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계 주목한 '변호사의 의뢰인 고소사건' 전말…배심원단 '무죄'

머니투데이 유동주 기자, 성시호 기자 | 2021.11.22 06:00

성폭력 피해 전문 변호사, 사무실 문 비집고 들어와 '수임료 반환'요구하며 항의한 의뢰인 고소…국민참여재판서 '만장일치 무죄'

영화 '배심원들'의 국민참여재판 법정./사진=뉴시스

서울 한 대학원에서 조교로 일하다 지도교수와의 회식자리에서 욕설을 듣고 성추행까지 당한 여성 A씨. 지도교수 친구인 가해자 중 한 명은 한때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는 문자메시지까지 보냈지만, 검찰에서 '증거 불충분' 무혐의로 결론내자 역고소가 시작됐다.

명예훼손 등 혐의로 궁지에 몰린 A씨는 신용카드 대출까지 동원해 유명 변호사에게 민·형사 소송을 맡겼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1년 넘게 같이 했던 변호사로부터 추가 고소를 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됐다.

지난 9일 서울중앙지법 국민참여재판 법정. 30대 여성 A씨가 피고인석에 앉았다. A씨는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상 공동폭행과 방실침입 그리고 형법상 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어머니 B씨(62), 외삼촌 C씨(56)와 A씨가 평소 믿고 따랐던 교회 선교사 D씨(61·시각장애인)도 함께 기소돼 A씨 옆에 나란히 앉았다.

A씨 일행은 2019년 4월2일 서울중앙지법 인근 이은의 법률사무소 응접실에서 E사무장을 폭행한 뒤 변호사 사무실에 침입해 약 3분간 큰 소리로 항의하며 수임료 환불을 요구하는 등 약 15분간 업무를 방해했다는 혐의로 이 변호사와 사무장 E씨에게 각각 고소당했다. 검찰은 고소 내용대로 그대로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이 변호사는 유명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 측을 대리해 유명해진 법조인이다. A씨는 성추행 피해사건에서 오히려 역고소를 당하자 학교 선배의 소개로 변호사를 소개받았다가 그 선배가 가해자인 지도교수 측에 몰래 도움을 주고 있었던 사실을 뒤늦게 알아채고, 평소 언론 기사 등을 통해 알고 있었던 이 변호사로 변호인을 교체했다.

하지만 둘의 마지막은 결국 피고인석과 증인석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로 앉아 서로 마주보는 사이가 됐다. 비공개 증언을 예정했다가 당일 재판정에서 공개 증언을 자청한 이 변호사는 A씨 일행에 대해 처벌을 원한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A씨 일행은 이 변호사 사무실에서 흥분된 상태로 소리를 지르며 항의했다.

"본인이 못하겠으면 돈 내놔야 할 것 아냐 딴 변호사 선임하게! 뭐하는 짓이야!"
"추락 한번 해봐! 언론에 나와선 착한 척 다 하더니"

법정에선 당시 현장모습을 녹화한 영상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재생됐다. 영상에서는 E사무장이 이 변호사가 안에 있던 방 문짝을 붙잡는 등 가로막는 가운데, A씨 일행이 E사무장을 떠밀어 문 사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간 뒤 이 변호사 주변에 서서 큰 소리로 항의하는 모습이 보였다. 이 변호사와 사무장은 A씨 일행을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관들이 출동한 뒤에야 현장이 정리됐다. 인턴 연수 중이던 로스쿨 졸업생이 휴대폰으로 촬영했던 이 동영상은 처음엔 피고인들인 A씨 일행에 불리한 증거로 보였다.

