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썹' 일부러 찾아 샀는데 벌레라니…이제 뭘믿고 먹나요"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박미주 기자 | 2021.11.12 07:00

[MT리포트]후진국형 식품위생사고의 악순환, 왜(上)

편집자주 | '벌레 순대' 등 비위생적 환경에서 식품을 제조하는 후진국형 식품위생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우리나라가 아직도 저렇게 만든 식품을 먹어야하는 수준이냐"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후진국형 식품위생사고가 왜 계속되는지, 정부의 식품안전관리 체계에 구멍은 없는지를 점검해본다.



음식서 이물질·공장엔 벌레…해썹 인증받고도 '이 모양'인 이유




매출 400억원대 국내 순대 1위 업체 진성푸드의 비위생적인 생산공정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이 다시금 경악했다. 식품안전에 대한 불신도 커졌다. 국민총소득(GNP)은 3만달러를 넘어 선진국 대열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후진국형 식품위생 문제가 불거지는 배경엔 부족한 사후관리 인력과 기업의 인식부족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11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식품안전관리인증(HACCP·해썹)의 사후관리 전문인력은 전국 지방식약청 직원 29명 뿐이다. 현재 해썹인증업체는 1만3994개로 이중 식품인증업체가 7685개, 축산인증업체가 6309개다. 이중 식품인증업체 전체와 해썹 의무대상인 식육가공업 등 일부 축산인증업체를 식약처 직원이 담당한다. 이 숫자가 약 9500개다. 1인당 평균 327개 현장을 관리하는 꼴이다. 나머지는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이 관리한다. 인증원 전문인력도 25명 뿐이다.

일례로 식품제조가공업체 1800개가 몰려있는 경인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은 해썹관련 업무강도가 높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다. 경인청에서 관련업무를 했다는 식약처 직원은 "하루 한 곳만 현장조사를 나가도 밤 10시, 11시에 청으로 돌아오는 일이 쳇바퀴처럼 돌아간다"며 "지원 인력도 해썹 뿐 아니라 단속반 업무, 수거검사, 음식점 일상지도 등 식품안전지도점검을 병행해야 하다보니 항상 인력난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현장평가는 제대로 이뤄지기 어렵다. 지난해 기준 식약처 해썹 방문조사 평가기업은 3600개에 그친다.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의 연장심사(2600여개)와 사후조사평가(1300여개)를 포함하더라도 절반에 가까운 기업이 현장점검 없이 해썹 인증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다.

1995년 도입된 해썹은 위해물질 혼입이나 오염을 방지하는 위생관리 시스템을 갖춘 기업에 정부가 인증해주는 제도다. 최종 제품을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 유통, 소비 과정을 모두 관리한다는 점에서 식품안전의 가장 믿음직한 방파제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매출 400억원대의 순대공장에서 찜기 주변으로 벌레들이 득실거리는 등 해썹의 신뢰도에 큰 상처를 남겼다.

해썹의 사후관리 문제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7년 살충제 계란 파동이 불거지자 지방식약청 해썹 사후관리 인력 부족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이런 상황을 거치면서 당시 21명이었던 관리인력이 지난해부터 8명이 증원됐다. 다만 공무원수 확대가 정치적 이슈로 번지면서 추가 인력 확대를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민간 주도의 해외와 달리 국내는 정부 주도 위생관리 방식을 취하고 있어 빈틈으로 작용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식품위생 문제가 발생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통해 책임을 기업에 지운다. 반면 국내는 정부가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지만 10억원 이하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해외의 식품기업이 대기업 중심으로 산업이 이뤄진 반면 국내에선 중견·중소기업이 많아 소비자가 승소하더라도 파산이나 경영악화로 배상능력이 상실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또 소비자의 입증이 어렵고, 기업의 고의성 여부 등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 소비자의 실질적 피해 구제에 초점을 맞추는데 무게를 두고 있다.

(서울=뉴스1) = 김진석 식품의약품안전처 차장이 7일 대구 북구에 소재한 면류 제조업체인 풍국면을 방문, 위생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있다. (식약처 제공) 2021.9.7/뉴스1
사업주의 낮은 식품위생 인식도 문제가 끊이지 않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현행 식품가공분야의 해썹 인증기업은 87%에 이를 정도로 보편화돼 있지만 현실적으로 느슨한 관리감독으로 인증 전과 후의 인식이 다르다는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해썹을 마케팅 수단으로 쓰기위해 인증에는 공을 들이면서도 인증 이후에는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남아있다는 지적이다.

