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윤석열 운명 가를 2030[광화문]

머니투데이 김익태 정치부장 | 2021.11.12 04:42
2016년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당시 74세였던 버니 샌더스는 힐러리 클린턴을 상대로 돌풍을 일으켰다. 사회주의를 금기시하는 미국에서 '민주사회주의자'를 자처한 샌더스. 그의 뒤에는 '밀레니얼 세대'가 있었다.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으며 형성된 세계관을 지녔던 젊은 층은 세습 자본주의 사회의 불공정·불평등, 취업난에 분노했다. 정치불신이 극에 달했던 자신들에게 솔직하게 얘기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반(反) 월가. 그들은 기존 질서와 현실에 불만 가득했던 한 '아웃사이더'에 열광했다.

2015년 영국에서는 누구도 예상 못한 67세 노동당 당수가 등장했다. 제레미 코빈. 당시 경선에 중도파 3명이 나섰다. 후보조차 내지 못할 처지에 몰린 좌파 진영. 구색이라도 맞추려 코빈을 내세웠다. 토니 블레어의 이라크 참전 결정 등 의회에서 500번 이상 당 노선에 반대 투표했던 강성 좌파였다. 그만큼 정치적 신념이 강했고, 행동으로 실천했다. 가망 없어 보였지만, 극적 승리를 거뒀다. 가식과 불필요한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직선적 성격, 젊은이들은 열광했다. 2년 후 총선에서 이른바 '청년지진(youthquake)'을 일으키며 정권교체 직전까지 가는 의석수를 쟁취했다.

2021년 한국에는 홍준표가 있었다. 아이러니였다. 20~30대가 좌파도 아닌, 그것도 마지막 정치 여정에 나선 67세 우파 정치인에 힘을 실어줬다. 경선 초반 미미했던 한자릿수 지지율로 시작, '무야홍'(무조건 야권 후보는 홍준표) 바람을 일으켰다. 석패 했지만, 자신의 역할을 '경선 흥행'으로 한정하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했다. 홍준표는 다른 후보들에 비해 나이가 많았다. 연령대로 치면 젊은 층과 거리가 제일 멀었다. 은퇴를 앞둔 이들은 가르치거나 설득·훈계 하려 드는 50~60대 초반과는 다르다고 느낀 걸까.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았던 '독고다이' 정치인. 무리 짓는 정치 바닥에서 큰 결함이었지만, '무야홍'을 외쳤던 젊은이들은 그래서 더욱 홍준표에 공감했다.

2030은 좌고우면 않고 똑 부러지는 것을 좋아한다. 눈치 안 보고 소신 있게, 상대에 직설적으로 일갈하는 이준석에 환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자기들의 목소리에 공감하며 세심하게 귀 기울여주는 것은 보너스. 실력 없는데 줄 타서 '빽'으로 들어가고, 내 능력은 공정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분노는 '조국 사태', 이를 옹호하는 민주당을 향해 표출됐고 지금까지 지속 되고 있다.

'반(反)패미' 정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성장 과정에 역차별 당한다는 인식이 굳어진 채 2030이 됐다. '사시 부활' '수시 폐지, 정시 100%'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선명한 메시지(제도적 합의 근간을 급격히 허무는 것에 대한 논란은 별도의 얘기다)에 '저격수' 하태경까지 인정했던 '정치적 천재성'까지 더해졌다. 공정에 목마른 이들은 홍준표에 환호했다.


그런데 2030의 표심이 갈 길을 잃었다. 홍준표 실패와의 연관성? 알 수 없다. 부동층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매우 높게 나오고 있다.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응답도 전체 평균보다 2배나 높았다.(10일 머니투데이-한국갤럽 여론조사) 얼핏 보면 국민의힘에 표심이 기운 것 같지만, 조사 결과를 보면 모를 일이다. 친야(親野)보다는 반여(反與)에 가깝다는 게 적확하다. 2030은 인구 수나 투표율이 다른 세대에 비해 낮다. 하지만 온라인 공간에서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실제 표심보다 과잉 대표된 측면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홍준표를 지지했던 20대는 이번에 처음으로 좌절감을 느꼈다.문재인-지방선거-총선-오세훈-이준석에 이르기까지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로 자신들이 나섰던 선거에서 패배란 없었다. 이념적 색채가 뚜렷하지 않은 탓에 그 분노가 어디로 튈 지 알 수 없다.

내년 대선은 정치적 효능 측면에서 2030 에게 결정적 선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선거까지 2030에 의해 결정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없다. 2030이 과연 승패의 열쇠를 쥘 수 있을까. 변화 무쌍한 이들의 표심을 지키고 뺏기 위해 펼쳐질 이재명과 윤석열 후보 간 치열한 경쟁이 벌써부터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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