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 겨울임에도 한낮 기온은 섭씨 35도를 넘나들었다. 지난해 11월24일, UAE(아랍에미리트)의 토후국 두바이는 서울의 한여름과 다를 바 없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두바이 국제공항 앞에서 차를 타고 1시간 남짓 달렸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 풍경과는 사뭇 이질적인,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첨탑이 눈에 들어온다. 두바이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단일 부지 태양광·열 복합 발전소인 '무함마드 빈 라쉬드 알 막툼 솔라파크'(MBRM Solar Park)의 홍보관인 '솔라 이노베이션 센터'다. 석유 경제에서 벗어나 '탄소중립'(Net Zero)으로 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석유로 먹고 살아온 사우디아라비아, UAE 등 중동 산유국들이 역설적으로 석유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수소,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아낌없이 쏟아붓고 있다. 전 세계적인 물결인 탄소중립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화석연료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걸 중동 산유국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산유국들의 운명은 이제 '석유'가 아닌 '탈(脫) 석유'에 달려있다.
1일 코트라(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중동지역본부 등에 따르면 사우디, UAE, 카타르, 오만 등 주요 산유국들이 최근 앞다퉈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다.
최근 '2060년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를 발표한 사우디는 2030년까지 전력 생산량에서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50%까지 확대할 계획이다. 현재 310MW(메가와트) 수준인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의 생산 용량을 2024년 27.3GW(기가와트), 2030년 58.7GW까지 끌어올릴 예정이다. 특히 사막 지형인 사우디는 1㎡당 연평균 일사량이 세계 최고 수준인 5700~6700Wh(와트시)에 달하는 등 태양광 발전을 위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최근 사우디 정부는 수소를 신재생에너지 전략의 핵심으로 점 찍고 투자를 급격히 늘리고 있다.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주도 아래 사우디 북서부 홍해 인근 사막 지대에 건설 중인 '네옴 시티(Neom city)'에선 태양광·풍력만으로 바닷물을 수전해 방식으로 분해해 그린수소(생산 과정에 탄소 배출이 없는 수소)를 생산하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이를 통해 하루 650톤의 그린수소와 매년 120만 톤의 그린 암모니아를 생산하는 게 목표다. 사우디는 세계 최대 석유기업인 국영 사우디아람코를 앞세워 세계 최대 수소수출국이 되겠다는 야심을 숨기지 않고 있다.
UAE는 중동지역에서 신재생에너지 개발을 가장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는 나라다. 'UAE 에너지 전략 2050'을 통해 2050년까지 청정에너지 발전 비율을 50%까지 확대하고, 탄소 배출량을 70% 저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UAE의 최대 토호국 아부다비는 세계 최초의 탄소제로 도시인 '마스다르 시티(Masdar City)'를 건설 중이다. 지난해 1월엔 아부다비 국부펀드 무바달라(Mubadala)와 국영석유회사 ADNOC, 국영지주사 ADQ 등 3사 간 수소동맹을 체결하고 수소경제에 대한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2025년이면 녹색 암모니아 20만톤을 생산할 수 있는 생산설비가 아부다비 칼리파산업단지(KIZAD)에 들어설 예정이다. 다른 토호국인 두바이도 'MBRM 솔라파크'를 중심으로 총 5000MW 규모의 재생에너지 설비를 계획하고 있다.
카타르와 오만도 신재생에너지 전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카타르는 국영에너지기업 카타르페트롤리엄(Qatar Petroleum) 주도로 800MW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추진 중이다. 오만은 2028년부터 25GW 규모의 태양광 설비와 연계해 연간 180만 톤의 그린수소를 만들어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그린수소 생산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양기모 코트라 중동지역본부장은 "전 세계적인 화두인 2050년 탄소중립을 산유국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자가 사라지는 대사건"이라면서 "산유국으로선 생존을 위해 석유 의존형 경제구조에서 반드시 탈피해야 하는 만큼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한국과 중동 산유국 간에 커다란 협력의 기회가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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