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시대착오적인 '배신자 프레임'

머니투데이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 | 2021.10.14 02:05
채진원 교수
국민의힘 대선 경선이 윤석열·홍준표·유승민·원희룡 후보로 압축됐다. 홍 후보는 윤석열·유승민 후보를 공격하기 위해 '배신자 프레임'을 사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홍 후보는 지난달 9월23일 열린 2차 방송토론회에서 유 후보에게 "배신자 프레임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라고 공격했다. 그의 '배신자 프레임'은 오랫동안 준비한 것이다. 홍 후보는 지난 8월29일 "누구든지 배신자 프레임에 걸려들면 살아남기 어렵다"고 하면서 "나는 26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을 떠난 일이 없던 이 당의 적장자"라고 밝혔다.

홍 후보가 꺼낸 '배신자 프레임'은 시간이 갈수록 강해질 것이다. 하지만 중도확장을 꾀해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 도움이 되는 것일까. 과연 선악의 이분법이라는 진영논리를 넘어 '대화와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본령으로 돌아가자는 사회통합적 규범론에 적합한 것일까.

2가지 모두에서 부적합하다. 첫째, 당내에선 보수분열의 화약고인 박근혜 전 대통령과 관계설정이 도마에 오르면 '탄핵의 강'에 다시 빠지게 돼 중도확장이 어렵다. 자칫 '경선용 이슈'로 싸우다 당의 분열이 대선패배로 이어질 수 있기에 부적절하다.

'탄핵의 강'이 다시 소환되는 것은 이준석 후보를 당대표로 당선시킨 TK(대구·경북) 민심과도 배치된다. 이 후보는 지난 6월3일 보수의 심장 TK지역에 가서 "영입해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감사하지만 탄핵은 정당했다"고 소신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그의 당당한 호소는 그동안 보수분열의 씨앗이 된 '탄핵의 강'을 정면으로 넘어서 집권과 미래로 가겠다는 의지로 평가돼 당대표 선출로 연결됐다.


둘째, 사회통합적 규범론에도 부적합하다. '전향'이라 부르지 않고 '변절과 배신'이라는 멍에를 씌우는 것은 '조선 사대부식 논리'에 가깝다. '변절=배신=악' '지조=충성=선'이라는 사대부의 주자학적 의리론과 위정척사론은 민족주의 세력과 민주화운동 세력에게 정통성을 주면서 생각이 다른 나머지 세력을 정통성이 없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는 차별의 프레임이다.

이런 프레임에서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대화와 타협 그리고 다양한 의견의 공론적 절충이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변절자의 은어인 '사쿠라'를 경멸하면서 선명성을 추구한 운동권 세력이 '진영논리와 내로남불의 늪'에 빠지는 것은 씁쓸하다. 21세기는 세계화, 정보화, 탈냉전화, 탈이념화 등으로 표현되는 '전환기적 시대상황'으로 불린다. 시대상황에 맞지 않는 사대부식 의리로 덧씌워진 고루한 이념, 신념을 지키는 것을 지조와 절개로 볼 이유는 전혀 없다.

'배신자 프레임'은 현대 민주주의를 조선시대로 되돌리려는 시대착오적 프레임이다. 의견의 다양성, 숙의를 통한 생각의 전환, 견제와 균형의 가치를 추구하는 현대 민주주의를 조선 사대부식 의리에 기초한 '충신 대 간신' 논쟁으로 뒤집어 보겠다는 꼼수다. 이는 선조의 명령에 불복종한 이순신 장군을 간신으로 모는 격이다. 윤석열·유승민 후보를 변절자와 배신자로 모는 것은 부적절하다. 홍 후보가 나쁜 프레임을 철회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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