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침투하는 '식자재마트'…"대형마트보다 더 해" 영세상인 곡소리

머니투데이 이재은 기자, 김은령 기자 | 2021.12.15 08:00

[MT리포트]규제가 낳은 新포식자 식자재마트(上)

편집자주 | 의무휴업, 입점제한 등 유통규제가 대형마트에 족쇄를 채운 사이 식자재마트가 새로운 포식자로 성장했다. 전통시장이나 소상공인 보호를 명분으로 규제를 만들었지만, 정작 영세 슈퍼마켓은 크게 줄어든 반면 식자재마트가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급성장, 대형마트를 위협할 정도다. 지난 10년간의 규제로 기형적으로 왜곡된 마트 지형을 살펴본다.



홈플러스·롯데마트 사라진 자리 채우는 '식자재마트'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식자재마트가 고객들로 분주하다. /사진=이재은 기자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살리자는 취지에서 도입한 대형마트·기업형슈퍼마켓(SSM)에 대한 강도높은 규제의 틈새를 비집고 식자재마트가 골목상권의 새로운 포식자로 떠올랐다. 전통시장 상인들이나 중소 슈퍼마켓 사업자들과 갈등을 빚는 일이 생겨나는가 하면 업황 부진으로 문을 닫는 대형마트 자리에 식자재마트가 진입하며 대형마트와 SSM 등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하면서다. 식당, 음식점 등에 식자재 납품하며 운영됐던 식자재마트는 규제로 대형마트 등이 월 2회 문을 닫는 틈을 타 일반 소비자들의 발길을 붙잡으며 중견기업 수준으로 성장했다. 지난 10년간의 유통 규제 하에서 살아난 것은 전통시장도, 영세 소상공인도 아닌 식자재마트뿐 이었다.

14일 관련 업계와 산업통상자원부의 주요 유통업체 매출 동향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해 오프라인 유통시장에서 대형마트와 SSM 매출은 감소한 반면 대형 식자재마트는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대형마트와 SSM은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른 규제에 더해 코로나19(COVID-19)에 따른 외출 자제, 다중이용시설 기피까지 겹치며 각각 전년비 3.0%, 3.8% 매출이 줄었다. 유통산업발전법은 전통시장 반경 1㎞ 이내를 보호구역으로 정해 3000㎡ 규모 이상의 대형마트와 대기업이 운영하는 상점은 추가 출점할 수 없도록 하고, 이미 있는 점포는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등의 규제를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3000㎡ 이하 면적에 대기업이 아닌 사업자가 운영하는 식자재마트는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식자재마트가 1년 365일, 24시간 영업하는 이유다. 코로나19 타격도 비껴갔다. 중소상공인이 운영하는 점포로 분류돼 긴급재난지원금 등 사용처로 선정돼 수혜를 입은 덕이다.

국내 최대 식자재마트 세계로마트는 지난해 3977억원 매출액을 기록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2019년 매출(3328억원) 대비 약 20% 늘었다. 국내 최대 식자재마트 중 하나인 장보고식자재마트 역시 2019년 매출 3164억원에서 지난해 3770억원으로 약 17% 성장했다. 몸집도 꾸준히 키웠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에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국의 식자재마트 점포 수는 최근 5년(2014~19년) 간 74% 증가했다. 전체 시장규모는 약 9조7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대형마트와 유사한 규모의 점포도 우후죽순처럼 늘었다. 인천 미추홀구 세계로마트, 김포시 양촌읍 세계로마트, 수원시 권선구 마트킹 등은 대형마트 수준의 규모를 자랑하지만, 3000㎡에 살짝 미치지 못하는 규모로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 세계로마트 학익점의 경우 3000㎡ 규모가 넘지만 매장을 1000㎡ 단위로 쪼개 운영하면서 규제를 피하기도 했다.

자본력도 더 이상 소상공인 수준이라고 볼 수 없단 지적이 나온다. 대형마트가 수익성 악화나 임대료 부담 등으로 버티지 못하고 나간 자리를 식자재마트가 채우는 일이 늘어나면서다. 앞서 2018년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해있던 홈플러스 동김해점이 폐점한 뒤 이 자리를 식자재마트인 '일등마트'가 채웠고, 임대료가 비싸 여러차례 유찰됐던 롯데마트 구리점은 지난 6월 식자재마트인 '엘마트'가 연 임대료 33억원이 임대권을 낙찰받아 새로 문을 열었다.

상황이 이러하자 식자재마트에 규제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임원배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회장은 "최근 10년간 전국에 (소형) 슈퍼마켓 5만여곳이 사라져 골목상권이 전부 무너졌다"며 "식자재마트에도 의무휴업 확대와 허가제 도입 등이 시급하다"고 했다. 연합회는 현행 유통산업발전법 규제대상 면적을 3000㎡에서 1000㎡로 하향 조정하고, 식자재마트에 대해서도 의무휴업 등 대형마트 수준의 규제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권에서도 식자재마트 규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10월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식자재마트 때문에 소상공인의 피해가 막심하다"며 "산업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하자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식자재마트가 상권 내에서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했다. 이에 국회에도 식자재마트도 출점규제와 영업규제에 적용하는 내용의 유통산업발전법 일부 개정안 등이 발의돼 있다.

