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스타트업 엑소더스[광화문]

머니투데이 임상연 미래산업부장 | 2022.01.19 06:00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꼴이죠. 법안이나 제대로 읽어봤는지 모르겠네요."

벤처·스타트업에 한해 복수의결권을 도입하는 법안(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또다시 좌초 위기에 처하자 한 AI(인공지능) 스타트업 창업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시급한 혁신의 대상은 정치"라며 작심한 듯 이렇게 비판했다.

복수의결권은 벤처·스타트업이 투자유치 과정에서 경영권이 희석되지 않도록 창업자에게 주식 1주당 최대 10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국 중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17개국은 물론 사회주의국가인 중국, 싱가포르 등도 이미 벤처육성정책의 일환으로 비슷한 제도를 도입했다. 국내에선 지난해 초 쿠팡의 나스닥 상장을 계기로 도입 논의가 본격화했고,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정부안을 중심으로 제도마련에 나섰다.

1년여간 업계 의견청취와 보완작업을 진행한 산자중기위는 지난해 12월2일 관련법안을 처리하고 법사위로 넘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업계의 오랜 숙원이 풀리는 듯했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은 물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복수의결권 도입을 21대 총선 공약으로 내건 데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도 법안통과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10일 법사위 소속 민주당 일부 의원의 반대로 전체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않으면서 국회 본회의 처리가 무산됐다. 재벌의 경영권 승계 등 악용될 소지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과연 그럴까. 법안 내용을 보면 기우에 가깝다. 우선 복수의결권은 투자유치 과정에서 창업자의 지분율이 30% 이하로 떨어질 경우에만 발행할 수 있다. 해당 벤처·스타트업이 공시대상기업집단(자산총액 5조원 이상)에 편입되면 복수의결권의 효력이 없어진다. 증여나 상속도 할 수 없다. 대기업 총수일가나 계열사가 복수의결권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뿐만 아니라 복수의결권의 존속기간, 이사의 보수, 감사의 선임 및 해임, 이익배당 등 경영과 관련된 주요사항을 결정할 때는 복수의결권도 보통주처럼 의결권을 1주당 1개로 제한하는 등 제도의 악용을 막는 이중삼중의 안전장치가 마련됐다. 업계에서 "법안도 제대로 읽어보지 않고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흐르는 물길을 막으면 다른 둑이 터지게 마련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미흡한 제도나 낡은 규제로 혁신이 가로막힌 시장에선 인재도, 기업도 다른 길을 모색한다. 최근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사)으로 커졌거나 성장 가능성이 높은 스타트업들이 본사를 해외로 옮기는 플립(Flip) 현상이 눈에 띄게 늘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실제 기업용 메신저를 개발하는 '센드버드', 기업용 협업플랫폼을 운영하는 '스윗테크놀로지스', AI 기반 에듀테크기업 '뤼이드' 등 혁신기업들이 규제가 덜하고 대규모 투자유치가 수월한 미국으로 잇따라 본사를 옮겼거나 이전을 추진 중이다.

더욱이 최근 해외 투자자들은 국내 벤처·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플립부터 제안한다고 한다. 각종 규제로 성장이 불투명한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사업하는 것이 투자기업의 성장과 자금회수에도 유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벤처·스타트업 입장에서도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면서 복수의결권으로 경영권까지 담보할 수 있으니 유혹을 떨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의 머니게임에선 뒤질지라도 적어도 미흡한 제도나 낡은 규제 탓에 국적을 바꾸는 벤처·스타트업이 없도록 정부와 정치권이 규제혁신에 적극 나설 때다. 어렵게 불을 지핀 '제2벤처붐'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빛 좋은 개살구로 끝나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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