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근골격계질환 산재 '추정의 원칙' 시행 신중해야

머니투데이 표연 현대안전 대표(인간공학 박사) | 2022.01.18 05:00
근골격계질환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질환이다. 그래서인지 산재(업무상 질병) 보상을 신청하는 근골격계질환 건수도 많은 편이다. 산재로 인정되려면 업무 관련성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리 간단하지 않다. 작업의 신체부담 정도, 종사 기간 등 업무 요인 외에 성별·연령·건강상태 등 개인 요인과 가사·육아·취미생활 등 업무 외적인 요소가 함께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업무 관련성 여부 판단을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근골격계질환의 신속한 산재 처리를 위해 '추정의 원칙'을 마련할 방침이다. 주요 업종에서 특정 업무를 수년간 담당한 경우 발생한 일부 근골격계질병은 원인조사 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방식이다. 내용을 들여다보니 과거 20여년 간 많은 비용과 인력을 투입해 작업환경개선 및 사내 재활시설 운영 등 예방프로그램을 모범적으로 실시해 온 업종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우려가 앞선다.

정부의 질환과 사고를 근본적으로 예방하도록 안전보건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추정의 원칙을 성급하게 적용한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예방체계가 무너질 수 있다. 특정 직종에 일정 기간 근무했다는 이유로 원인조사 없이 업무상 질병으로 승인한다면, 기업 의욕을 저하시켜 투자 축소는 물론 예방조직 축소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수십~수백억원을 투입해도 산재승인이 줄지 않으니 '밑빠진 독에 물 붓기'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성 질환의 산재 인정기준은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충분한 사회적 합의와 공론화를 거쳐 확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추정의 원칙 근거로 제시된 통계값은 다승인 상병을 모집단으로 선정해 대표성이 부족하다. 일부 업종의 대기업 근로자 사례 위주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대기업 근로자는 상대적으로 작업환경이 더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산재 인정 시 산재보험 급여 외에 회사로부터 추가 보상을 받을 수 있어 산재신청 동기부여가 강하다. 경우에 따라 정상근로할 때보다 20~30% 많은 급여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신속한 산재 처리는 필요하다. 그러나 쉬운 산재 승인은 더 많은 산재신청을 유발해 질병 판정 기간이 늘어나는 역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제도를 악용한 모럴 헤저드에 따른 부정수급 증가까지도 우려된다. 실제로 최근 근골격계질환 산재 승인율이 2016년 54%에서 2019년 71.9%로 급증하는 동안 신청 건수가 2016년 5345건에서 2019년 9524건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 추정의 원칙까지 고시로 도입할 경우 증가 폭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추정의 원칙 도입 목적을 근로자의 신속한 치료와 조기 직장 복귀, 생계안정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성급한 제도추진보다 질병 판정 기간이 길어지는 원인을 파악하고 문제를 개선해 공정한 심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더 신중히 고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할 것이다. 대안으로 근골격계질환 재해조사도 민간에 위탁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해 봤으면 한다.

현재 정부는 작업환경측정, 건강검진, 안전교육 등 다양한 안전보건 업무를 민간기관에 위탁하고 있는데, 국내에는 국가기술자격시험을 통해 근골격계질환 재해조사를 할 수 있는 인간공학 기사와 기술사가 약 2700여명 정도 배출돼 있다. 근로복지공단에서 근골격계 유해요인조사 기관이나 인간공학 전문가를 재해조사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추정의 원칙이 적용되는 사건의 재해조사를 위탁하는 것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그러면 보다 신속한 원인조사로 질병 결정 기간을 단축하고 더욱 공정한 판정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표연 현대안전 대표(인간공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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