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카카오, 철학의 빈곤·윤리의 부재

머니투데이 박재범 증권부장 | 2022.01.17 05:50
# 카카오 제국이 흔들린다. 지난해 정부와 정치권의 플랫폼 규제 강화 움직임이 있을 때만 해도 제한적, 일시적 충격일 것이란 진단이 우세했다. 과거의 틀로 미래의 성장 동력을 재단한다는 '카카오 옹호론'도 적잖았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했다. 단순히 매출, 이익, 성장성 등 비즈니스 항목만으로 채점하지 않는다. 미사여구로 점철된 레토릭과 진정성이 담긴 스토리텔링을 구분한다. 주주, 구성원, 고객 등 이해관계자를 대하는 카카오의 태도를 보며 평가한다.

지난해 여름 네이버를 제치고 시가총액 3위까지 올랐던 카카오는 10위권 지키기도 버겁다. 14일 기준 카카오 주가(9만3900만원)은 52주 신고가(17만3000원) 대비 46% 가까이 빠졌다. 올들어 하락률만 18%다.

KB금융 등을 제치고 금융주 대장자리를 차지했던 카카오뱅크는 5개월만에 주가가 반토막났다. 카카오페이는 52주 신고가(24만8500원) 대비 42% 남짓 하락했다. 올들어 열흘간 이들 '카카오 3형제' 시가총액 20조원 가량이 사라졌다. 게다가 외국인 투자자는 카카오 3형제를 외면한다.

# 제국의 흔들림은 작은(?) 행동에서 시작된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 한달만에 스톡옵션을 행사해 900억원을 현금화한 게 논란이 되면서다.

스타트업이 IPO(기업공개)를 해 성장과 엑시트(EXIT)를 꾀하는 것, 스톡옵션으로 보상을 받는 것 등은 자본시장의 기본이다. 창업을 위한 동기 부여 수단이기도 하다.

문제는 카카오가 이 장치를 활용하고 대하는 태도다. 철저히 비즈니스적이다. 거래와 계약, 자본에만 충실하다. 기업 활동의 목표가 상장과 그 열매에만 맞춰진다.

게다가 그 대상은 소수에 국한된다. 경영진 '먹튀 논란'에 대해 카카오 구성원이 강하게 반발한 게 좋은 예다. 이른바 카카오 '이너써클'에겐 주주, 구성원, 고객 등 이해관계자에 대한 고민이 없다. 대기업이 앞다퉈 사회적 가치를 외치는 자본주의 대전환 시대에, 젊은 기업이 '이윤'과 '비즈니스'만 외치며 정반대로 달려가는 꼴이라니.


# 일각에선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라는 질타를 내놓는다. 이게 본질이라면 해법은 간단하다. 진정성있는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으로 신뢰를 회복하면 된다. 대부분의 기업은 힘들지만 그렇게 위기를 극복한다.

반면 카카오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영진이 구성원을 만나 설명해도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대표 내정자의 사퇴, 계열사 대상 임원 주식 매도 규정 마련, 콘트롤타워 설치 등의 발표에도 시장은 시큰둥하다. 카카오의 모습에서 '도덕적 해이'가 아닌 철학의 빈곤, 윤리의 부재를 느끼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은 카카오(엄밀히 말하면 일부 경영진)에 해이해질 만한 도덕과 윤리가 과연 존재했던 것일까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스톡옵션을 배정하고 실행하는데 대한 철학과 원칙이 있었을까라는 물음이다. '먹튀 논란' 이전에 그 스톡옵션을 기술 개발과 미래를 위한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 보지 않는다. 자본에 충실한 계약으로만 비쳐질 뿐이다.

여기엔 정부 등의 방조도 한몫했다. 예컨대 모 금융지주가 임원에 대한 스톡옵션을 부여한다고 할 때 금융당국이 가만히 있었을까. 리워드(보상) 시스템, 퇴직금 등을 꼼꼼히 따지는 금융당국이지만 핀테크, 테크핀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해이해 질 도덕조차 깨닫지 못한 데는 윤리 경영을 지도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는 의미다.

이는 플랫폼 기업의 철학으로 이어진다. 카카오톡의 성공, 카카오뱅크·카카오페이의 가치가 연구개발(R&D)과 기술 혁신의 결과일까. 실제론 카카오가 M&A(인수 합병)와 IPO가 주된 업무인 투자회사로 인식될 뿐인데 말이다.플랫폼 기업으로서 카카오 제국의 철학이 시장과 공유되고 있는 것일까. 정체성을 재정립하지 않으면 제국은 한순간 무너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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