반면 규제에 회의적인 반응도 나온다. 식자재마트의 경우 전국단위로 운영되는 없고 빠르게 성장했지만 아직 대부분의 경우 중견, 중소기업 규모에 그치고 있어서다. 특히 규제를 확대하기 보다는 그동안의 유통 규제의 효과와 영향을 제대로 측정해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대형마트를 중심으로 한 규제 결과 식자재마트만 기형적으로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며 "그렇다고 식자재마트에도 규제를 확대해 한다면 또다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 전체 유통규제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시장 죽이는 식자재마트"…깊어지는 골목 갈등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12일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식자재마트가 고객들로 분주하다. /사진=이재은 기자
#2018년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해 있던 홈플러스 동김해점이 폐점했다.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월 2회 휴무'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금지' 등의 규제를 받고 있는 만큼 수익성 악화를 피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5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삼방시장 상인들은 기뻐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이 자리에 대형 식자재마트인 '일등마트'가 입점하면서 시장이 발칵 뒤집혔다. 시장 상인회가 "대형마트보다 식자재마트 입점시 전통시장의 피해가 더 크다"며 곳곳에 식자재마트 입점 반대 현수막을 내걸었지만, 끝내 식자재마트는 문을 열었다.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과 골목 상권을 위협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실제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식자재마트는 본래 식당이나 소매점에 식자재를 저렴하게 판매하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식자재에 국한하지 않고 전통시장과 일반 마트 판매 품목까지 두루 취급하는데다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다는 장점에 일반 고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식자재마트에 손님을 빼앗긴 소형 슈퍼마켓과 전통시장 상인들은 상권 보호 대책 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1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최근 수년간 전국 곳곳에서 식자재마트와 전통시장 간의 갈등이 첨예하게 빚어지고 있다. 2012년부터 대형마트 규제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전통시장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 원인 중 하나로 식자재마트가 지목되면서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유통학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식자재마트는 취급품목이나 고객이용패턴 등이 전통시장과 겹쳤다. 유통산업연합회가 분석한 '식자재마트가 주변상권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에서도 식자재마트 출범 1년 후 100m 이내 전통시장 매출액이 6.97% 감소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식자재마트와 골목시장간의 갈등은 첨예하다. 2018년 10월 인천 계산전통시장 상인회는 계양구청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인천시 계양구 계산동 일대에 식자재마트 건축 허가를 내어주지 말아달라는 요청이었다. 구청은 식자재마트 허가를 두 번이나 반려했지만, 행정심판 끝에 '우성식자재마트 계산점'이 문을 열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마산어시장과 근처의 엔씨식자재마트, 시흥시 삼미시장과 근처의 세계로마트, 서울시 중랑구 우림시장과 근처의 우림식자재마트, 제천시 중앙·내토·동문시장과 근처의 씨케이식자재마트 등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특히 홈플러스 김해점이 폐점하고 그 자리에 일등마트가 들어섰듯, 롯데마트 구리점이 폐점하고 엘마트가 입점하는 등 기존 대형마트의 자리를 식자재마트가 대신하는 사례까지 늘며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식자재마트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한 대기업 계열의 대형마트에 대한 의무휴업 등의 규제를 받지 않아 대형마트보다 피해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한국슈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가 지난 3월5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처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있다./사진=뉴스1,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이에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식자재마트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장인수 더불어민주당 전 중앙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은 식자재마트 영업규제를 촉구하며 지난 3월 삼보일배 시위를 진행했다. 그는 "식자재마트에 채소·과일·식품만 판매하는 줄 알았더니 실제론 공산품·생활용품 등 없는 물건이 없었다"며 "대형마트와 다를 게 없다면 대형마트에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 등 12인은 대형마트·SSM(기업형슈퍼마켓)에 적용되는 출점규제와 영업규제를 식자재마트로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 일부개정안'을 지난해 11월 발의했다. 최 의원은 "대형마트를 규제했더니 식자재마트가 전통시장을 위협하는 포식자로 군림했다"면서 "이번 개정안은 중소상공인, 전통시장 상인 등 약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입법적 보호장치"라고 설명했다. 해당 개정안은 현재 소관위 심사 중이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식자재마트 입점에 제동을 걸고 나섰다. 대구시 의회는 2015년 '서민경제 특별진흥지구 지정·운영 조례'로 전통시장 1㎞ 내에 식자재마트 진입을 제한했다. 조례엔 영업을 시작하기 전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부산시 의회도 지난해 9월 '골목상권보호지구 지정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통과시켰다. 조례는 사업자가 '상권영향 평가서'와 '지역협력 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다. 또 개설지역과 시기를 예고하도록 하고 지역업체가 생산한 상품의 납품 확대, 지역 주민 고용촉진 등을 제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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