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거절 당한 것들의 극적인 반전

머니투데이 원종태 에디터 | 2021.10.05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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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거절 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징어게임' 황동혁 감독도 2009년 시나리오를 완성했지만 투자자들과 배우들에게 다 거절 당했다고 한다. 거절 이유는 "이상하고, 난해하며, 현실성이 떨어지는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 미야자키 하야오도 한 때 거절 당한 경험이 있다. 첫 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인 '루팡3세-카리오스트로의 성'이 흥행에 실패하며 1979년 1억5000만엔이라는 큰 적자를 냈기 때문이다. 애니메이션 업계에선 "하야오에게 작품을 맡기면 안된다"는 이야기까지 돌았다. 하야오는 다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여러 제작사에게 제안서를 보냈지만 단 한 곳에서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거절'만 놓고 보면 작가 조앤 롤링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남편과 이혼한 후 혼자 아이를 키우며 '해리포터'를 완성한다. 하지만 그가 찾아간 12개 출판사 모두 해리포터 출판을 거절했다. 출판사들은 "요즘 아이들은 고아나 마법 이야기엔 관심 없다"거나 "아이들이 읽기에 너무 무섭고 길다"며 외면했다.

월트 디즈니는 거절 당한 횟수가 무려 300번이다. 그는 팬들이 보낸 편지에 "디즈니 스튜디오를 방문해 미키마우스 같은 캐릭터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내용이 유독 많은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정작 디즈니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곳일 뿐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었다. 이에 월트는 디즈니 스튜디오 건너편의 1만평 부지에 미키마우스 공원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이 사업은 은행과 투자자로부터 300번이나 거절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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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야오 감독은 숱한 거절 끝에 광고회사 하쿠호도의 지원으로 5년 만에 간신히 신작을 내놓는다.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였다. 미래 인류의 환경 문제를 다룬 이 작품은 큰 인기를 끌며 7억엔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하야오는 오랜 시간 거절을 참고 기다린 끝에 이 작품의 성공으로 '지브리 스튜디오'까지 설립하며 작품 활동을 안정적으로 이어갈 수 있었다.

롤링은 크리스토퍼 리틀이라는 출판 에이전트를 만나 거절의 알을 깨고 나온다. 이 에이전트가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책을 출판하기 위해 애썼다. 그 노력으로 블룸스버리 출판사 대표였던 나이젤 뉴턴이 자신의 8살짜리 딸에게 해리포터 원고를 보여줬다. 딸은 이 원고가 다른 것들과 완전히 다르다며 꼭 출판해야 한다고 열광했다. 블룸스버리는 먼저 500부만 출간하기로 했지만 해리포터는 이후 10만부, 100만부, 500만부에 이어 1억부가 팔렸다.


월트 디즈니의 디즈니랜드 계획도 ABC 방송국으로부터 가까스로 투자 받았다. 하지만 1955년 7월 문을 연 디즈니랜드(LA)는 시간이 지날수록 미국 외에 일본, 홍콩, 중국, 프랑스로 진용을 넓히며 전 세계 테마파크의 상징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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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의 수많은 엽기적 장면보다 이 시나리오가 한때 '거절' 당했지만 다시 소생한 것이 가장 극적이라고 본다. 똑같은 시나리오가 불과 10년 전에는 "말도 안되는" 내용이었는데, 이제는 "아주 현실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드라마틱한 장면은 절대 흔치 않다. 그때와 지금, 한 시나리오에 대해 평가가 엇갈리는 이유는 뭘까.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여서 시중에 돈이 크게 부족했고, 지금은 저금리로 돈이 넘쳐 나기 때문일까. TV까지 대놓고 나서 '부동산 예능물'을 쏟아내는 현실 속에서 우리의 돈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기 때문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10년 전보다 한탕주의와 일확천금을 향한 세태가 더 득세했다는 점이다. 황동혁 감독이 직접 밝힌 것처럼 "슬프게도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 있었다. 한때 거절 당한 시나리오가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다.

우리의 자화상이 지나치게 '돈' 쪽으로만 쏠려있다 보니 이 기괴한 시나리오는 더 이상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이 거절 당한 시나리오의 흥행 반전이 더 가슴 시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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