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00억→12.4조원, K배터리 신화 쓰고 퇴장하는 LG 김종현

머니투데이 우경희 기자 | 2021.10.26 11:17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사진=LG에너지솔루션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에게 김종현 사장을 한 단어로 표현해달라고 하면 가장 많이 나오는 답이 바로 '날카로움'이었다. 스마트하고 통찰력이 있다. 김 사장이 주재하는 회의에 들어가면 보고자가 예상한 것과 정반대의 질문이 날아오기 일쑤였다. 준비된 결론과 전혀 다른, 아예 거꾸로 된 결론이 나면서 회의가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았다.

김 사장이 LG에너지솔루션을 떠난다. 연이은 발화와 이에 따른 전기차 리콜사태의 책임을 지고 전격 용퇴했다. 그럼에도 그가 LG배터리 중흥기의 문을 연 인물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그가 이끌어온 동안 LG에너지솔루션은 기술력이나 수주잔고, 보유고객 면면 등을 감안할 때 명실상부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으로 발돋움했다.

LG그룹은 그룹 내 거물인 권영수 LG 부회장을 LG에너지솔루션 새 대표이사로 전격 내정했다. 권 부회장이 지휘를 넘겨 받으면서 LG에너지솔루션은 그룹 신성장 축으로 위상을 한껏 키울 수 있게 됐다. 내부적으로도 한 차례 분위기를 다잡고, 리콜사태로 더뎌지고 있는 IPO(기업공개) 작업에 속도를 붙일 계기가 마련됐다.

LG에너지솔루션은 여전히 점유율 면에서 앞서고 있는 중국 국영 배터리기업 CATL과 본격 세계대전을 치러야 한다. 배터리 양산 채비를 갖추고 있는 모빌리티 최강자 토요타 및 폭스바겐, 또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 등 국내 경쟁자들과의 주도권 싸움도 이제부터 제대로 벌어진다. 큰 대결을 앞두고 내부 정비를 먼저 단행한 셈이다.

'미래'에 기대가 쏠리는 만큼 '현재'를 만든 김 사장의 행보도 새삼 재조명된다. 그는 2009년 LG의 첫 리튬이온배터리 전기차 적용부터 수주잔고 200조원 달성까지 앞장서 역사를 써 왔다. 숫자로 모든걸 말할 수는 없지만 LG의 배터리사업 연간 매출은 김 사장 합류 당시 7000억원에서 지난해 12조4000억원으로 무려 18배 수준으로 커졌다.

김 사장은 1984년 LG생활건강으로 그룹에 들었다. 2001년 LG화학에 합류해 각종 전략부서와 사업부를 돌다가 2009년 소형전지사업부장(전무)을 맡았다. 폭스바겐 등 굵직한 바이어들과 계약을 잇따라 성사시키며 LG배터리의 토대를 다졌다. 성과를 인정받아 2019년엔 전지사업본부장 사장으로 올라서며 배터리 부문을 총지휘하기에 이른다.


K배터리의 초기 철학 구축에도 기여했다. 김 사장은 2019년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인류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말했다. 전기차로 대전환에 대해 미리 확신을 갖고 사업을 추진해 왔다는 의미다. LG 배터리사업에 R&D(연구개발) 중심 경영의 틀을 짜 넣는 작업도 주도했다. SK이노베이션과의 영업비밀 침해 분쟁 과정에서도 마무리국면에 큰 역할을 했다.

김 사장은 적들에게는 미움과 함께 인정을, 아군에게는 사랑을 받는 경영인이었다. 경쟁기업들은 김 사장의 치밀한 경영을 부담스러워했고,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은 통찰과 판단력을 지닌 김 사장을 신뢰했다. 안팎의 평가에 힘입어 김 사장은 분사한 LG에너지솔루션의 첫 대표이사에 이르렀다.

김 사장과 배터리 사업은 물론 영업비밀 침해 소송전까지 치열하게 부딪혀 온 지동섭 SK온(SK이노베이션 배터리사업부) 대표는 김 사장에 대해 "오늘날 우리나라 배터리산업과 생태계가 이만큼 발전해 오기까지 함께 하며, 산업을 함께 성장시켜 온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송사를 남겼다.

김 사장은 물러났지만 LG에너지솔루션 첫 대표로 그가 그려온 LG배터리의 청사진은 LG배터리의 밑바탕에 오래 남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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