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죽을뻔한 개들이었다. 그런데 여기, 대전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인 '시온쉼터'에 와서 살았다. 그런 개들이 223마리, 그것도 주로 큰 개들만 있었다. 거의 대형견뿐이라니, 대체 어쩌려는 걸까. 보호소에서도 국내 입양이 더 힘든 개들, 사룟값도 치료비도 더 많이 드는 녀석들인데 말이다.
그러니 이성적으로 따지고 쟀다면 절대 생길 수 없는 곳이란 걸 잘 알았다. 죽음 앞에서 개를 마주한 뒤 무조건 살리겠단 생각만 했으리라. 개들을 돌보는 이를 아직 못 만났으나, 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 복장을 많이 봤었다. SNS에 올라온 사진도 죄다 같은 옷만 입고 있어서였다. 누가 줬다는 허름한 점퍼가, 까만 바지가, 퍼런 장화가, 회색 털모자가 온통 흙투성이였다.
순간 그날 해야 할 '취재의 무게'를 직감했다. 짓눌리지 말자며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날 하루, 보호소에서 봉사하며 취재키로 했다. 11월 9일, 장대비가 오락가락하다 결국 쏟아지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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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빨리해도 10시간, '내 삶'이 없다━
사료를 옮기고 그걸 뜯는 작업이 반복됐다. 한 곳을 주면, 옆에 있는 개들이 물끄러미 그걸 바라보고 있었다. 발걸음을 재촉하게 됐다. 폭우가 심하면 지붕 밑에 잠시 들어가서 피했다가, 잠잠해지면 다시 나와 줬다. 녀석들은 배고픈지 허겁지겁 맛있게 먹었다. 오 소장은 "1만 1000원짜리 제일 싼 사료에요. 더 좋은 걸 주고 싶은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려 아침마다 30분은 끙끙거리고, 새벽까지 하루도 못 쉬고 이리 반복되는 삶. 한계치는 넘어섰다며 정신력으로 버티고 있다는 사람. 개들을 덜 챙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부렸다간 바로 티가 난다던 그는 24시간 긴장 속에 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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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 이야기 ① : 개 농장서 22마리 살린 게 '시작' ━
오 소장이 놀라서 "왜 손에 피를 묻히고 살아요? 그만두세요"라고 했다. 그랬더니 개 농장 주인은 그렇지 않아도 일주일 후 다 도살할 거라고 했다. 40분 거리에 있는 농장에 함께 찾아갔다. 50일 된 개들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주인에게 달라고 했더니 순순히 넘겼다. 그날 다 데리고 나왔다.
아침과 오후엔 개들을 돌보다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늦은 오후면 식당에 일하러 갔다. 4년간, 밤 11시까지 설거지, 주방 보조 등 일을 했다. 힘들지 않았냐는 물음에 오 소장은 이리 답했다. "개들은 배신하지 않잖아요. 하나를 주면 모든 걸 제게 줘요. 오히려 사랑을 받은 건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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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톨이, 여름이, 꼬맹이, 깡지…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죽을 날만 기다리던 개들에겐 '이름'이 다 생겼다. 봄이, 여름이처럼 계절을 따기도 하고 앵두처럼 과일에서 지어주기도 하며, 벤츠처럼 차 이름을 붙이기도 한단다. 오 소장은 다닐 때마다 개들 이름을 하나씩 불러줬다. 그의 곁에서 도우며, 개들이 보호소에 오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녀석들이 물끄러미 우릴 봤다.
개 농장에 있던 장비는 보신탕집에 팔려던 걸 데려왔다. 만돌이는 낮엔 산속에 숨어 있고, 밤엔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던 걸 구조했다. 깡지는 동네 사람들이 잡아먹으려 학대하던 유기견의 새끼였다.
2018년 가을에 들어온 밤톨이는, 14일에 미국에 입양 간다. 새 가족을 만난 개들이 행복하게 잘 산다는 이야길 듣는 게 오 소장에게 가장 큰 힘이고 보람이다. 마냥 뭉클하고 눈물이 난단다. 개들을 가족으로 맞아준 입양자들 계정에 찾아가서, 못하는 영어지만 이렇게 댓글도 남긴다.
