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실손의료보험, 고장난 우산 안 되려면

머니투데이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 | 2021.12.09 04:06
정성희 보험연구원 산업연구실장/사진제공=보험연구원
최근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소비자가 체감하는 서비스 시장 평가'에서 실손의료보험이 병원진료와 더불어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이러한 평가는 실손의료보험이 소비자에게 다양한 비급여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아프더라도 부담 없이 치료받을 수 있는 수단이 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 의료공급자인 병·의원의 서비스 활성화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실손의료보험은 소비자에게는 큰 부담 없는 보험료로 의료 이용이 가능하도록 가격 장벽을 낮추고, 고가의 비급여가 필요한 경우에도 선택권을 확대하는 기회를 제공해 왔다.

그렇지만 실손의료보험을 공급하는 보험회사 수는 점차 줄고 있다. 지난해 보험회사가 실손의료보험에서 2조4000억원 이상의 손실을 냈고, 최근 5년 동안 10조원 이상의 적자를 지속했기 때문이다. 일부 병원의 무리한 공급과 소수 보험가입자의 과도한 수요가 맞물리면서 실손의료보험의 미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소수의 악행으로 전체 실손보험금의 누수가 커지면서 국민 생활필수품이 된 상품의 존재가 위태로워지는 전형적인 '왝더독(Wag the dog·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일각에선 전혀 다른 진단을 하기는 한다. 실손의료보험의 지속가능성 위기는 보험회사가 애초부터 상품을 잘못 설계한 데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보험회사들이 실손의료보험을 도입하면서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와 의료기관의 과잉 의료공급의 고리를 간과하면서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초기 상품 설계 단계에서 오류를 범한 책임이 있으므로 보험회사가 앞으로도 계속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실손보험을 존속하게 하려면 병·의원과 보험회사가 서로 신뢰를 회복하고 상생할 수 있는 건강한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실손의료보험을 두고 보험업계와 의료계가 대립을 하면 할 수록 피해는 선량한 대다수의 가입자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선 비급여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합리화와 함께 가격 정상화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 개선이 늦어질수록 소비자들의 효용과 선택권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비급여 서비스를 표준화하고 합리적 비급여 가격 결정체계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나, 이는 중장기과제로서 짧은 기간 내에 효과를 보긴 어렵다.


보험은 비오는 날처럼 좋지 않은 때에 함께 하기에 종종 우산에 비유되곤 한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런 말을 했다. "은행은 날씨가 맑을 때는 우산을 빌려주지만, 비가 오려고 하면 우산을 돌려받는다. 반면 보험회사는 날씨가 맑을 때는 우산을 보관하고 있다가 비가 오면 우산을 돌려준다." 그런데 그 우산이 구멍이 나거나 고장 난 경우라면 비가 오기 전에 미리 고쳐놓는 게 순리이다.

인구 고령화 시대, 위드 코로나(COVID-19) 사회에서 국민 건강보장의 사회안전망은 빈틈없고 튼실해야 한다. 비가 올 때마다 실손의료보험과 의료서비스 시장이 금융소비자의 든든한 우산이 될 수 있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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