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노총도 빨간불에 건너는데..."[오동희의 思見]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 2021.10.20 17:57
서울을 비롯한 전국 14개 지역에서 대규모 총파업에 돌입한 20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울 서대문사거리에 집결해 대형 현수막을 펼쳐들고 있다.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민노총도 건너는데 우리도 건넙시다."

20일 오후 1시 20분경 점심이 끝난 시간 광화문 사거리에서 남대문 쪽 중간인 시청 앞 횡단보도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총파업 결의대회 집회 장소를 광화문으로 정하려던 민주노총이 갑자기 방향을 서대문 사거리로 틀면서 벌어진 일이다.

광화문으로 집결하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프레스센터 앞에서 폴리스라인을 친 경찰들과 실랑이를 벌이다가 일제히 방향으로 틀었다.

기자 주변에 있던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카카오톡이 동시에 '까똑까똑' 울렸고, 한 조합원이 "서대문역 4번 출구"를 얘기했다. 그 일단의 무리의 집행부인 듯한 이 조합원은 "서로 좀 떨어져서 걷고, 4번 출구로..."라며 주변에 조용히 공지했다.

집회 장소를 비밀에 붙였던 민주노총 집행부의 지시가 떨어지자 대열은 한 순간 광화문에서 서대문 쪽으로 몰렸고 시청앞 횡단보도에 선 조합원들은 '적색 신호'에도 횡단을 시작했다.

식사 후 사무실로 복귀하던 일반 직장인들은 경찰에 막혀 오래 신호 대기하고 있다가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는 그들의 움직임을 보고 조급한 마음을 드러냈다.

"민주노총도 건너는데 우리도 건너자"며 동료에게 말한 후 도로를 횡단하기 시작했다. 도로로 몰려나오는 인파의 규모가 크게 늘어나자 그제서야 경찰들도 차량 통행을 막았다.

점심 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은 차벽에 막히고 시위 인파에 막혀 식사 후 사무실로의 복귀 시간이 늦어진데 대해 짜증을 드러냈다.

그들은 불법시위를 막고 있는 애꿎은 경찰들에 "왜 길을 못건너게 하느냐"고 불만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시위대가 막은 길 위의 차량들은 불만을 담아 경적을 연신 울려댔다. 시청 쪽을 지나니 남대문 쪽에도 수백명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대한상공회의소 앞길을 지나 서대문 쪽으로 향했다.


20일 오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서대문역 사거리를 무단 점거했다./ /사진제공=경찰청 교통정보 CCTV 캡처.

집회 장소로 이동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 상당수의 표정은 '불평등 해소'라는 총파업 주제의 무거움과는 달리 밝았다. 마치 소풍 나오듯 백팩을 맨 채 동료들과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이동하는 모습에 총파업의 비장감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은 서대문역 인근에 모여 '5인 미만 사업장 차별 철폐·비정규직 철폐, 모든 노동자의 노조활동 권리 쟁취' 등을 주장하며 사거리를 점거했다. 이번 총파업은 당초 참가인원 55만명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노총의 허세가 무색하게 1/10 정도로 참여 열기가 줄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현대자동차 노조 등 대형 사업장이 불참한 영향이 컸다.

구속상태인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해말 선거 당시 10~11월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걸었었다. 선거 과정에서 후보들은 총파업을 통해 다가오는 대선에서의 판을 뒤집자고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엄중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의 총파업 투쟁에 대한 시민 다수의 시선은 싸늘하다.

이날의 주제인 불평등 해소도 하루 아침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나 안다. 한반도 5000년 역사의 과정에서 계속 이어져온 주제이며,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전세계 역사의 주제이기도 하다. 이날 하루 도로를 점거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닐 뿐더러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야 비로소 조금이라도 길을 터고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민주노총이 보여주는 방식은 1980년대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민주세력들이 길거리에 나와 투쟁하던 방식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그 방식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켜왔고 과거의 성공방정식에 빠져 시대변화에 따라가지 못했다. 그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차량 흐름을 막을 때 어떤 이는 자신의 하루벌이를 잃었지만 누구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의 자유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권리는 아니다.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 또는 손해를 입히거나 공공이익을 침해할 때에는 이를 제한할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부겸 총리 등 정부의 집회 자제 요청은 허무하게 됐다.

민주노총은 그들이 절박해 적색신호에 횡단보도를 건넜다고 주장하겠지만, 그들이 우리 사회의 합의인 신호를 지키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불법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져야 할 것이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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