"그레잇(Great), 원더풀(Wonderful), 와우(Wow), 쏘큐트(So cute), 해피(Happy). 땡큐 베리머치(Thank you very mu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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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온쉼터 이야기 ② : 사룟값만 한 달에 800만 원, 빚더미의 삶 ━
힘겹다. 빚만 1억 원 넘게 쌓였다. 사룟값만 한 달에 800만 원이 들고, 밀린 치료비 2500만 원에 보호소 시설을 짓느라 생긴 빚이 3000만 원 있다. 식당 일도 했었고, 집도 판 뒤 보호소에서 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정기 후원은 200~300만 원 정도라 많이 부족하단다. 후원금은 1원 단위까지 다 투명하게 공개한다.
게다가 아버지가 농사짓던 땅에 보호소를 지었는데, 개발제한구역이라 대전 유성구청에서 '이행강제금'이 4년간 부과돼왔다. 구청에선 이달 말까지 보호소를 철거하지 않으면, 이행강제금 4200만 원을 추가로 부과하겠다고 공고했다. 일부라도 철거하고 건물을 지어 개들을 한 곳에 모으려 해도, 비용이 2억 원 넘게 들어서 고민이다. 겨울이 코 앞이고 갈 길은 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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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 1000만 원, 병원서 '안락사'를 권했던 개도 살리려고…━
한 번은 보호소에서 다친 개가, 치료비 1000만 원이 든다며 병원에서 '안락사'를 권했다. 절대 못 시킨다고 했다. 다행히 그의 좋은 뜻에 감복해 무료로 치료해준다는 수의사를 찾아 개를 치료했고, 두 달 만에 건강해졌다.
병원에 도착해 잠시 대기했더니, 목에 보호대를 쓴 개가 이동 가방에 담겨 나왔다. 왜 다쳤냐 물으니, 오 소장은 "다른 개가 물어서 다쳤다"고 설명했다. 녀석은 수술을 마친 뒤라 아직 지친 듯 엎드려 있었다. 오 소장이 "고생했어, 이제 집에 가자"며 차에 실었다. 집에 가자는 평범한 말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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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좋진 않아요, 알아요, 그래도 '죽음의 공포'는 없으니 ━
차마 묻지 못했다. 본인을 깎고 잘라 작아질 대로 작아진 뒷모습이 안쓰러워서. 그리고, 그가 데려오지 않았더라면, 누구도 데려가지 않다가 이윽고 죽었을 개들이란 것도 잘 알아서. 그리고, 지금이라도 오 소장이 무너진다면, 언제든 다시 유기견 보호소로 돌아가 안락사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도.
오 소장도 잘 알고 있었다. 시온쉼터가 지금은 개들이 살기에 그리 환경이 좋지 않다는 걸. 방법도 알고, 바람도 있었다. 개들을 한 공간에 한두 마리씩 넣어 쾌적하게 두고 싶고, 더 좋은 사료를 먹이고 싶고, 직원도 두고 더 부지런히 깨끗하게 치워주고 싶다고. 맘처럼 잘 안 되는 거였다.
"쉽게 말하면 죽음의 공포가 없고, 열악하게나마 자유롭게 지내고요. 아프면 어떻게든 치료해주려는 엄마 만나서, 그저 나름대로 살고 있다고 봐야 해요."
그리고, 마지막 남은 보호소 식구 하나까지 다 행복하게 살길이 열리면, 미련 없이 보호소를 그만두겠노라고.
보호소를 떠날 무렵, 오 소장에게 질문했다.
"소장님, 만약에 사람들이 개를 버리지 않았다면요. 구하고 돌봐야 할 아이들이 없었다면요. 지금보단 훨씬 편하셨겠지요?"
그랬더니 그가 대답했다.
"아마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거예요."
마지막으로 또 물었다.
"그럼 다른 삶을 선택할 수 있는, 6년 전으로 다시 돌아간다면요. 또 개 농장의 개들을 구하실 거예요?"
그는 망설이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똑같이 선택했을 거예요. 고생할 걸 다 알아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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