변론이 끝나자, 검사 측은 피고인 A·D씨에게 각 벌금 150만원, B·C씨에게 각 벌금 120만원을 구형했다. 이들이 기소된 혐의에 비해서는 가벼운 구형량으로 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배심원 7명은 새벽 2시를 넘긴 시각, 평의 끝에 만장일치로 무죄 평결을 냈다. 평결을 받아든 재판부도 그 자리에서 피고인 4명 전원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무엇이 배심원단의 무죄 판단을 구체적으로 이끌어냈을지는 알 수 없다. 배심원단에 대한 언론의 접근은 제한돼 있어 평결과 평의 과정에 대한 취재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18시간 동안 열린 재판을 방청하면서 목격한 장면들을 복기해보면 '무죄'로 판단한 배심원단의 심정 혹은 사고의 과정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었다. 배심석과 방청석이라는 자리만 다를 뿐, 국민참여재판 방청객들은 배심원단처럼 검찰과 변호인 양측 공방을 구경하는 입장은 사실상 동일하기 때문이다.

9일 오전 9시30분에 서울중앙지법에서 시작한 국민참여재판은 자정을 넘긴 10일 새벽 2시35분 무죄선고로 막을 내렸다.

18시간 강행군을 방청석에서 지켜본 머투 취재진이 주요 쟁점과 진술을 다시 정리했다.


의뢰인의 서면오류 문구 등 수정요구, 의견서 추가 제출요구 등에 이견…재판 9일 앞두고 '사임계 제출'



유명 변호사가 자신의 의뢰인을 직접 고소했다는 점에서 변호사업계 등 법조계의 관심을 모았던 이번 사건은 이 변호사가 A씨의 소송을 맡아 진행하다, 갑작스레 사임을 통보하면서부터 시작됐다.

A씨 측 변호인단과 검찰 측은 당시 이 변호사의 행동과 A씨 측 대응이 적정했는지 따지기 위해 서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양측이 의욕적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서 새벽까지 국민참여재판이 이어졌다. 재판부가 배심원들의 건강상태와 다음 날 출근을 걱정하며 긴 시간 변론을 진행하는 변호인단에게 주의를 줄 정도였다.

2017년 서울 모 대학 조교로 일하던 대학원생 A씨는 지도교수와의 회식 자리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으나 검찰이 교수를 무혐의 처분한 이후 역고소를 당했다. 그러자 A씨는 당시 성폭력 피해자를 대리하며 여러 차례 언론에 보도돼 유명했던 이 변호사를 찾았고, 이 변호사가 요구한 착수금 1300만원을 현금으로 납부한다. A씨가 신용대출로 마련한 돈이었다.

이 변호사는 A씨가 피고소된 형사건에 대해선 여성가족부 지원금 200만원을 추가로 받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약 1년 반이 지나 파국을 맞았다.

두 사람이 계약을 맺던 무렵 이 변호사는 A씨에게 지도교수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선제적으로 내자고 했고 A씨는 그 제안에 따랐다. 사건들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면서 A씨는 이 변호사 측과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아직 정식 변호사 자격이 없던 로스쿨 졸업생 출신 인턴이 자신의 사건 서류를 작성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 변호사를 대신한 인턴 변호사가 맡아 서면을 작성하면서 자신의 사건에는 맞지 않는 다른 내용이 적혀있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고 생각해 A씨는 불만을 갖게 된다.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인턴이 아니라 본인이 직접 쓴 서면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참여재판 과정에서도 입장이 바뀌지 않았다. 하지만 A씨 측 변호인단은 수임료 반환에 관한 민사사건에서 이 변호사가 서면을 직접 쓴 증거를 내지 않은 점, 인턴과 주고받은 메일·카톡의 전부를 제출할 수 있음에도 일부만 제출해 서면 초안이 누가 쓴 것인지 알 수 없게 한 점에 비춰볼 때 인턴이 썼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그런 취지로 변론했다.

A씨는 인턴이 보내 온 서면에 대해 전화 통화로 수정을 요구하다가 항의하게 됐다. '소송 수행이 불성실하다'는 취지로 통화를 하면서 양측이 언성을 높이는 등의 마찰을 겪은 뒤 이 변호사는 "내가 (수임료)반 정도 돌려줄 테니 민사, 형사(사건을) 가져가"라며 민사소송 재판부에 사임계를 제출했다. 재판 첫 변론기일을 9일 앞둔 시점이었다.

