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스테이크 앞에서 '흔들'"…일주일간 '어설픈 채식' 해봤습니다

머니투데이 구단비 기자 | 2021.11.13 06:00

[트라잇]비덩주의부터 비건까지…"채식 함께 하실래요?"

일주일 동안 기자가 직접 먹어본 여러 채식 음식./사진=구단비 기자
지난달 이례적인 가을 한파가 왔습니다. 지난 10일에는 서울에 첫눈이 내렸는데요. 지난해보다 한 달 빨랐다고 합니다. 계절의 변화로 옷차림도 혼란스럽지만 가장 우왕좌왕하는 곳은 자연같습니다. 냉해로 인해 양상추가 얼어붙었고 배추는 잦은 장마와 추위로 배추무름병을 앓고 있습니다. 식음료 기사를 쓰며 지구가 예전같지 않다는 걸 더욱 체감합니다. 멀게 느껴졌던 기후변화는 어느새 제 눈앞에 와있다는 생각에 제가 실천할 수 있는 것을 찾기로 했습니다.

가장 처음 떠오른 건 채식이었습니다. 제가 식음료를 출입하기에 체험기로 쓰기도 좋고 여러 대체육, 비건 제품들도 먹어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부족하지만 일주일 정도 어설프게 채식을 진행했습니다. 지난 5일 저녁부터 11일 저녁까지, 집밥부터 친구 결혼식 뷔페, 가족 외식, 취재원 만남, 친구 모임 등에서 열심히 실천해봤습니다.


대체육으로 시작한 채식…가끔 치킨만 먹는 당신은 '폴로' 채식주의자입니다


사진 왼쪽부터 고기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지만 육즙이 느껴졌던 베지가든 '숯불향 떡갈비', 매콤한 맛과 간편한 조리로 늦은 저녁 배고픈 위장을 책임져준 베지가든 '짜장떡볶이'. 가족한테 말 안 하고 먹였더니 비건 제품인지 눈치채지 못했다./사진=구단비 기자
채식 첫날 금요일 아침으론 떡갈비를 먹었습니다. 첫날부터 고기를 다시 먹은 것은 아니고요.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든 베지가든의 '숯불향 떡갈비'를 먹었습니다. 조리 전 모습은 떡갈비같아 보이지 않았는데 에어프라이기에 돌리니 냄새부터 모양, 맛까지 떡갈비 그 자체였습니다. 식물성 대체육으로 만들어 밀도가 높아 오히려 포만감도 컸습니다.

점심으론 취재원과 만나 해물 쌀국수를 먹었습니다. 평소였다면 차돌 쌀국수를 먹었을 텐데 의식하기 시작하니 다른 선택지를 고려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채식이라고 하면 막연히 어렵게 느껴지곤 하지만 생각보다 채식의 종류가 많습니다. 완전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비건'이라고 부르고 유제품을 먹으면 '락토', 계란을 먹으면 '오보', 계란과 유제품, 해산물을 먹으면 '페스코', 가금류까지 먹으면 '폴로' 채식주의자로 분류됩니다.

그러니 돼지고기와 소고기 등 붉은 고기는 먹지 않지만 가끔 치킨을 먹는 사람들도 채식주의자로 분류가 될 수 있죠. 한국식 채식주의도 있습니다.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비(非)덩주의'도 있습니다. 한국은 육수를 낸 국물 요리가 많기 때문입니다. 여러 채식의 종류를 알고 나면 "어? 나도 그럼 채식주의자겠네?"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저 또한 일주일 동안 느슨하고 어설픈 채식을 해보니 어렵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첫날 저녁으로도 비건 짜장떡볶이를 먹었습니다. 고기가 들어가지 않아도 매콤하고 맛있는 짜장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너무 과하게 모든 음식에 고기가 들어가고 있는 건 아니었을까요?


공짜 스테이크를 거절했다…"저는 채식하고 있어서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우유 대신 코코넛이 들어간 풀무원다논의 식물성 액티비아, 건면 채식라면인 풀무원 정면, 결혼식 뷔페에서 먹은 페스코 식단 음식들, 광장시장에서 먹은 모둠회. 뷔페에서 한 접시만 먹진 않았지만 사진 분량상 한 장만 담았다./사진=구단비 기자
둘째날 아침엔 풀무원다논에서 우유 대신 코코넛을 넣은 식물성 액티비아를 먹었습니다. 저는 평소 코코넛을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일반 요거트처럼 꾸덕하고 맛있었습니다. 가족들도 그냥 요거트랑 다를 게 없다고 놀라워했습니다. 주말 아침이니 라면도 먹었습니다.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소고기육수를 사용하지 않은 채식 라면이었는데요. 쫄깃한 면과 시원한 국물맛이 좋았습니다.

