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16년 전 레고가 만든 메타버스의 최후

머니투데이 원종태 에디터 | 2021.11.1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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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의 남쪽 도시 빌룬트는 비가 많이 오는 것 말고 특별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그러다 1932년 목수인 올레 카르크 크리스티얀센이 이곳에서 세계가 놀랄 발명품을 만든다. '레고(LEGO)'다. 대공황이 휩쓸고 간 유럽에서 크리스티얀센은 가구보다 더 잘 팔릴 제품을 찾다가 레고를 개발했다. 너도밤나무 토막들을 모으면 기막힌 장난감이 되는 것이다. 크리스티얀센은 레고를 가구만큼 공들여 제작했다.

하지만 이 나무 토막들이 진정한 '레고'로 진화할 수 있던 것은 그의 셋째 아들 고트프레드 덕분이다. 1949년 고트프레드는 똑딱 단추 원리를 활용해 레고를 서로 서로 결합할 수 있게 했다. 소재도 나무가 아닌 당시로선 획기적인 플라스틱을 썼다. 이렇게 레고는 너도밤나무에서 플라스틱으로 갈아타고, '브릭'이라는 결합 개념까지 도입하며 누구도 상상 못한 혁신의 장난감이 됐다. 어떻게 이어 붙이느냐에 따라 굉장히 복잡한 형태까지 만들 수 있었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레고로 만든 결과물이 재밌고 신기했다. "누구나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레고의 모토는 그냥 빈 말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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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레고는 또 다른 승부수를 던진다. 플라스틱 장난감을 뛰어넘어 '온라인 게임'으로 사업 다각화를 시도했다. 지금 온 세상을 달구고 있는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같은 '메타버스(가상현실)' 게임을 레고는 16년 전 이미 만들려고 했다. '레고 유니버스'라는 MMO(다중사용자 온라인 게임) 게임이 그것이다.

레고는 미국 넷데빌을 개발업체로 선정했다. 북유럽과 미국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 당시로선 개념조차 낯선 MMO 게임 개발이 시작됐다. 당초 3년의 개발 기간보다 2년이 더 늦어진 2010년 10월, 레고 유니버스가 출시된다. 레고 장난감의 수많은 스토리가 게임 속에 녹아 들었다. 레고 유니버스는 7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쌓아온 레고의 명성을 등에 업고, MMO 게임이라는 혁신을 만나 날개를 펼 것만 같았다. 그때만 해도 누구도 소리도 없이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를 눈치 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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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유니버스는 수익모델 설정이 화근이었다. 이 게임은 당시 온라인 프로그램을 구원할 것처럼 여겨졌던 '구독결제'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이 방식이 되레 발목을 잡았다. 레고 유니버스는 13세 이하 초등학생들이 핵심 고객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고객이긴 해도 돈을 낼 능력은 없었다. 이들이 구독결제를 하려면 부모를 졸라야만 했다. 하지만 어떤 부모들도 자녀가 매달 돈을 내고 게임을 하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부모들은 구독결제를 해주면 자녀들이 하루 종일 게임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달 15달러에 달하는 구독결제를 하려는 회원들은 좀처럼 늘지 않았다.

MMO 게임은 많은 플레이어를 끌어모아야 성공이 보장된다. 가상 현실에서 채팅도 하고, 소통도 하고, 웃고 떠들어야 한다. 하지만 레고 유니버스는 반대로 갔다. 채팅을 할 때 숫자도 쓰지 못하게 할 정도로 규제가 많았다. 플레이어가 없는 MMO 게임은 혼자만 갖고 있는 핸드폰 같았다. 결국 레고 유니버스는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출시 15개월 만인 2012년 1월 31일 영구 폐쇄를 결정한다. 레고 유니버스가 사라진 이후 수많은 전문가들은 레고가 이 게임을 구독결제 대신 '개별 아이템 결제'로 진행했더라면 그렇게 쉽게 망하진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무료 게임의 품질을 끌어올려 팬 층을 두텁게 하지 못한 것도 결정적 패인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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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가 엄청난 대세처럼 자리 잡은 요즘, 16년 전 레고 유니버스의 흥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메타버스는 단순하면서 개방적이어야 한다. 고객들이 돈을 내고 싶을 때까지 무료로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제대로 못한 레고 유니버스는 폐쇄됐고, 이것에 집중한 마인크래프트와 로블록스, 게더타운은 메타버스의 주인공이 됐다. 언제 하느냐 못지 않게 어떻게 하느냐도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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