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억' 뺄 동안 경고 없었다…'역대급 횡령' 놓친 은행 책임은?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 2022.01.11 05:04

본인확인 의무 부주의 가능성… "펌뱅킹 등 시스템 방식일 때는 문제 삼기 어려울수도"

(서울=뉴스1) 안은나 기자 = 4일 서울 강서구 오스템임플란트 본사. 2022.1.4/뉴스1
오스템임플란트 횡령 사건을 두고 거래은행측 과실 가능성이 대두된다. 회사 법인 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2200억원이 넘는 대규모 자금이 이체되는 과정에서 거래은행의 제어장치가 작동하지 않은 데 대한 의문이다.

1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 자금부장이던 이모씨는 2020년 4분기부터 2215억원에 이르는 회삿돈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최초 오스템임플란트가 이씨의 횡령사실을 확인한 지난해 12월31일에 비해 1년이나 앞선 시점부터, 이씨가 동진쎄미켐 지분취득 사실을 공시한 10월 초순에 비해서도 7개월이나 이른 시점부터 횡령이 자행됐던 셈이다. 경찰이 파악한 횡령시점(2021년 3월)보다도 앞선 시점부터였다.

당초 이씨의 횡령규모는 1880억원으로 알려졌으나 그 사이 이씨가 횡령했다가 회사 법인계좌로 되돌려둔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횡령규모도 처음의 1880억원에서 1980억원으로 늘어난 후 재차 2215억원으로 불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오스템임플란트는 지난해 3분기 말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자산총계 9407억원, 부채총계 6715억원, 자본총계 2692억원 규모의 회사다. 전체 자산의 1/6에 해당되는 1588억원 가량이 현금 및 현금성자산으로 분류돼 있다. 오스템임플란트는 3분기 보고서에 이 현금 및 현금성자산의 99.98%가 예금·적금 형태로 있다고 기재했다.

구체적으로 횡령 방법은 수사 중인데 회사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 전체보다 더 많은 금액이 인출된 것은 짐작 가능하다. 보통예금과 같은 수시 입출금 통장 뿐 아니라 정기예금처럼 통상 만기 도래 후 해지되는 예금까지 건드렸을 가능성이 있다. 상대적으로 유동화(현금화)가 쉬운 예금·적금 외에도 단기금융상품 등 계정의 자금까지 횡령했을 가능성도 점쳐진다.

이를두고 거래 금융사, 특히 은행의 과실 여부를 살펴봐야 한다는 게 금융권과 법조계의 지적이다. 회사 법인계좌에서 개인 계좌로 대규모 자금이 흘러가는 과정에서 여러 단계의 경고 시스템이 작동했을텐데 9개월간 전혀 체크하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자금세탁 방지 차원에서 일정 규모의 현금 인출, 자금 이체 등은 모니터링하도록 돼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자금세탁 감시를 위해 모든 은행은 하루 1000만원 이상 고액거래 혹은 의심거래가 이뤄질 경우 해당 내역을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1차적으로 은행에서 고액거래를 확인하고 의심거래에 대해선 금융정보분석원(FIU)로 보고돼 이상 거래 유무를 확인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고액 거래로 분류되는 자금 이동이 여러 날짜에 걸쳐 분산돼 집행됐더라도 이상 징후가 있으면 은행은 이를 적발할 수 있다"며 이씨의 횡령이 상대적으로 장기간에 걸쳐 자행됐음에도 이를 잡아내지 못한 데 대해 의문을 표했다.


만약 이씨의 회사 자금 인출 등이 창구에서 이뤄졌다면 은행 쪽 과실은 더 커질 수 있다. 과거에도 한 회사의 자금담당 팀장 A씨가 회사 인감과 인감증명서를 위조해 은행 창구에서 회사 명의의 가짜 계좌를 개설하고 30억원을 인출해 횡령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해당 회사는 A씨에게 속은 은행을 상대로 본인 확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횡령을 막지 못했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해 승소한 바 있다.



(서울=뉴스1) 성동훈 기자 = '회삿돈 1880억원 횡령' 혐의를 받는 오스템임플란트 직원 이 모씨가 6일 새벽 서울 강서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지난 5일 오후 8시부터 피의자 주거지가 있는 경기도 파주시 소재 4층짜리 다세대 주택을 압수수색하던 중 오스템 직원 이모씨(45)를 발견해 이날 오후 9시10분쯤 체포했다. 2022.1.6/뉴스1
물론 이씨의 횡령이 창구에서 자행됐을 가능성은 낮아보인다. 대개 회사와 은행 사이에 ERP(전사자원관리)와 같은 의사결정 및 자금관리 프로세스가 '펌 뱅킹'(Firm Banking)과 같은 시스템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은행이 단지 이씨 측 횡령행위의 일부로 조작된 자금 입출금 지시를 전산 시스템으로 받은 데 불과하다면 A,B씨 사건과 달리 은행 측 과실이 인정되는 폭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한 대기업 자금 업무를 담당했던 관계자는 "회사 차원에서 물품 구매 등으로 자금을 지급할 때에도 구매팀에서 미불전표를 만들고 재무·회계팀에서 해당 전표의 내용이 맞는지 확인해서 미불전표를 승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며 "미불전표 승인 후 지불전표가 만들어지고 이 지불전표가 '펌 뱅킹'(Firm Banking) 등으로 은행에 전산으로 지급지시가 전달돼야만 외부 계좌로 자금이 출금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는 "(이씨의 횡령 방식이) 회사 전산 시스템을 통해 은행으로 전달돼 자금 인출이 있었던 것이라면 은행은 해당 지시가 적법한 것으로 간주하고 자동으로 송금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사전에 회사와 은행이 약속한 절차를 거쳐 자금 출납이 이뤄졌을 경우 은행이 사전에 횡령 징후를 포착하기란 불가능하다"고 했다.

다만 이씨의 횡령이 오스템임플란트의 펌뱅킹으로 자행됐다고 하더라도 해당 은행이 완전히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 금융 전문 변호사는 머니투데이와 통화에서 "펌뱅킹을 통한 자금인출 지시를 적법한 지시로 간주한다는 내용이 오스템임플란트와 은행 사이의 거래약관 조항에 있어야 할 것"이라며 "이같은 적법의사 간주 조항이 약관에 반영돼 있지 않다면 은행이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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