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난감·여권·안내방송까지, 성 고정관념 깨는 '젠더 뉴트럴' 확산

머니투데이 김인옥 기자 | 2021.11.02 04:30

기내방송 "레이디스·젠틀맨" 없애고 "에브리원"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은 이분법적 성별 구분과 성역할에서 벗어나 '남녀'가 아닌 '사람 그 자체'를 중시하는 움직임을 말한다. 세계 곳곳에서 '젠더 뉴트럴'을 표방하며 성 고정관념을 타파하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패션이나 뷰티 같은 소비 영역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기업 문화, 국가 정책까지 확산한다. 영어권에서 he(그)나 she(그녀)가 아닌 ze·xe라는 새로운 인칭대명사를 쓰기도 한다.

'젠더 뉴트럴'은 사회가 아닌 자신의 기준에 따라 생각하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MZ세대의 트렌드가 반영돼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 성별은 X'… 美 성중립 여권 발급



/사진= Hida Viloria 트위터 캡처
미국에서는 성소수자 시민 약 400만 명이 그들의 여권에 남녀가 아닌 제3의 성별을 의미하는 'X'를 표기할 수 있게 됐다.

27일(현지 시간) 미국 국무부에 따르면 "성별을 X로 표기한 첫 번째 미국 여권이 발급됐다"며 "필요한 시스템 업데이트를 완료하면 2022년 초에는 모든 여권 신청자들에게 성별 선택권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전에는 미국인들이 출생증명서나 신분증과 다른 성별을 여권에 표기하려면 의사가 발급하는 의료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의사 소견 없이 개인이 자신의 성별을 선택해 여권에 기재할 수 있게 된다.

논바이너리, 인터섹스, 트렌스젠더를 포함해 성별 이분법으로 구별될 수 없는 성소수자들은 이번 조치를 환영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성중립 여권은 성소수자(LGBTQI+)를 포함한 모든 국민의 자유와 존엄, 평등을 증진하겠다는 약속의 일환"이라고 밝혔다.

한편 AFP통신에 따르면, 현재 최소 11개국의 시민들이 여권에 'X', '기타(other)'를 표시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갖고 있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네팔, 캐나다, 아르헨티나, 파키스탄 등이 해당된다.


'성중립' 장난감으로 아이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아이들을 위해 '젠더 뉴트럴'한 놀이 환경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많아지고 있다.

세대 최대 장난감 제조업체인 레고는 최근 자사의 제품과 마케팅에서 성중립을 표방하겠다고 발표했다.

CNN에 따르면 11일(현지 시간) 레고는 앞으로 장난감에 "여아용" 또는 "남아용"이라고 표시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소비자들은 성별에 따라 제품을 검색할 수 없다.

실제 레고가 약 7000명 아이들과 부모을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여자 아이들이 놀이와 창의성을 개발하는 데에 "불평등하고 제한적인" 방해받는다는 것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레고는 "사회는 모든 어린이의 창의성 강화를 위해 인식과 단어 등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캘리포니아주에서도 대형 마트에 '성 중립' 장난감 진열대 설치를 의무화하는 법이 통과돼 2024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예정이다.

법안을 공동 발의한 에번 로 주의원은 "진열대의 남아 구역에는 공구 세트 종류의 장난감이, 여아 구역에는 아기 돌보기, 패션, 집안일 관련 장난감이 많았다"며 "성별에 따라 장난감을 구별하는 건 현대적 사고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성별은 직접 선택하는 것"…4살 때까지 아이의 성별 비밀로 부쳐


호주에 거주하는 한 부부는 자녀가 직접 성 정체성을 결정할 수 있도록 4살까지 주변인들에게 아이의 성별을 알려주지 않았다.

영국 데일리 메일은 지난 1월 카일 마이어스, 브렌트 부부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부부는 지난 2012년에 낳은 아들 주머에게 특정 성별을 부여하지 않고 항상 그들(they)와 같은 '젠더 뉴트럴'한 대명사를 써왔다.

그들은 "성별은 태어날 때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선택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아들 주머는 4살 무렵에 직접 본인을 그(he)로 불러주길 원했다"고 밝혔다.

마이어스가 자신의 육아 방법을 SNS에 공개하자 '아동 학대'라는 비판적인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마이어스는 "우리는 주머를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았다. 오히려 주머에게 성별과 젠더에 관한 깊은 이해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이어 "나는 아이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사회의 성차별과 성 고정관념을 주입시키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안내 방송에서 사라지는 "레이디스 앤 젠틀맨"


비행과 철도 안내 방송에 자주 등장했던 표현 "레이디스 앤 젠틀맨"(Ladies and gentelmen, 신사 숙녀 여러분)도 이제는 구식이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 따르면 일본 항공사들은 지난 해 9월부터 영어 안내 방송에서 '레이디스 앤 젠틀맨'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해당 표현이 이분법적인 성별을 전제로 하고 있어 성소수자 고객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일본 항공은 'Good morning everyone'(안녕하세요 여러분), 'Attention, all passengers'(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로 했다.

유럽의 항공·철도 방송에서도 남녀의 성을 구분하는 멘트가 사라지고 '젠더 뉴트럴' 표현으로 대체된 지 오래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 등에 따르면 네덜란드철도는 2017년부터 열차와 역사에서 '신사 숙녀 여러분' 대신 '승객 여러분'(Best travelers) 을 쓰기로 결정했다. 영국 런던교통국에서도 '여러분 안녕하세요'(Hello everyone)라고 바꿔 말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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