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회장은 왜 권영수 카드를 썼나?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1.11.01 14:01

[선임기자가 판다]

구광모 LG그룹 회장/사진=이기범 기자 leekb@

1일 LG가 지주회사 대표이사였던 권영수 부회장을 다시 야전으로 돌려보냈다. 배터리 사업을 담당하는 LG에너지솔루션 대표이사로 전보 인사한 것이다.

그룹 비서실장격인 권 부회장이 계열사 CEO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재계에선 흔치 않은 일이다. 군으로 치면 국방부 장관을 다시 제1 야전군사령관으로 동부전선에 보낸 것과 같다.

이같은 전격적인 인사에는 "이러다가 큰 일 나겠구나?"라는 구광모 LG 회장의 위기의식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 회장은 권 부회장에게 "LG에너지솔루션을 맡아달라"고 당부했고, 일반적이지 않은 이 인사에 대해 권 부회장은 흔쾌히 따랐다는 후문이다.

권 부회장은 그의 이력이 말해주듯 LG 그룹 내에서는 웬만하면 잘 부러지지 않는 대쪽 스타일이다. 그는 5공 시절 해체된 재계 서열 7위의 국제그룹 양정모 회장의 사위이면서도 국제그룹에 몸담지 않고, LG 그룹에 입사해 스스로 성장하며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 대해서는 상사에게도 입바른 소리를 해 눈밖에 나는 일도 적지 않았다. 2005년 7월 18일 LG전자 부사장(최고재무책임자: CFO) 시절 당시 기업설명회에서 LG전자의 문제점에 대해 신랄하게 '자아비판'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CEO였던 김쌍수 부회장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그는 당시 "PDP 가격이 가파르게 하락할지 예측하지 못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라든지 "CDMA시장에서 미국 1위를 달성하면서 실력을 과대평가한 게 오히려 역작용을 가져왔다"면서 PDP 사업과 휴대폰 사업의 판단 미스와 실력 부족을 자인해 당시 CEO의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고 구본무 회장의 동생인 구본준 부회장(현 LX 회장)의 뒤를 이어 LG필립스LCD(현 LG디스플레이)를 맡았을 때는 구 부회장이 만들어놓은 시스템의 상당부분을 새롭게 바꾸면서 전임과의 꺼끄러운 관계를 형성하기도 했었다.

권영수 LG에너지솔루션 부회장.

LG화학 전지사업부장에 이어 만년 3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던 LG유플러스 부회장에 취임했을 때는 '1등 정신'을 늘상 강조해왔다.

LG유플러스 1등 정신에는 '드기고 현철강'이라는 표현이 있다. △드림사고 △기본중시 △고정관념타파 △현장중심 △철저한 준비 △강한 실행력의 앞글짜만을 따놓은 것이다.


꿈은 원대하게 갖고 기본에 충실하되 고정 관념을 버리고 현장에서 철저하게 준비하고 강하게 실행하면 1등이 못될 일이 없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이런 유플러스 1등 정신은 그가 그룹 지주회사의 COO(최고운영책임자)로 자리를 옮긴 후에는 LG그룹의 1등 정신으로 접목시켰다.

권 부회장은 날카롭고 강인한 성격으로 '대쪽'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기도 하지만 그가 최근 집착하는 키워드는 '경청과 배려'다. 이번 LG에너지솔루션에서의 그의 역할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전자, 화학, 통신 등 삼두마차로 움직이는 LG 그룹은 최근 배터리 리콜사태 이후 강한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 그 중 화학의 큰 축을 맡고 있는 배터리 부문에서의 위기 신호는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현안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3대 핵심 과제는 사업의 정상화와 성공적 IPO(기업공개), 조직문화 정비다. 배터리 사업은 글로벌 투자 사업으로 상징성이 있는데다 선대 구본무 회장이 사업을 시작하고, 구광모 회장이 꽃을 피워야 하는 시점에 화재사고가 발생하면서 LG에게 '이 사업이 괜찮은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졌다.

현재 200조원 규모의 수주를 해놓은 상태에서 이 사업을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라면 이를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강한 위기 의식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삐긋하면 그룹 전체의 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구 회장에게 권 부회장 카드를 꺼내게 한 것으로 보인다.

LG 내부에선 권 부회장이 구원투수로서 과거 LG디스플레이나, LG유플러스 등에서 보여줬던 강한 혁신과 구조조정 등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권 부회장은 에너지솔루션에서의 자신의 역할을 여러 조직에서 모인 구성원들의 내부 융화와 화합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LG에너지솔루션으로의 첫 출근길에서도 자신이 해결사나 소방수의 역할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권 부회장은 스스로를 조력자라고 표현했다. 현재 흐트러져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의 힘을 한 곳으로 모으고 정비하는 그의 역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할지 주목된다.

한편 권 부회장의 후임 지주회사 COO 자리에는 여러 인물들이 검토됐으나, 현재 권 부회장을 대체할 마땅한 인물이 없어 구 회장이 인선에 고민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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