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TV드라마 '지리산'의 실패

머니투데이 임대근 한국외대 인제니움칼리지 교수 | 2021.11.05 02:05
임대근 교수
기대를 모은 TV드라마 '지리산'이 외면받고 있다. 이야기는 '1호 국립공원'이면서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을 배경으로 한다. 산속에서 조난을 당한 사람을 구조하는 레인저의 모습이 그려진다. 드라마의 '기획 의도'는 악천후에도 산을 누비면서 조난자를 업고 5시간을 뛰어다니는 이들의 활약을 통해 공존의 가치를 고민하겠다고 설명한다. 16부작으로 기획된 드라마는 지난 10월 말 첫 방송 이후 초반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다.

시청자가 이 드라마에 기대를 건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의 출연이 첫 번째다. 전지현과 주지훈이 최고의 레인저 서이강과 미스테리한 신입 레인저 강현조 역을 맡았다. 탄탄한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리라는 기대도 컸다. '시그널' '킹덤' 같은 드라마로 이름을 날린 김은희 작가의 스토리텔링은 '믿고 보기'에 부족함이 없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극의 완성도를 높여줄 연출에 대한 기대도 있었다. 이응복 피디는 '태양의 후예'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등을 맡아 호평받은 연출가다.

그러나 '지리산'의 뚜껑이 열리자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수준 높은 시청자의 눈매는 예리했다. CG(컴퓨터그래픽)는 평균 이하였다. 후반작업을 통해 배경으로 합성된 지리산 장면은 어색하고 조야했다. 우리 콘텐츠 기술의 수준을 의심할 정도였다. 배경음악과 음향효과 또한 극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산악용품 브랜드는 물론 건강식품과 샌드위치까지 이어지는 간접광고도 불편했다.

tvN 창설 15주년을 기념해 300억원 넘는 제작비를 들였다는 야심작에 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간혹 우리를 배신한다. 캐나다 출신 교육학자 로런스 피터는 '피터의 법칙'을 주장했다. 조직 내부의 승진 대상자는 승진 이후 업무에 대한 능력보다 현재 직무수행역량을 근거로 평가받는다. 그러므로 대상자는 결국 더이상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직위까지 올라간다. 그의 논리는 상위 직책에 앉아 있는 사람의 무능이 드러나는 경우를 설명하는데 유용한 관점으로 활용된다.


'기생충', 방탄소년단(BTS), '오징어게임' 등에 이르기까지 최근 한국 문화콘텐츠의 세계적 활약이 눈부시다. 이런 흐름을 만들어내는 데는 내수시장의 콘텐츠 소비자가 깐깐한 눈높이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콘텐츠 소비자는 1인당 연평균 4회 이상 영화를 관람한다. TV드라마의 하루 시청자는 250만명이 넘는다. 콘텐츠에 대한 열정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콘텐츠 소비경험의 축적은 콘텐츠를 분별할 수 있는 안목을 키운다. 시청자의 직관적인 반응은 오랜 시간 쌓인 경험의 결과다.

'지리산'의 실패는 콘텐츠의 기본이 무엇인지 되묻게 한다. 콘텐츠는 결국 그림과 소리,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영상 기반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림이다. 구도와 색채의 균형을 맞추고 피사체의 크기와 수량, 밀도, 위치, 방향을 구조화하는 작업을 통해 아름다운 영상이 창조된다. 조화로운 음성과 음악, 음향효과를 알맞은 자리에 적당한 길이로 배치하는 작업도 중요하다. 이런 과정은 콘텐츠 제작과정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기본 중의 기본이다.

'오징어게임'은 빨강과 파랑, 검정과 하양을 대비하는 원색의 배치와 과거의 향수를 배치하는 공간 구성을 통해 어린 시절 놀이의 세계를 재현했다고 호평받았다. 세계인이 우리 콘텐츠를 사랑한다는 지금의 상황 자체가 콘텐츠의 미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탁월한 이들의 조합결과가 항상 탁월한 것도 아니다. 모든 콘텐츠의 결과가 다 좋을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지리산'은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크다. 우리 콘텐츠가 자만하지 않고 기본을 지켜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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