서 없이 처벌하는 보복적 정의 위에서만 실현된다. 민주주의 이행과정에서 역사적 정의에 대한 논의는 집권에 성공한 정치권력의 사실적 승인을 넘어 근본적인 정당성의 문제제기를 통해 폭력적이고 자의적인 지배와 그렇지 않은 지배를 구분함으로써 민주헌정질서의 공고화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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