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예산 밀어넣기' 성공한 여당, 대선 앞에 무력화된 헌법

머니투데이 세종=김훈남 기자 | 2021.12.04 09:00

[세종썰록]

편집자주 | [세종썰록]은 머니투데이 기자들이 일반 기사로 다루기 어려운 세종시 관가의 뒷이야기들, 정책의 숨은 의미를 전해드리는 코너입니다.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국회(정기회) 13차 본회의에서 '607조 7000억원' 규모의 2022년도 예산안이 가결 처리되고 있다. /사진=뉴스1
"정부는 2022년도 예산안에 대한 수정안에서 정부 원안보다 증액된 부분 및 새 비목이 설치된 부분에 대해 이의가 없음을 말씀드립니다. 감사합니다."

3일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예산증액에 동의와 국회 표결로 607조7000억원 규모의 2022년도 예산안 심의가 마무리됐습니다. 메모지를 보며 건조한 동의문구를 읽는 홍 부총리에게서 헌법상 재정당국에 있는 증액동의권을 행사한다기보다 패배에 승복하는 느낌이 든 건 왜일까요. 내용을 보면 이번에도 재정당국이 정치에 나라 곳간을 열어준 셈이니 판정패 혹은 완패라고 할 만합니다.

코로나19(COVID-19) 시국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해도 2년 연속 국회 심의에서 예산이 늘어나는 건 이례적입니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가 예산을 늘리려면 정부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국회 멋대로 예산을 늘려 국민에게 부담을 줘선 안 된다는 게 헌법 정신입니다.

예산뿐만 아니라 내년으로 예정했던 가상자산(암호화폐) 소득세 과세도 2023년으로 1년 연기됐고, 1주택자 양도소득세 과세 기준은 9억원에서 12억원으로 완화됐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여당 일각에선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일시 완화 주장도 나옵니다.

608조원에 달하는 슈퍼 예산과 누더기가 된 세법. 각각 명분과 핑계를 들이대지만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용'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힘듭니다. 재정·과세를 총괄하는 기재부는 의석수로 밀어붙이는 거대 여당과 대선이란 초대형 정치 이벤트 앞에 무기력했습니다.

이 와중에 재정당국의 성과를 꼽자면 전국민에 대한 추가 재난지원금을 막은 건 정도일 겁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10월말 민주당 경선에서 대선후보로 선출되자마자 1인당 30만~50만원의 추가 재난지원금을 공언했습니다. 적게는 10조원 초반에서 많게는 20조원 넘는 재난지원금 재원 조달방안을 두고 다양한 의견이 나왔습니다. 전통적인 지출 다이어트부터 올해 '넘쳐나는' 초과세수를 유예해서 내년에 쓰자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왔습니다. 이를 두고 재정당국 안팎에선 "어불성설"이라는 반응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내년 3월 대선 전 추가 재난지원금을 주려면 그나마 정상적인 방법이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일 정도로 재원 조달 수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올해 11월과 내년 1월 두 시기에 추경을 편성한다는 건 예산 편성 시기나 국회 심의 기간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데다 올해 세수를 내년으로 넘겨 쓰는 건 국가재정법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위입니다.

정말 내년 예산안에 재난지원금 반영을 강행했다면 10조원넘는 적자국채를 더 발행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실제로 국회는 지난해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도 정부안에 없던 코로나 소상공인 지원예산 3조원을 용처도 정하지 않은채 추가했습니다. 올해도 비슷한 일이 벌어지지 말란 법은 없었지요.

결과적으로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18일 추가 재난지원금 '공약'을 철회했습니다. 그간의 전 과정을 복기하면 결국 여당이 수십조원에 달하는 재원조달 방안을 고려하지 않고 국가재정법을 지나치게 자의적으로 해석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비슷한 예로 총 30조원 규모로 늘어난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예산 역시 재정당국은 15조원어치 발행에 대해 4% 국고보조를 하는 것으로 예산을 늘렸습니다. 국고의 발행지원 규모를 15조원으로 늘리되 8%까지 요구받은 지원율은 코로나 이전 수준인 4%로 묶었습니다. 나머지 15조에 대해서도 발행 주체인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하도록했습니다. 국회에 비해 '을'의 위치에 있는 정부 부처가 정치권을 이기는 방법은 결국 이런 원칙에 기대고 버티는 방법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이후 대선이 항상 12월 예산안 처리 후 불과 석 달 뒤인 3월에 열린다는 점입니다. 이런 사태가 앞으로도 매 5년마다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당 대선후보의 간판 공약을 내년도 예산안에 밀어넣는 다수당의 행태와 여기에 끌려다니는 재정당국. 헌법이 정한 예산 원칙에 어긋나는 이런 모습을 앞으로도 자주 보게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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