결국 두 사람의 갈등은 수임료 반환액수에 대한 이견으로 다툼이 점점 커졌다. 다른 변호사를 선임하기 위해 돈이 급하게 필요했다는 A씨는 어머니 등 일행과 함께 '사임했으니 빨리 다른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게 돈을 전액 돌려달라'며 사무실 출입문을 비집고 들어가 항의했다.

사건이 발생하자 이 변호사와 사무장은 공동폭행·방실침입·업무방해 등으로 고소해 재판이 열리게 된 것이다.

이날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 변호사는 A씨 사건에서 사임할 때 수임료 전액 반환요구에 응하지 않은 경위에 대해 "문자나 카카오톡 등으로 항고장, 재정신청서, 이유서 등 서류를 고쳐달라는 여러 요구를 받아왔다"며 "(A씨가 전화통화로) 한 시간동안 계속해서 화를 내는 상황이 있었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등 일을 계속하기 힘들었다"고 주장했다. "A씨 사건 관련해 나눈 이메일만 100통이 넘는다"며 의뢰인과 연락한 횟수가 많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이 변호사는 자신이 "13평 남짓 사무실을 반절 나눠쓰고 직원 하나 있는 개업 변호사"라며 "여성 변호사는 법조계 안에서도 갑을병정 밑쯤 된다고 생각해 보호하는 제도가 없다"고 했다. 이어 "(성폭력 피해자 법률대리를 하며)감정노동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한 뒤 "빛좋은 개살구처럼 이중삼중의 고충이 있다"고 토로했다. "사건을 겪으며 다음에 어떨지 몰라 이번에 고소했다"며 고소경위를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A씨 측 변호인단은 "이 변호사와 A씨가 예전에 주고받은 연락을 보면, 깍듯하고 조심스럽던 A씨가 왜 변했는지 알 수 있다"며 반박했다.

변호인단은 "A씨의 형사사건이 긴 과정 끝에 북부지검에서 남부지검으로 이송됐는데도 이 변호사 측에서 송부한 의견서 양식에는 갑자기 북부지검이 등장한다"며 변호사 자격도 없던 당시 인턴에게 변호인 의견서 관련 업무를 맡긴 흔적이 있고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려 있었다는 점을 짚었다. 1년 반이라고 했던 이 변호사의 수임기간에는 각 지검이 사건이송을 거듭하며 지연된 기간까지 포함되어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어 변호인단은 이 변호사 측이 보내온 의견서에 대해서 "조교 '해직'과 '휴직'을 구분하지 못해 대학 교수와 당국으로부터 학습권을 침해당한 A씨 사건의 사실관계를 어그러뜨리는 문제를 일으켰다"며, "관련 민사소송도 수행해야하는데 이상하게 쓰니 (A씨가) 얼마나 황당했겠냐"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사사건에 대해서도 "이 변호사가 결국 수임료의 반액조차 반환하지 않아 A씨는 다른 변호사를 구하지 못했고, 민사재판에서는 기일이 이미 한 차례 변경된 상황이라 A씨가 낸 기일변경신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며 "이 변호사가 1년 반 동안 증거도 거의 제출하지 않았고, A씨는 기일에 변호사조차 대동하지 못해 결국 변론기일이 그대로 끝났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소송서류를 제대로 작성해주지 않았고, 재판기일이 임박한 시점에 사임하여 A씨가 급박한 상황에 놓였기 때문에 당시 A씨는 이 변호사에게 직접 찾아가 수임료를 반환하라고 항의할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의 변론이다.


검찰 "사무장이 가로막은 문 비집고 들어가 '공동폭행·방실침입', 약 15분 항의과정은 '업무방해'"


A씨 일행의 행위를 공동폭행·방실침입·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는지 여부는 검찰과 피고인 양측이 맞붙은 핵심쟁점이었다.

