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BTS의 공화적 애국주의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1.12.24 02:05

편집자주 |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
공화적 애국주의란 생물학적 조상에 대한 충성이나 인종, 종교에 대한 맹세가 아니라 자유, 평등, 박애와 같은 국경을 넘어선 보편적 가치와 비지배의 공화주의적 제도를 향한 충성을 뜻한다. 우리 현대사에서 공화주의에 관한 내용을 본격적으로 담고 있는 3·1독립선언은 남을 파괴하는 배타적 감정을 벗어나 오직 자유의 정신에 기반해 스스로를 건설함으로써 우리 민족을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동양의 영구한 평화를 보장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안중근 의사가 순국 직전 저술한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3국이 협력을 위한 기구를 설립하고 공동의 은행을 만들며 공용화폐를 사용하고 상호주권을 존중하여 평화적 관계를 맺음으로써 서양 제국주의의 침략에 맞설 것을 구상하고 있다. 김구 선생의 아름다운 문화국가론은 오직 자유로운 나라에서 가능한 인류의 크고 높은 문화를 꿈꾸며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원했지만 그 꿈이 국가가 넘치도록 부강하여 남의 나라를 침략하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 근대 100년의 역사에 뚜렷한 공화주의의 흐름은 초기에는 민족적 애국주의와 구분되지 않았다. 20세기 초에 민족주의는 약소민족의 독립을 매개로 개인들의 해방을 추구하던 진보의 이념이었다. 그러나 21세기의 민족주의는 사회적 강자가 자신들의 배타적 이익을 위해 고립을 추구하는 반동의 이념으로 바뀌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 진전의 보루였던 국민국가를 점령하여 혐오와 배제의 성채로 변질시켰고 민족적 애국주의 역시 퇴행적 부족주의나 극우 인종주의를 뜻하는 다른 이름이 되었다.

독립운동에 나선 고단한 삶 속에서도 단순한 반일에 그치지 않고 보편적 공화의 이상을 추구한 사람들이 있었다면 최근에는 방탄소년단(BTS)과 이들의 세계적 팬덤 '아미'의 활동이 공화적 애국주의의 정신을 닮았다. K-팝의 혼종성이 이미 국경을 넘어선 것처럼 초연결사회지만 개인들은 고립되어 있는 역설의 시대에 이들은 개인이 겪는 불안과 고통을 위로하면서 너의 상처가 곧 나의 상처고 자신에 대한 사랑이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지는 연대의 정신을 말한다.


즉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사회에 대한 BTS의 비판은 고통받는 이들에 대한 공감과 연대로 나아가고 BTS는 이를 위해 당신이 어디 출신이든, 피부색과 정체성이 무엇이든 자신의 목소리와 이름으로 말하라고 요청한다. 아미 역시 재난, 전쟁,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통해 차별과 폭력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을 표현하고 있다. 최근 유엔 연설에서 BTS는 코로나 팬데믹 아래서도 세상은 멈춘 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끝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것이고 결국 우리는 잃어버린 세대가 아니라 환영의 세대가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좋은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BTS는 가장 영향력 있는 공화주의적 시민 양성의 학교다. 현대사회에서 시민에게 기대되는 덕목은 공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사적인 자율성을 조화시키는 균형감각,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실천적 지혜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적극적이면서도 관용적인 태도, 정의에 대한 날카로운 감각과 유연한 합리성을 지닌 채로 이웃의 안전이 곧 나의 안전이라는 팬데믹 시대의 초연결성을 인지하고 국경을 넘어서 서사적 자아를 완성해가는 개인이 공화적 애국주의를 실천하는 시민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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