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정의 그 약, "불면증" 한마디면 처방…범죄악용 많은데, 왜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 2022.01.20 05:30
"부작용은 좀 있지만 잠 안 오는 데에는 졸피뎀이 최곱니다."

19일 서울 광진구의 한 약국. A약사가 "잠이 오지 않는다"는 기자에게 졸피뎀을 권했다. A약사는 "병원 처방전만 받아오면 바로 졸피뎀을 줄 수 있다. 근처 B내과, C정신과가 졸피뎀 처방을 잘해준다"라며 약도까지 그려 줬다. 졸피뎀의 부작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 졸피뎀은 남용이나 의존성을 일으킬 수 있어 사용이 제한되는 마약성 수면제다.

졸피뎀을 이용한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으나 여전히 처방전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다. 오남용 문제가 지적되면서 처방 기준을 까다롭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코로나19 이후 되레 처방이 늘었다. 강제추행이나 절도에서부터 살인까지 강력범죄에 사용되는 사례도 늘고 있으나 여전히 관련 규정은 걸음마 단계다.


"불면증 있다" 말하면 내주는 졸피뎀…범죄 악용 우려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처방 늘었다


/사진 = 게티이미지

이날 노원구와 종로구, 광진구 일대의 약국·병원 6곳을 방문해 '최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말하자 대부분이 졸피뎀 복용을 추천해 줬다. 종로구의 한 약사는 "다른 약도 있지만 졸피뎀이 불면증에는 특효"라며 "병원에 가서 '잠이 안 온다'고 말 한마디만 하면 웬만한 의사들은 다 처방해 준다.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말도 하라"라며 처방받는 팁까지 알려줬다.

문제는 졸피뎀이 마약류 수면제(향정신성의약품)로 분류돼 엄격한 관리와 처벌규정이 적용되는 약품이라는 점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하루 10mg 이상 처방해서는 안 되며, 치료 기간은 4주를 넘겨서는 안 된다. 만 18세 미만 환자에게 처방하는 것도 금지된다. 위장 장애와 복용 중단시 금단증상, 강한 졸음이 오며 우울증 환자가 복용시 극단 선택의 위험성도 있다.

코로나19로 비대면 진료가 늘면서 졸피뎀의 처방이 늘었다. 지난해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0년 졸피뎀 처방 인원수는 504만명으로 비대면 진료 허용 전인 2019년보다 8.3% 줄었으나 처방량은 5억 3000여만개로 되레 5.1% 늘었다. 같은 기간 비대면 졸피뎀 처방 건수도 대면 진료 때의 처방 건수보다 2배나 많았다.


악용 사례도 늘고 있다. 지난달 인천의 한 40대 남성은 여성 가사도우미를 자신의 주거지로 부른 뒤 졸피뎀을 커피에 넣어 마시게 만들고 강제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같은 달 경남 김해에서는 80대 여성에게 졸피뎀을 넣은 대추차를 마시게 해 400여만원의 금시계를 훔친 60대 여성이 검거됐다. 이들은 "잠이 오지 않는다"며 졸피뎀을 처방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2019년 제주도에서 전남편과 의붓아들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고유정이 구매한 수면제도 졸피뎀이다. 검찰은 고유정이 졸피뎀을 음식에 넣어 전남편을 몽롱한 상태로 만든 다음 수차례 흉기로 찔러 살해했다고 봤다. 고유정 측은 졸피뎀 사용을 부인했으나 감기 등 증세를 호소하며 수면제를 처방받은 내역이 확인됐다.


의료용 마약류, 위험한데 처방 병원은 는다…"관련체계 재정비해야"


/사진 = 뉴스1

전문가들은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전반에 대한 관리감독 체계를 보다 엄격하게 다룰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의사들의 처방이 있어야 졸피뎀을 처방받을 수 있도록 하는 기준이 있지만, 의사들이 과도하게 처방을 남용하는데다 사후 감시조치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2019년 한 해에 졸피뎀 등 마약류를 '과다처방'한 병원은 68곳에 달했다. 그해 한 30대 여성은 335번에 걸쳐 3만9014정의 졸피뎀을 처방을 받기도 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매년 졸피뎀을 지나치게 처방받거나 범죄에 악용하는 등 오·남용 사례가 여전히 많음에도 관리감독 체계는 여전히 미흡한 실정"이라며 "식약처 등 전문성이 있는 부처와 수사기관이 협력해 졸피뎀 등 의료용 마약류 전반에 대한 규정을 점검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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