검찰은 A씨 일행이 사무실 출입구 문짝을 잡은 채 막아서는 사무장 E씨를 밀친 것은 공동폭행에 해당하며, 평소 출입이 자유로운 장소가 아닌 이 변호사 사무실에 강제로 들어왔으니 방실침입죄를 물을 수 있고, 사무실 내에서 소란을 피웠기 때문에 업무방해죄까지 성립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B·C·D씨에 대한 공동혐의 적용에 대해 "여성 변호사 사무실에 여러명이 가서 강하게 밀치는 행위가 맥락상 가볍다고 할 수 없다"며 "처음부터 대화보다는 여럿이 함께 변호사를 괴롭게 해서 (수임료) 전액을 받으려고 한 건 아니냐"고 했다.


영상에서 E사무장은 사무실에서 A씨 측에 밀려나는 모습이 확인됐고, 재판과정에서 E사무장이 사건 이후 병원에서 1주짜리 진단서를 발급받았다는 점도 인정되기도 했다. 이 변호사도 "충격과 공포가 컸다"며 "하루종일 일을 못했다"고 진술했다.

변호인단은 검찰 측의 공소취지를 모두 부인했다. A씨 일행의 공동폭행 혐의에 대해 "단순히 신체에 닿으면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향해야' 한다"며 "A씨 측은 E사무장과 문 사이의 빈틈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이지 사무장을 폭행해 밀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반박했다.

방실침입 혐의에 대해서는 이 변호사가 본인 방에서 "상담도 하고 기자회견도 했다"며 "사건을 맡긴 의뢰인이나 사건관계인의 출입이 예정된 장소였다"고 했다. 이어 "수임료를 돌려주지 않고, 만나주지도 않는 이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방으로 들어간 것은 사회통념에 비출 때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도 변호인단은"A씨와 이 변호사가 작성한 계약서를 보면 계약이 해지되어도 어떻게 정산할지 협의해야 했다"며, (이 변호사에게) 수임료를 어떻게 할지 성실하게 협의할 의무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A씨는 계약서상 수임료 정산 업무를 위해 법률사무소를 방문한 것이며 업무방해의 인식 자체가 없었다는 취지다.

또 변호인단은 형법상 원칙인 '사회상규'를 언급하며 "이 정도 행위를 형사처벌한다면 소비자가 품질에 항의하거나 일상적 권리를 행사하는 과정 모두 업무방해죄로 처벌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자친구 제모시술에 불만을 품고 진료실에 방문해 환불을 요구한 사건 △치과 간호사가 불친절하다고 큰소리로 약 20분간 소란을 피운 사건 등에 대해 무죄가 선고된 사례를 예로 들기도 했다.

형법 20조는 법령·업무로 인한 행위나 기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를 처벌하지 않도록 정하고 있다.

이어 변호인단은 "검사는 물리력 행사가 아니냐고 볼 수 있겠지만, 달의 뒷면을 보려면 우주에 가야 하는 것처럼 이 변호사가 고소한 경위를 보면 사건도 달리 보인다"며 "이 변호사의 대화내역에선 A씨가 사무실에 오면 신고하겠다고 얘기하는데 피고인들은 애초 소송비용도 돌려받지 못한 상태에서 고소당할 위기에 처해있었다"고 강조했다.

사건 당일 B·C·D씨가 동행한 점에 대해, A씨 측은 각각 어머니 B·시각장애인 선교사 D씨가 '본인이 대학 앞에서 1인시위를 할 때도 동행해주셨던 분들'이며 외삼촌 C씨는 '서초동에 평소 안면있는 변호사를 당일 소개해주러 같이 갔을 뿐'이라는 입장을 냈다. 변호인단 측에서는 'A씨가 체육 관련 전공자인데 정말 위세를 보이려고 했다면 체육 전공의 체격이 큰 친구들을 데려갔지 않았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불기소시 500만원' 계약조항…대법원이 금지했던 형사사건 성공보수? 혹은 잔금?