무의식적으로 먹는 라면에도 정말 많은 고기가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대다수 소고기육수를 사용해 맛을 내고 있었고 플레이크에는 어묵들이 들어가곤 합니다. 비건라면 플레이크에는 말린 마늘, 파, 버섯 등이 들어있어 일반 라면보다 더 개운한 맛이 났고 식후 더부룩함도 없었습니다.

오후엔 친구 결혼식에 갔습니다. 점심도 비건으로 먹으려 했는데 뷔페 앞에서 흔들렸습니다. 생선까지는 먹기로 스스로 타협을 했습니다. 스테이크를 한 접시씩 테이블로 가져다주는 곳이었는데 "저는 괜찮다"고 거절했습니다. 친한 친구들 앞이었기 때문에 크게 눈치가 보이지 않았는데요. 만약 회식이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였다면 불편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녁 자리로 옮겼는데 여기서도 회를 먹어서 마음이 조금 편했습니다. 만약 삼겹살을 먹자고 했다면 저는 용기 있게 "난 채식 중이라서 다른 메뉴를 먹고 싶다"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카레에서 고기 덜어내고…라떼엔 우유 대신 두유, 귀리 우유 넣는 '쉬운 채식'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고기 건더기를 덜어낸 '비덩주의' 카레밥, 광장시장 빈대떡, 콩고기로 만든 베지가든 탕수육, 롯데푸드의 제로미트 베지너겟과 냉장고 속 굴러다니던 문어. 다소 괴이한 플레이팅의 베지너겟과 문어는 저희 아버지의 솜씨이기 때문./사진=구단비 기자
일요일에는 집밥을 먹었습니다. 집에 돼지고기를 듬뿍 넣은 카레가 있었는데 고기를 덜어내고 먹었습니다. 반찬으로는 어제 포장해온 빈대떡을 먹었습니다. 거의 매일 고기를 먹고 지내는데 이상하게도 고기가 크게 생각나진 않았습니다. 아마 제가 느슨한 채식주의를 했기 때문이겠죠? 점심으로는 대체육으로 만든 탕수육을 먹었습니다. 진심으로 그냥 시중 탕수육이랑 똑같은 맛이 났습니다. 두부나 콩맛이 날 것 같다는 제 편견을 깨부숴줬습니다. 저녁으로는 롯데푸드의 제로미트 베지너겟를 먹었는데요. 고기 대신 콩으로 만들었는데 일반 치킨너겟과 똑같았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매일두유와 수제쿠키, 저스트에그 액상형을 넣은 농심 야채라면, 짬뽕, 귀리 우유를 넣은 토피넛 라테. 수제쿠키의 성분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버터, 마시멜로, 계란 등이 함유된 것으로 보인다./사진=구단비 기자
점점 채식에 자신감이 붙었는데 제게 비건 식단이 가장 어려웠던 건 디저트때문이었습니다. 비건 쿠키, 빵, 케이크를 시중에서 쉽게 구하긴 어렵더라고요. 먹고 싶어 먹었지만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아예 안 먹는 건 조금 힘들더라도 줄여나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월요일 점심으로는 계란을 푼 농심 야채라면을 먹었습니다.

방금 앞에서 계란을 먹고 죄책감을 느꼈다더니 왜 라면에 계란을 넣었냐고요? 저스트에그는 계란이지만 식물성으로 만들어져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계란맛과 순두부맛이 동시에 느껴졌고 포만감도 크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야채라면이 일반 라면만큼 간이 있고 짭짤해서 조화로웠고요. 저녁은 외식했습니다. 중국집에서 채식할 수 있을 것 같아 짬뽕을 시켰는데 고기 건더기가 보였습니다. 하나씩 덜어내고 먹었는데 '다음엔 만들 때 빼달라고 말해봐야지' 하는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날 라떼도 우유 대신 귀리 우유를 넣어서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녹두로 만든 계란 맛이 나는 '저스트에그'…풍성해진 비건 음식 라인업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매일두유, 저스트에그와 대체육 햄을 넣은 샌드위치, 순두부 정식, 수플레 팬케이크. 샌드위치에 사용된 모닝빵은 아쉽게도 비건빵이 아니었다./사진=구단비 기자
사실 지난 월요일부터 수요일이 휴가였는데요. 휴가기간에 자처해서 채식을 하고 체험기를 기록하기로 한 것은 여러 대체육 제품과 비건 음식을 해먹어보기 위해서였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제가 게을러 요리를 잘 하지 않았습니다. 화요일 아침엔 그래서 심기일전하고 채식 샌드위치를 만들어먹었습니다. 저스트에그의 고체형 제품인 계란지단과 로메인, 비건 떡갈비, 비건 마요네즈, 딸기잼을 넣었습니다. 계란 대신 녹두로 만든 저스트에그 고체 제품은 진짜 계란 지단을 먹는 것 같아서 신기했습니다. 근데 모닝빵에 버터와 계란, 우유가 들어갔더라고요. 이렇게 또 허술한 채식 식단을 했다는 점에 약간 좌절했습니다.

