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에 판 주식, 1200원에 사겠다" 中 기업 또 '먹튀' 논란

머니투데이 강민수 기자 | 2021.12.03 05:21
한 중국계 기업이 자진 상장폐지에 나서며 중국 기업의 국내 증시 '먹튀' 논란이 또 다시 불거졌다. 일각에서는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인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코스닥 상장사 GRT(그레이트리치과기유한공사)는 지난달 26일 최대주주인 주영남 대표(63.63%)가 나머지 지분(36.37%)에 대한 공개매수를 하기로 했다고 공시했다. 공개매수가격은 주당 1237원으로, 거래정지 전인 지난해 10월 27일 종가(951원)에 30%의 할증을 적용했다.

공개매수 기간은 지난달 29일부터 내년 1월 26일까지다. 공개매수의 목적은 자발적 상장폐지다.

GRT는 중국 강소성에 있는 정밀코팅 광학필름·기능성 코팅소재 전문업체 '강음통리광전과기유한공사'(강음통리광전)를 지배하는 홍콩지주회사다. 지배구조는 GRT가 중국 지주회사인 강소준휘광전과기유한공사(준휘광전)를 100% 소유하고 준휘광전은 사업 자회사인 강음통리광전을 100% 소유하는 방식이다.



"거래 재개 힘쓰겠다"더니…두 달 만에 상폐 결정?



GRT는 지난 9월 30일 홈페이지에 '매매거래 재개 관련 절차 안내'를 통해 "거래 재개를 위해 힘쓰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사진=GRT 홈페이지

의아한 점은 GRT가 자발적 상장폐지를 결정할 만한 마땅한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회사 측은 거래재개를 위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지난해 10월 GRT는 2019년 감사보고서에서 감사의견 비적정을 받으며 거래가 정지됐다. 감사의견 비적정은 상장폐지사유 중 하나다. 이후 거래소로부터 1년간의 개선기간을 부여받아 올해 11월 개선계획 이행내역서를 제출했다. 감사인 변경으로 지난해 감사보고서는 감사의견을 '적정'을 받으며 상폐 사유도 해소됐다.

공개매수 발표 이전까지 GRT는 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를 결정을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만약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거래정지는 해제된다.

거래 재개를 위해 개선계획 내역서를 준비하고 감사인까지 변경했던 회사가 거래 재개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갑작스레 상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난 9월 말까지만 하더라도 GRT는 홈페이지를 통해 "빠른 시일 내에 거래 재개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재무적으로 살펴봐도 큰 문제가 없다. GRT의 올해 1분기(7~9월·6월 결산법인) 매출액은 5억6939만위안(1052억원), 영업이익은 7475만위안(138억원)을 기록했다. 상장 이후로도 꾸준히 흑자를 내왔다.

GRT 관계자는 상장폐지를 결정한 이유에 대해 "공개매수를 통한 상장 폐지 계획은 최대주주가 결정한 사항"이라며 "앞으로 경영 활동의 유연성과 의사결정의 신속성을 확보하고자 결정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상당수 투자자들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점이다. 2016년 10월 상장 당시 GRT의 공모가는 5000원이었다. 그러나 주가는 상장 다음날 '반짝' 8000원대를 기록한 이후 내리막을 기록했다. GRT는 2017년 1월 이후 단 한번도 공모가를 회복하지 못했다. 이번 공개매수 가격(1237원)은 공모가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거래소 관계자는 "자진 상장폐지 신청을 위해서는 발행주식 총수의 95%를 초과하는 주식을 보유해야 요건이 충족된다"며 "GRT의 공개매수 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결과를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국 상폐 기업 86%가 중국계…"韓 시장 놀잇감 되나"



중국계 기업의 상장폐지는 오늘내일의 일만은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상장폐지된 외국 기업 15곳 가운데 13곳(86.7%)이 중국 기업이었다. 이 가운데 자발적으로 상장폐지를 신청한 곳은 5곳이다.

형식상은 퇴출됐지만 사실상 '고의 상폐'가 의심되는 사례도 상당하다. 지난 6월 상장폐지된 에스엔씨엔진그룹은 법정기한까지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아 상폐를 의도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018년 5월 상장폐지된 완리 역시 고의 상장폐지 의혹이 제기됐지만 현지 협조가 어렵다는 이유로 경찰 수사는 사실상 무산됐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일부 중국 기업의 경우 국내 자본시장에서 대우를 못 받는다고 느끼거나 주가에 있어 소외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돼 자진 상폐 결정을 내리기도 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중국 기업의 국내 증시 '먹튀' 아니냐는 지적도 인다. 홍콩·미국 등에 비해 덜 엄격한 한국 증시에 상장해 자금을 끌어모은 뒤 공시 및 사업보고서 제출 등 의무가 부담스러워지자 상장폐지에 나선다는 것이다.

한국거래소는 상장 외국기업들의 투자자 보호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2019년 6월 코스닥 시장 상장규정을 개정했다. 이전까지 외국기업 지주사 상장은 해외 SPC(특수목적법인) 형태도 가능했지만 상장규정 개정으로 지주사가 한국에 소재한 경우에만 허용하도록 개정됐다. 그러나 국내 상장 외국기업 대부분이 2019년 6월 이전에 상장된 만큼 언제든 비슷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공모가의 4분의 1도 안되는 가격으로 주식을 되사들인다면 회사 입장에서는 상당한 차익"이라며 "최근 중국 기업의 상장폐지 사례를 보면 한국 시장이 놀잇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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