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정직의 나라 독일의 대형 금융스캔들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21.10.12 02:05
김화진 /사진=김화진
독일 사람들은 좀 무례하다는 말이 있는데 본인들은 강하게 부정한다. 자신들이 정직하고 직선적이며 질서지향적인 데서 온 오해라는 것이다. 사실 독일 사람들은 정직하고 거짓말을 적게 한다는 것이 국제적인 평판이다. 국민들이 전반적으로 정직한 경우 경제가 효율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명성을 한 번에 날려버린 사고가 2020년 발생한 와이어카드(Wirecard) 스캔들이다.

와이어카드는 1999년에 세워진 핀테크 회사다. 회사가 거의 도산할 뻔한 2002년 오스트리아 사람 마르쿠스 브라운이 인수해서 경영을 시작했다. 브라운은 빈대학교에서 컴퓨터를 전공했고 경제학 박사학위도 받았다. 브라운은 유럽의 디지털금융 붐을 타고 회사를 눈부시게 성장시킨다. 핀테크 분야에서 미국과 중국에 상대적으로 뒤떨어진 유럽의 자랑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공격적인 M&A로 외형을 키워나갔고 미국, 중국에 진출해 글로벌 기업이 되었다. 은행도 자회사로 두었다. 2018년 기업가치는 270억달러가 됐고 당당히 프랑크푸르트거래소 30대기업(DAX30) 반열에 올랐다.


이 회사의 회계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파이낸셜타임스가 2015년부터 조사와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특히 2018년에는 내부 제보자를 확보해 싱가포르 지사를 집중적으로 조사했고 아시아 지역 사업에 대규모 부정이 있었음을 밝혀내 보도했다. 싱가포르 정부 차원의 조사가 따랐다.

결국 2020년 6월 와이어카드는 회사 자산 중 21억달러가 가공자산이라고 발표했고 브라운은 사퇴한 후 체포됐다. 회사 COO는 유럽 밖으로 도주해 인터폴이 수배 중이고 COO의 측근이던 아시아사업본부장은 필리핀에서 사망했다. 한때 191유로였던 주가는 0.43유로로 폭락했고 회사는 도산했다. 소프트뱅크를 포함한 주주들은 막대한 손해를 입었다.


사건의 핵심은 수익 부풀리기와 회계분식이다. 독일 금융감독청(BaFin)은 처음 엉뚱하게도 와이어카드가 아닌 파이낸셜타임스를 조사하기 시작하다 싱가포르 경찰이 수사에 진척을 보이자 그제야 와이어카드 주식 공매도를 금지했다. 그러나 금융감독청은 시종 조사에 소극적이고 언론에 부정적인 태도로 일관했고 비판적인 투자자와 언론을 공매도 세력에 연계된 것으로 의심하고 비난했다.

이 사건은 2008년부터 수년에 걸친 경고에도 문제를 찾아내지 못한 외부감사와 금융감독당국의 실책이 가장 큰 원인으로 해석된다. 2020년 9월 독일 의회는 와이어카드 사태를 방지하지 못한 정부에 대한 조사를 개시했다. 일부 독일 정치인이 의심을 받게 됐고 2021년 1월 독일 금융감독청장과 부청장이 동반 사퇴했다.

와이어카드 사건은 2001년 미국 엔론(Enron) 스캔들과 비교될 만큼 초대형 사건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 사건을 '하우스 오브 와이어카드'(House of Wirecard)라고 부르면서 보도기사를 한곳에 잘 모아놓았다. 탐사저널리즘의 금자탑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조사한 워싱턴포스트를 연상시킨다. 정직을 국민적 정체성으로 자부해온 독일 사람들에게 큰 충격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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