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위기의 고추산업

머니투데이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 2021.12.08 02:04
김성훈 충남대 교수
파프리카김치라는 것이 있다. 언뜻 들으면 오이김치처럼 파프리카로 김치를 담근 것으로 보이지만 김치의 주원료인 고추 대신 파프리카를 사용해 배추나 무를 담근 것을 말한다. 어린아이처럼 매운 것을 잘 먹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담그는 김치인데 고춧가루는 약간만 넣거나 아예 넣지 않고 파프리카를 갈아넣어 붉은 색감을 더한 파프리카김치 제조법은 인터넷 등을 통해 꽤 많이 퍼졌다.

얼마 전 '알몸김치' 파동으로 국산 김치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적이 있다. 비위생적인 중국산 대신 국산 김치를 소비하자는 움직임이 일어났는데 당시 김치업계에서는 배추 등 다른 원료는 100% 국산을 쓰겠지만 고추만은 수입산을 사용해 '국산' 김치를 만들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고춧가루 가격이 매우 비싸 사용하기 힘들다는 주장인데 고추산업과 김치산업을 모두 육성해야 하는 농림축산식품부로서는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우리나라 고추산업이 위기를 맞았다. 고추 생산량이 1996년 22만톤에서 2020년 6만톤으로 3분의1 이하로 줄었지만 건고추 수입량은 같은 기간 1만톤에서 13만톤으로 13배 증가해 국산 고추를 빠르게 대체해나가고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국민의 1인당 건고추 소비량이 2000년대 약 4.5㎏에서 2020년 3㎏ 수준으로 줄어들어 고추소비 자체가 위축됐다.

물론 고추농가와 정부, 전문가들이 고추산업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생산비를 줄이기 위한 기계화를 모색하고 고추를 고춧가루나 소스 등으로 가공, 수출하기 위해 대규모 사업단을 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현실은 녹록지 않은데 쌀처럼 한 번에 기계로 수확하지 못하고 여러 번 손으로 일일이 따야 하는 고추의 특성으로 기계화는 진척이 없고 중국산보다 2~3배 높은 가격의 고추상품은 해외 현지매장에서 계속 밀려난다.


상황을 바꾸기 위한 몇 가지 방법은 있다. 고추의 품질을 더욱 높여 중국산과 확연히 다른 프리미엄 상품으로 특화해 시장을 공략하고 소비자들에게 다소 비싸더라도 국산 고추를 사용한 김치와 고춧가루, 고추장 소비를 늘리도록 설득해나갈 수 있겠다. 보다 과감하게 고춧가루에 국산과 중국산을 섞어 가격을 대폭 낮춘 '보급형' 상품을 수출할 수도 있다. 실제 논의된 내용인데 어차피 한국산과 중국산 모두 수입산으로 인식하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100% 중국산보다 가격은 30~50% 정도 비싸지만 품질에서 차별성을 지닌 혼합 고춧가루를 내놓으면 승산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 고춧가루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 100% 국산 고춧가루, 더 나아가 100% 국산 유기 고춧가루를 프리미엄 상품으로 순차적으로 마케팅해나가자는 전략까지 준비됐다. 그러나 당시 이러한 아이디어는 "어찌 감히 싸구려 중국산에 내가 공들여 키운 고추를 섞어서 내보낼 수 있겠는가"라는 농민의 호통에 막혀 시도조차 못한 것으로 기억된다.

파프리카김치, 중국산 김치가 우리 식탁을 모두 차지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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