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 경우에도 글에서 가리키는 상대방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면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최근 판례들을 살펴보더라도, '글을 익명으로 게시하였고, 게시글 자체로 피고인(글쓴이)을 특정하기도 어려운 점', '피해자의 주거, 나이, 직업 등 피해자를 알아차릴 수 있을 만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지 않은 점' 등을 들어 무죄를 선고한 사례들이 있다.
담당했던 사건 중에서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는데, 의뢰인이 인터넷 사이트에 전(前) 연인에 대한 글을 익명으로 남겨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얻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상대방의 인적사항이 밝혀지게 되자, 의뢰인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였던 사건이다.
수사과정에서 의뢰인에게 명예훼손의 의도가 없었다는 점을 소명할 필요가 있었는데, 특히 의뢰인이 작성한 글에 상대방을 알 수 있을 만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다는 점, 전후 맥락이나 사정에 비추어 볼 때 상대방이 특정되리라는 것을 예견할 수 없었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소명했다. 그리고 수사기관 또한 이 사건에서 피해자가 밝혀지게 된 것은 이례적으로 복잡한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렵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의뢰인에게 혐의가 없다는 불송치 결정을 하였다.
공공연하게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범죄행위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할 의도 없이 그저 자신의 처지를 공감해 주기를 바라거나 위로를 받기 위하여 익명으로 올린 글이, 자신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상대방이 특정되어 버리는 바람에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있다. 이 때에는 글의 내용이나 표현, 전후의 사정 등을 토대로 다른 사람을 비방할 목적은 전혀 없었고, 글의 내용만으로는 지칭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다는 점 등을 소명하여 억울하게 처벌되는 일이 없도록 대응할 필요가 있다. 글/ 법무법인 태림 김도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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