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tvN이 방영 중인 '지리산'은 300억원 이상, 올 상반기 인기를 모은 '빈센조'와 '시지프스'는 제작비 200억원대 드라마다. 앞서 K-드라마 물량공세를 자극한 넷플릭스는 '킹덤'에 200억원, 스위트홈에 '300억원', 글로벌 히트작인 '오징어게임'에 250억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최근 상륙한 디즈니플러스도 유명 웹툰 작가 강풀 원작의 드라마 '무빙'에 총 500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처럼 대작들이 늘어나면서 비용을 충당해야 할 국내 콘텐츠 제작진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국내 플랫폼의 경우 제작비를 온전히 보장하지 않는 경우가 여전해서다. PPL(간접광고) 의존도가 점차 높아지는 이유다. 콘텐츠 업계에 따르면, PPL이 공식적으로 허용된 2010년대 초반 드라마 전체 제작비에서 PPL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 자릿수에 그쳤다. 하지만 최근에는 작품마다 20~30% 수준까지 상승했다는 후문이다. 종편에 이어 OTT 등 방송 채널이 급증하고 한정된 시장에서 이들이 경쟁적으로 콘텐츠 제작에 나선 결과다.
특히 편성권을 가진 방송사가 제작사에 드라마 외주를 주면서 충분한 제작비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은 여전하다. 통상 확보할 수 있는 제작비는 50% 안팎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해외 선판매로 충당해야하는데 사실상 배우의 티켓파워에 좌우된다. 결국 제작사가 스스로의 역량으로 부족한 제작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은 PPL뿐인 셈이다.
최근 드라마 시장에서 대하사극이 사라지고, 퓨전사극이 늘어난 것 역시 PPL과 무관치않다. 대하사극의 산실이었던 KBS는 2016년 '장영실'을 마지막으로, 그마저도 24부작으로 제작한 이후 명맥이 끊겼다. 의상과 세트, 막대한 인건비 등이 투입되지만 PPL에는 제약이 큰 게 배경으로 지목된다.
반면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이른바 '타임슬립' 퓨전사극은 곳곳에 PPL을 배치할 수 있어 제작비 조달이 한결 수월하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양승동 KBS 사장이 "태조 이방원과 홍범도 장군을 소재로 한 대하사극을 만든다"며 대하사극의 부활을 알렸지만, 이와 동시에 수신료 인상을 피력했다. KBS의 기대와 달리 수신료 인상에 대한 국민적 반감이 상당한 만큼, 가까스로 살아난 대하사극이 언제 다시 사라질지 모를 형편인 셈이다.
결국 제대로 된 제작비를 보장하는 게 PPL 논란을 벗어날 수 있는 핵심이다. 하지만, 최근 지상파 방송사들의 심각한 경영난과 국내 OTT의 자금력 한계를 고려하면 갈 길이 멀다.
지난 9월 한국방송학회가 주최 토론회에서 김용희 숭실대 교수는 "규모의 경제를 통해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나, 국내 OTT들은 그렇지 못한 여건"이라며 "국내 시장은 인구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해외로 진출을 하거나, 사업자 간 협력을 통해 가입자 확대를 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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