임무혁 대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해썹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인증 후 기업은 광고에는 투자하지만 사후 관리에는 돈과 인력을 투입하지 않는다"며 "매번 하급자만 보낼 것이 아니라 기업 오너들이 직접 식품위생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식품업계는 소비자와의 신뢰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식품위생 문제로 한번 평판이 떨어지면 다시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 까닭이다. 하청기업으로부터 제품을 공급받는 한 식품 대기업 CEO는 "생산현장을 방문해보면 과거에 비해 위생관리가 철저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위생문제가 끊이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생산자는 소비자와 기업간 신뢰를 바탕으로 비용을 투입해 제품에 대한 책임감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위생 엉망" HACCP의 배신…'벌레 순대' 왜 못막나



"이럴 거면 해썹(HACCP·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 왜 있는지 모르겠네요. 일부러 해썹 표시 제품 사 먹었는데 이젠 못 믿겠네요."

해썹 인증의 신뢰도가 추락하고 있다. 지난해 식약처의 위생 단속에 걸린 음식점·식품제조업체만 2만7000여건에 이르는 등 식품 위생 위반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에 정부의 식품 위생 관리 감독을 강화하고 '식품위생법' 위반시 처벌 등 불이익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작년 무작위 위생 점검서 2만6972곳 적발… 올해도 점검 식품제조가공업체의 12%가 위생 문제로 적발돼

11일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식약처가 음식점(식품접객업) 138만6855곳과 식품제조가공업체 2만6613곳을 점검한 결과 위생 기준을 위반한 건수가 각각 2만4512건(1.8%), 2460건(9.2%)이었다. 전수조사를 하지 않은 것인데도 2만6972건이 적발된 것이다.

올해 7월에도 위생 기준 위반 현장은 계속 나왔다. 단속 대상인 음식점 70만3541곳 중 1.2%인 8625곳이 위생기준을 지키지 않았다. 식품제조가공업체는 점검한 9931곳 중 12.3%인 1223곳에서 위생 수칙 위반이 적발됐다.

■ 해썹 인증 받아도 위생 불량, 최근 2년반새 중대한 문제로 46개소 해썹 인증 즉시취소

해썹 개요/사진= 한국식품안전관리인증원 홈페이지 캡처
소비자들이 깨끗하고 안전한 식품을 만드는 곳이라고 믿는 해썹 인증 업체에서 위생 기준을 위반하기도 했다. 해썹은 위해 방지를 위한 사전 예방적 식품안전관리체계다. 그런데 해썹 인증을 받은 진성푸드 등의 제조공장에서마저 일부 식품위생법 위반 내용이 확인됐다.

식약처가 관리하는 해썹 인증 업체는 늘고 있다. 2018년 1만427개소에서 2019년 1만1549개소, 지난해엔 1만3994개소로 2년 새 34.2% 증가했다. 식약처가 매년 불시에 정기 조사한다지만 중대한 위생 불량 등의 문제로 해썹 인증이 취소되는 업체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2019년엔 23개소, 지난해엔 14개소의 해썹 인증이 점검 후 즉시 취소됐다. 올해에는 지난 6월 기준 9개소의 인증이 취소됐다.

■ 정부 해썹 사후관리 불신 커져… 식품위생법 위반시 처벌 강화해야

이에 소비자들의 해썹 인증과 정부 관리에 대한 불신이 커져가고 있다. 한 소비자는 "정부의 해썹 사후 관리가 엉망인 것 아니냐"며 "이젠 해썹 인증 업체라 해도 위생 관리가 잘 되는지 믿지 못하겠다"고 꼬집었다.

이은희 인하대학교 소비자학과 교수도 "해썹 인증을 하는 식약처가 혼나야 마땅한 상황"이라며 "해썹 인증 평가 기관에 인증 주는 업무 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 이번 순대 파문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식약처 관계자는 "해썹은 세계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식품안전관리체계로 2019년 불시 평가를 도입하는 등 매년 해썹 사후 관리를 충실히 하고 있다"면서도 "업체들의 도덕적 해이 발생 가능성이 상존해 자율적 책임의식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위생 불량시 사회적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양지영 부경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는 "국내 식품위생법 처벌 규정이 일본 등 선진국 대비 상당히 약하다"며 "과징금 등을 올리는 것과 더불어 재난문자 보내는 것처럼 위생 불량 식품업체들을 국민들에게 신속하고 상세히 알리고, 위생법을 위반한 자가 가족 명의로 이름만 바꿔 다시 영업에 나서는 일을 방지하는 등의 처벌 강화 제도가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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