점심은 순두부 정식을 먹었습니다. 대부분 다 채식 반찬이었는데 보쌈고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함께 간 일행에게 고기를 양보하고 다른 밑반찬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아쉬울 법도 한데 채식을 통해서 고기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식탐이 꽤 있는 편인데 좋은 변화로 느껴졌습니다. 문제는 또다시 디저트. 계란을 듬뿍 넣은 수플레 팬케이크를 맛있게 먹으며 '아 또 비건은 물 건너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아귀찜, 조리 중인 저스트에그 액상형, 저스트에그와 대체육, 비건 김치, 볶은 야채 등을 넣은 일명 '냉털' 비빔밥./사진=구단비 기자
민망하게도 휴가 마지막 첫 끼도 외식으로 아귀찜을 먹었습니다. 제 채식 도전으로 인해 저희 가족도 본의 아니게 자주 페스코의 삶을 살았습니다. 채식하기 위해서 자신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주변인들의 협조도 꽤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녁에는 비건음식을 해먹어보자는 생각에 지난번 라면에 넣고 남은 저스트에그 액상형을 굽고 남은 비건 떡갈비와 너겟을 데우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볶아 '냉털(냉장고털기) 비빔밥'을 먹었습니다. 보통 비빔밥용 볶음고기고추장을 넣는데 풀무원의 김치렐리쉬를 넣었습니다. 샐러드 등에 넣어 먹는 용으로 보통 김치보단 새콤한 편인데 비빔밥용으로도 매우 잘 어울렸습니다. 젓갈이 들어가지 않아 뒷맛이 깔끔하고 개운했고요.

일주일간의 채식이 풍요로웠던 이유는 풀무원을 비롯한 농심, 오뚜기, SPC그룹, 신세계푸드 등 여러 식음료 업계의 비건 음식 출시 덕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식물성 대체육부터 유제품, 계란을 대신할 수 있는 제품들을 접해 매일 하루 한 끼 고기를 먹었던 저도 큰 불만 없이 채식을 해낼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비건 음식들이 더욱 보편화됐으면 좋겠습니다.


MZ세대 95.6% "환경 위해 식습관을 바꾼다"…오늘, 함께 하시겠어요?



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연어 샐러드, 새우튀김, 짬뽕. 일부 고기가 들어간 메뉴는 고기를 빼내는 '비덩주의'로 식사를 진행했다./사진=구단비 기자
대망의 채식 마지막 날이 다가왔는데요. 생각보다 후련한 마음이 없었습니다. 당분간 가능하다면 간헐적 채식을 실천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중국집에서 요리와 짬뽕을 먹었는데 들어 있는 고기들을 빼내고 먹었습니다.

다만 이날 저녁은 친구들과 치킨집을 갔습니다. 오랜만에 먹는 고기라 어색했는데 '폴로' 채식주의자가 있다는 생각에 덜 죄책감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용감하게 '난 채식하고 있어'라고 말하고 감자튀김을 시켰어야 했는데 '이정도는 먹어도 되겠지'라고 타협해버린 걸 반성하고 있습니다. 사진은 '육식전시'(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고기 사진을 올리는 것)를 하지 않기 위해 삽입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같은 느슨한 채식주의자도 세상을 바꿉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육류 소비량은 2000년 31.9㎏에서 2019년 54.6㎏으로 71.2%나 급증했습니다. 연간 약 4% 증가하는 육류 소비량으로 인해 2030년에는 298만톤에 달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습니다. 소 한 마리가 1년에 배출하는 메탄가스가 평균 70~120㎏인 점을 생각하면 하루 한 번이라도 고기를 지양하는 사람들이 세상을 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가치소비'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만큼 많은 이들이 채식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 900명 중 95.6%는 "환경을 위해 식습관을 바꾼다"고 응답했습니다. 완전 채식인 비건은 아니더라도 유제품, 계란, 고기 섭취를 줄이고 대체육을 먹는 등 대안을 찾아 나선다는 것이죠.

어설픈 채식 일주일 동안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습니다. 살이 빠지거나 피부가 좋아지거나 몸이 건강해졌다거나 하는 변화는 없었지만 식사 후 더부룩함과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당장 비건으로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순 없지만 소고기나 돼지고기 대신 닭고기를 먹는 것, 유제품과 계란 섭취를 줄이는 것, 고기 건더기를 덜어내는 것 등의 작은 실천은 동참하려 합니다. 또 무엇보다 채식주의자를 향한 비판 대신 응원을 보내려고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건 불편함을 감수하고 신념을 지켜가고 있는 이들 덕분이기 때문이죠. 주말이 다가옵니다. 하루쯤은 고기 없는 식탁을 즐겨보는 건 어떠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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