재판에서는 당시 A씨가 이 변호사와 체결한 형사사건 수임계약서 내용도 공개됐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이 증거로 제시하면서 법정에서 공개한 당시 A씨와 이 변호사간 계약내용 중에는 "불기소시 500만원"이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피고인측 변호인에 의해 증인신문을 받던 이 변호사는 이 문구에 대해 "성공보수라기보다 잔금"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검찰 측은 "피고인 측에서 약정의 위법성을 따지려고 한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과 관련없다면서 항의를 했다. 재판장이 이를 받아들여 변호인단 측은 추가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대법원은 2015년 7월 23일 형사사건 관련 성공보수약정에 대해 "수사·재판 결과를 금전적 대가로 결부시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돼 무효인 약정"이라고 판결했다. 민법 103조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라는 취지다. 이에 따라 변협은 대법 판결 이후에도 의뢰인과 형사성공보수 약정을 맺은 일부 변호사들을 징계한 바 있다.


MBC 방송PD "A씨 고소사실, 소송 상대방에게 넘겨버릴까' 언급했다" 증언도


국민참여재판이 오후 7시를 넘긴 시각, 다른 주요 증인으로 등장한 MBC PD수첩 PD인 F씨는 이 변호사의 일부 진술을 뒤집는 증언을 내놔 눈길을 끌었다. F씨는 당시 PD수첩 제작진으로 미투 사건 중 하나로 A씨를 취재하면서 이 변호사와 A씨 양측을 알고 지냈던 인물이다.

법정에서 증인선서를 한 F씨는 "이 변호사에게 갑자기 보이스톡이 와서 'A씨와 갈등이 생겼다'는 얘기를 했다", "'A씨가 막무가내다, 트집 잡는 것 같다'고 얘기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A씨와의 통화녹음 보내줄테니 녹음 듣고 제3자의 입장에서 누가 잘못했는지, 혹시 잘못한 게 있는지 얘기해달라'고 했다"고 증언했다.

변호인단이 카카오톡 메시지 내역을 제시하며 "이 변호사가 'G교수의 변호사를 만나 (사건내용을) 말해줄까 싶다'고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를 기억하나"라고 묻자 F씨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G교수는 다름아닌 당시 A씨가 당한 성추행 사건에 대해 민·형사 소송을 주고받던 상대방 지도교수다.

F씨는 "A씨의 거친 말이나 항의 과정서 주고받은 날카로운 언쟁 모습 등이 A씨의 신뢰도를 훼손시킬 수 있기에 다른 재판에, 성추행 가해자와 벌이는 재판에서 불리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전제로 얘기했다고 이해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기가 변호했던 피해자 얘기를 상대방 가해자에게 말하는 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고 있어서도 안 된다. 상상도 못했고 할 것이라고 믿고싶지도 않았다. 그런 일 없을거라 생각하고 정말 화가 났구나 받아들였다"고 했다.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가 직무상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변호사 윤리장전 또한 같은 내용을 규정하고 있다.

증언을 이어나간 F씨는 A씨 사건이 발생할 당시, 이 변호사로부터 '빨리 와달라'는 전화를 받고 상암동에 있는 방송국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했지만 정작 서초동 현장에 도착한 뒤에는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막상 변호사사무실에 들어가니 아무 일이 없던 것처럼 분위기가 평온했다는 증언을 했다.

앞서 법정에서 피해자로 증언한 이 변호사는 당시 상황에 대해 "충격을 받아 그날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고 했지만, F씨가 받은 느낌은 사뭇 달랐다는 것이다. F씨는 현장에 도착한 당시에 대해 "(이 변호사의)친구분들이 옆에 계셨고, 피자였나 뭔가를 먹고 있었고 생각했던거랑 달랐고 난장판일줄 알았는데, 그런 모습이 아니어서 당황했다"고 진술했다.

그리고 F씨는 그날 직접 만나서도 이 변호사가 카카오톡 대화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고 언급했다. F씨는 "이 변호사의 표현에 따르면 정곡빌딩에 다른 변호사들도 많이 있는데 (A씨가 사무실에 난입한 영상을) 성추행 가해자 측 변호사와 대학 동문인 변호사를 통해 들어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식의 얘기를 했던게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정곡빌딩은 이 변호사를 비롯한 여러 변호사들의 사무실이 밀집된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바로 앞 사무용 건물이다.

