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경비원 갑질방지법'이 21일부터 시행되며 입주민들의 무리한 요구를 경비원들이 거절할 근거가 생겼다.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는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번 개정안 적용으로 아파트 경비원이 수행하는 관리 업무는 법으로 명확하게 명시된다.
개정안에는 경비원의 업무로 청소 등 환경관리, 재활용 분리배출 정리 단속, 주차관리, 택배 물품 보관 등이 추가됐다. 대신 이를 제외한 대리 주차와 입주민 세대 택배 배달, 관리사무소·입주자대표자회의 서명 수집, 입주민 심부름 등 경비원을 향한 갑질은 모두 금지된다. 이를 어기면 최대 1000만 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에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막을 장치는 마련되지 않아 한계로 지적된다. 일각에선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을 경비원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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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질방지법 시행돼도 언어·신체적 폭력은 막기 힘들다"━
그동안 경비원의 공식 업무는 아파트 경비 뿐이었지만 이들은 관행적으로 청소, 택배물 보관 등 업무를 맡아왔다. 익명을 요구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은 "아파트 운영 인원 자체가 적어서 경비원 말고 그런 일을 맡을 사람이 없었다"며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업무를 조금씩 떠맡다 보니 무리한 요구를 받는 경우도 생겼다. 서울 강남구의 일부 아파트 단지는 경비원들이 입주민들의 차 열쇠를 관리하며 대리주차를 한다. 택배물을 집에 대신 전해주는 경우도 많다.
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경비원이 대체되기 쉽다보니 업무 지시를 거부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2년 간 경비원으로 근무한 김모씨(67)도 "입주민에 항상 친절해야 하니 갑질당할 때 어떻게 대처할지 잘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개정된 법은 청소 등 3개 업무 외의 일을 지시하면 불법이라 못 박았다. 이를 어기면 과태료 1000만원을 낸다. 김씨는 "해야 하는 업무와 안해도 되는 업무를 지정해 준 건 다행"이라 말했다.
그동안 경비원을 향한 언어, 신체적 폭행은 빈번했다. 이날 만난 경비원 김모씨(70)는 "몇몇 입주민은 차량 차단기를 빨리 올리지 않으면 버럭 화를 낸다"고 했다. 지난해 서울 강북구의 한 아파트에서 경비원이 입주민의 폭행을 당한 후 억울함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도 있었다.
하지만 '형사 처벌' 말고는 경비원들이 갑질에 대응할 방법이 없다. 익명을 요구한 관리사무소 직원은 "관리실은 경찰 신고 외 각별히 해줄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했다. 경비원 김씨는 "기분 나쁜 일이야 수두룩한데 이런 일로 신고는 못하지 않나"라며 "별 수 없다. 혼자 참고 넘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에 신고가 돼도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 형성된 사실상의 '갑-을 관계'에 처벌이 요원한 문제도 있다. 최근 입주민에 30cm 자로 폭행당한 경비원은 경찰에 '입주민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고 의사를 밝혔다. 그는 "입주민의 가족이 처음에 보상을 약속했다가 말을 바꿨다"며 "따져봐야 뭐하겠나. 나만 손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경비원들과 입주민 관계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방지법)이 적용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오진호 직장갑질119 집행위원장은 "방지법이 근로자와 사용자 간 관계만 다루다보니 경비원을 향한 입주민 갑질에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가 있다"며 "방지법의 적용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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