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수사기관이 대통령 결정하게 만드는 정치권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 2021.10.14 05:00

[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들이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 입니다.

'대한민국의 20대 대통령은 수사기관이 결정한다' 두달여 전까지만 해도 우스갯소리로 치부되던 말이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와 야당의 유력 대선 후보가 대형 의혹에 휩싸이면서 수사기관이 대선의 핵심이 됐다. 정치권 전체가 수사기관만 바라보며 압수수색, 소환조사 등 수사기관의 행동 하나하나에 촉각을 기울이고 있다. 관련자의 진술은 정략적으로 선택돼 상대방을 비난하는데 사용된다.

사건을 가진 세 기관은 각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검찰은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수사에 사활을 걸었다. 그 어느 때보다 관련자들을 빠르게 잡아들이는데 전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경찰은 화천대유에 대한 수사를 뭉갰다는 의심을 불식시키겠다며 수사에 68명을 투입했다. 고위공직자수사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입건하고 고발사주 의혹 수사에 사실상 수사력 전부를 쏟아부었다.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세 기관이지만 예민한 시기인만큼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다. 정치인, 그리고 국민들이 각자 원하는 결과가 있는데, 여기에 반하는 수사결과를 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이 부담인 탓이다. 수사기관은 정치권이나 국민의 기대와 다른 수사결과를 내놨을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알고 있다. 잘해야 특검, 잘못하면 수사 담당자들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체득했다.

2007년 6월 대통령 선거를 반년 앞둔 시점에 제기된 BBK 의혹이 대표적이다. 이 사건은 당시 검찰이 이명박 당시 후보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리며 끝났지만, 이후 10년 넘는 기간 동안 검찰을 괴롭혔다. 여전히 BBK 사건을 검찰이 정치적 목적으로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상당수다.

이때문에 수사기관은 현재 최대한 말을 아끼며 결과를 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대장동 사건은 뒤늦게 불거져 수사가 길어지고 있지만, 고발사주 의혹 사건은 야당의 대선 경선이 끝나기 전 결론을 내겠다는 것이 공수처 계획이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수차례 "대선에 영향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수사기관이 이렇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반면 정치권 인사들은 무분별하게 의혹을 제기하면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아예 "구치소에 가야 할 사람이 대선 후보가 됐다" "국기 문란의 몸통"이라며 제기된 의혹이 사실인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수사기관이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결과를 내놓는다면 비난의 방향을 바로 수사기관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수사 시작도 전에 특검을 거론한 정치인도 있다. 이는 선거에 유리한 상황만 만들면 된다는 의도도 읽힌다.

수사기관이 좌고우면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정론이지만, 이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책임이 정치인에게도 있다. 합리적인 의혹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아무런 증거 없이 '그랬을 것이다'라는 말로 국민을 현혹시키는 것은 무책임하다. 지금 정치권은 수사기관이 대선을 결정하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정치인이라면 참담함을 먼저 느껴야 하는 것 아닐까.

이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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