이 사건 영상을 그날 이 변호사가 메일로 보내줘서 열어봤다는 F씨는 "막고 있어서 실랑이가 있는 모습으로 이해했고, 멱살 잡고 머리채 잡고 때리는게 아니었다"며 "고소까지 하는 상황으로 오리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PD수첩 취재를 위해 다니면서 취재원을 만날 때 자주 있는 정도의 실랑이와 비슷해서 형사적으로 문제가 될 큰 사건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어 "트집 잡아서 괴롭히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사건이었다"고 진술하기도 했다.


결국 '배심원 만장일치 무죄'…재판부도 그대로 '무죄 선고'


/사진=뉴시스

유명 변호사가 언론에 보도된 성폭력 사건을 맡아 변론에 나서다가, 이후 오히려 의뢰인으로 만난 성폭력 피해자를 고소했다는 점에서 이번 국민참여재판 사건은 법조계 안팎에서 관심을 끌었다. A씨의 변호인단은 법무법인 지평(곽경란·최정규·이혜온), 덕수(정민영·이대호·황준협), 이공(김선휴)의 젊은 변호사들이 나서 수임료 없이 공익 사건으로 맡았다.

변호인단은 공소사실에 대해 "소송을 맡긴 변호사로부터 이런 부당한 대우를 당하는게 얼마나 큰 절망인지 이해할 수 있다. 이 일로 형사처벌이 이뤄지면 그 자체로 부당할 뿐만 아니라 변호사라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신뢰가 무너질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변론에서 변호인단은 배심원들을 향해 "여러분이 어떤 법률서비스를 받고 싶은지 생각해보고 이 사건을 판단해달라"며 끝까지 피고인들의 무죄를 주장했다.

이후 평의에 들어간 배심원단이 평결을 내기까지는 90여 분이 더 걸렸다. 그리고 그 결과는 '전원 무죄'였다. 평결을 받아든 재판장인 김선일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는 "배심원단이 내려준 결과는 존중할만하다"며 "만장일치 의견이 있다면 그대로 따르기로 미리 결론을 내려뒀었다"고 밝힌 뒤 그 자리에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공개된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사건 당시 피고인들의 행동이 각 혐의들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정당행위"로 평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변호사가 업무연락과 소송자료 수발을 본인 대신 인턴에게 시키기도 한 점 △의견서 초안의 내용에 가볍지 않은 오류가 있었던 점 등 여러 의심스러운 사정 때문에 A씨가 이 변호사의 업무수행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됐다고 봤다.

이 변호사의 사임에 대해 재판부는 "(A씨에게) 충분히 설명해 이해를 구하는 대신 그냥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계약해지나 수임료 반환문제를 꺼내고서는 일부를 실행해버렸다"며 이 변호사가 계약해지로 인하여 민사사건이 한창 진행중이던 A씨가 곤란한 지경에 빠졌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 변호사의 처사가 위임계약 해지와 수임료 반환을 둘러싼 갈등의 주요한 원인으로 추정한다"고 꼬집으며 "딱히 A씨와의 대면을 피했어야할 합리적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도 덧붙였다.

이어 재판부는 사건 당일 피고인들의 사무소 방문에 대해 △A씨 측이 사건 사임과 수임료 반환문제로 이미 2차례 방문한 점 △추후 다시 방문할 것을 고지한 점 △이 변호사가 내용증명으로 자기 입장을 낸 것 이외에 직접 향후 면담을 무조건 거부하겠다고 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이 변호사는 조만간 A씨 측이 자신을 방문하리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판단했다.

한편 A씨를 제외한 나머지 일행에 대해서도 △B·C씨 모두 체구가 작은 60대 여성인 점 △이들 중 특히 C씨는 휠체어를 탄 시각장애가 있는 중증장애인인 점 △D씨는 50대 남성이지만 체격이 좋은 편이 아닌 점을 들어 "A씨가 유형력이나 위력 또는 위세를 행사하기 위해 이들을 대동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봤다.

끝으로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요구하던 수임료 반환액수가 적정한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당시 상황에서 명백히 터무니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법률전문가도 아닌 피고인들에게 판단책임을 전적으로 떠넘기는 것이 온당해 보이지 않는다"며 무죄 취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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