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국빈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시드니에서 앤소니 노만 알바니즈 노동당 대표(호주 제1야당)를 만나 종전선언의 의미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알바니즈 대표 접견 뿐 아니라 이번 호주 국빈 방문에서 소화한 여러 공식 행사에서 거듭 종전선언을 언급하며 한반도 평화의 의미를 역설했다.
문 대통령이 이처럼 미국의 핵심 동맹국인 호주에서 종전선언을 강조하는 건 우리나라를 둘러싼 외교적 환경이 그만큼 상황이 녹록치 않아서다. 미국과 첨예한 갈등을 벌이고 있는 중국은 호주와도 사이가 좋지 않다. 실제 호주와 중국은 석탄을 비롯한 에너지 자원 분야 등 곳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우리나라 입장에선 종전선언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해선 북한 설득을 비롯해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런 상황에서 호주를 국빈 방문한 문 대통령으로선 양쪽 모두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문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간) 캔버라에서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와 함께 가진 기자회견에서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외교적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힌 것도 이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특히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에 대해서는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로부터도 참가의 권유를 받은 바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문 대통령이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 여부에 대해 입장을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 사이에 놓인 한반도 현실에서 베이징 올림픽 문제가 주권국으로서 스스로 결정할 문제임을 강조한 것이다.
정치권에선 문 대통령이 이처럼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베이징 동계올림픽의 외교적 보이콧 동참에 유보적 입장을 밝힌 건 '남북미중 종전선언' 불씨를 살리겠다는 의지로 분석했다.
그러면서 "호주는 인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역내 갈등 분쟁 원하지 않는 걸로 안다"며 "한국은 역내 평화를 위해 호주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오늘 호주 방문은 중국의 입장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 탄소중립 기술 협력 확대, 자주포 획득 사업 등 방산협력을 강화하는 게 한국 국익에 매우 중요했다"며 "그것이 역내 평화와 번영, 세계경제 회복에도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우리 정부에 있어 미국과 호주는 강력한 동맹국이고 중국의 경우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할 이웃 나라이자 경제적으로도 꼭 필요한 나라란 입장을 확실히 밝힌 것이다.
문 대통령은 아울러 '바이든 정부가 첫 대북제재 조치를 한 가운데 종전선언 구상에 대한 입장을 확인 해달라'란 질문에 "종전선언은 어떤 내용이 담겨야 하는지 관련국 협의가 필요하다"며 "종전선언은 그 자체가 궁극적 목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종전선언 이후 한반도 평화 추진 과정에서 어떤 프로세스가 있어야 하는지 관련국들 간 공감이 이뤄져야만 종전선언이 이뤄질 수 있는 문제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밖에 "종전선언은 7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종식한다는 데 의미가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북, 북미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중요한 대화 모멘텀, 비핵화 협상을 본격 시작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된다는 중요한 과정으로써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정부는 마지막까지 가급적 대화를 통해 접근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외에도 '양안관계와 관련해 미국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해 동맹국인 호주가 참여하지 않는 건 상상할 수 없다고 했는데 한국 입장은 무엇인가'란 질문에 "양안관계(중국과 대만)의 평화와 안정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고 긴밀하게 연계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대화를 통해서 평화롭게 양안관계가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며 "양안관계의 평화와 안정이 지속돼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에 대해서 국제적으로 함께 협력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이어 "(모리슨) 총리께서 말씀하신 NPT(핵확산금지조약) 준수와 오커스(미·영·호주 외교안보 협의체), 쿼드(미·일·호주·인도 안보회의체) 등은 인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기여하는 방향으로 운영돼 나가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이처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사안별로 특정 입장을 요구받는 탓에 고심이 클 수밖에 없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전날(13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오커스(AUKUS)를 지지해준 점에 감사하다고 말했는데 (대중국 견제에 동참하라는) 은근한 압박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오커스는 미국·영국·호주 등 3국 외교안보 회의체로 최근 이들 국가는 모두 베이징올림픽에 대한 외교적 보이콧을 선언했다. 중국의 신장 위구르자치구와 홍콩에서의 인권탄압에 항의한다는 명목이다.
박 수석은 "평창동계올림픽 때를 기억해보면 한반도 상황이 엄중하던 시기에 평화올림픽으로 북한 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한반도 평화를 만들어낸 모멘텀이 되지 않았냐"며 "이번 베이징동계올림픽도 그런 평화의 올림픽이 되기를,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역내 평화의 올림픽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대표단이나 문 대통령이 직접 올림픽에 방문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모든 가능성과 제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하게 될 텐데 말씀드리기는 시기가 너무 이르다"고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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