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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 있었냐면요━
1시간에 6명. 전 세계에서 전·현 남성 연인 혹은 남편에게 살해 당하는 여성의 수 입니다. 세계경제포럼(WEF) 2020 글로벌 성별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 세계 159개국 여성 3명 중 1명, 즉 7억여 명이 일생에 한 번 이상 남성 파트너에게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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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들여다보면━
지난달 25일 유엔 여성기구가 낸 '팬데믹 기간 여성 폭력 보고서'에 따르면 중저소득 13개국 여성 2명 중 1명이 팬데믹 이후 폭력 경험을 경험했다고 답했어요. 이들 국가의 여성 10명 중 7명은 파트너에 의한 언어적 또는 신체적 학대가 더 빈번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엔은 코로나19로 늘어난 가정 내 활동이 '여성 폭력'을 심화했다며 '페미사이드(여성 살해)'의 세계적 팬데믹'이라고 꼬집었습니다.
그렇다고 소득이 높은 '선진국'은 다를까요? 2018년 기준 미국과 캐나다, 싱가포르, 서유럽 국가 등 고소득 국가의 여성 3명 중 1명이 15세 이후 남성 파트너 혹은 모르는 남성으로부터의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나라의 여성 폭력 실태는 언론에 보도된 교제살인과 교제폭력 사건을 바탕으로 한국여성의전화가 낸 통계를 통해 가늠할 뿐입니다. 한국여성의전화에 따르면 지난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 의한 여성 살해'는 언론 보도된 것만 97건에 달했습니다. 살인미수는 131건입니다. 이틀에 여성 한 명이 친밀한 관계의 남성에게 살해되거나 살해 위협을 당한 거죠.
가정 폭력은 피해자들에게 신체·정신적 고통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사회의 경제에도 손실을 가져다 줍니다. 트라우마로 인해 원래 하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되거나 더 나은 직업을 선택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죠. 유럽 '젠더 평등 연구소'는 젠더 기반 폭력으로 인해 유럽연합 경제가 연간 3660억 유로(487조7600억 원)의 비용을 지출하는 것으로 추정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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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말이죠━
스페인은 2004년 여성 폭력을 '젠더 권력에 의한 폭력'으로 보고 별도의 법을 만든 최초의 유럽 국가입니다. 1997년 스페인 TV에 출연해 40년 간 남편에 의한 폭력을 고발한 아나 오란테스가 방송 후 남편에게 살해되는 사건이 일어나자 입법 변화가 시작됐어요. 스페인 내 '여성 살해'는 2007년 76명에서 지난해 45명으로, 유럽에서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감소했습니다.
이바나 밀로반노비치 세르비아 판사는 "여성 살해는 특정 범죄로 인정되어야 한다"고 했어요. 여성 살해의 근본 원인은 다른 유형의 살인과는 다르며 사회 내 여성의 일반적인 지위, 여성 차별, 성 역할, 남녀 간 불평등한 권력 분배, 젠더 고정 관념 등에서 비롯된다는 겁니다.
숫자만 들여다 보면 이렇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살인,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 피해자의 90%가 여성, 가해자의 99%가 남성이었습니다. '어떤 성별이 더 피해 입는다'는 말은 무의미해요.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건 '남녀 대결적 시선'이 아니라 유난히 피해 입는 이들을 보호하자는 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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