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숙은 사퇴했는데…"…정치개혁 구호가 사라진 세상에서[우보세]

머니투데이 김태은 기자 | 2021.09.23 03:35

[the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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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 13일 국회에서 열린 제391회 국회(정기회) 제04차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자신에 대한 사직의 건 투표에 앞서 신상발언을 하고 있다. 윤 의원 사직의 건은 찬성 188표, 반대 23표, 기권 12표로 가결됐다. 2021.9.13/뉴스1
한달 전 윤희숙 전 의원은 부친의 농지법 위반 의혹 제기로 자신에게 쏟아지는 음해에 맞서 "벌거벗은 채 수사받겠다"고 국회의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그의 사퇴가 현실화될 것이라고 내다본 동료 의원들은 거의 없었다. '고작 가족의 위법 의혹 때문에' 의원직을 사퇴한다는 발상이 우리 정치 현실에서 이해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윤 전 의원의 '무모한 행위'에 냉소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초선 의원 한 명이 사퇴한다고 무엇이 달라질 게 있겠느냐는 배짱이다. 실제 국민의힘에서 부동산 투기 의혹에 연루돼 탈당 대상자에 오른 의원들 중 탈당 조치가 취해진 의원은 없다. 여야 모두 슬그머니 부동산 투기 의혹에서 빠져나가려는 분위기다.

여권 일각에서 윤 전 의원의 의원직 사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있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앞두고 '부동산 투기당'으로 뒤집어쓰게 될 멍에를 윤 전 의원의 등 뒤에 숨어 피해갔다는 취지다.

아주 짧은 기간엔 이같은 비난이 맞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윤희숙이 떠난 한달 간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에는 적지 않은 변화가 시작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국회의원이 잘못을 저지르거나 비리 의혹에 연루되면 국민들은 대번 "윤희숙은 결백하지만 떳떳하게 수사받기 위해 국회의원직을 내던졌는데, ◇◇◇은?"이란 질문을 던진다.

대선후보들의 각종 의혹이 쏟아질 때도 비슷하다. 비록 정치인들 스스로는 버티고 있다 하더라도 국민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것이다. 윤희숙 한명이 결행한 '무모한 사퇴'가 정치권에 대한 전반적인 도덕성 기준을 높이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국회는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설치해 국회의원들의 윤리 기준을 보다 엄격하게 적용하고 국회의원이 비리나 범죄에 연루됐을 때 특권을 내려놓는 방안들을 논의해왔다. 특히 선거를 앞두면 각 정당과 후보마다 국회의원의 윤리 규범과 도덕성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정치개혁 어젠다를 들고 나오는 것이 반복돼왔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국회의 풍경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국회의원 스스로에게 적용될 제도에는 한없이 관대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는 제도마저 요리조리 피해간 결과다.

윤희숙의 사퇴가 기준이 되는 정치권의 풍경은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물론 선출직인 국회의원이 의혹만으로 의원직을 사퇴하는 것이 바람직하단 얘긴 아니다. 적어도 국민들이 윤희숙만큼의 도덕성에 걸맞은 책임을 국회의원에 요구한다는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만으로도 각 정당 지도부와 국회의원들에겐 이전과는 다른 기준으로 행동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다.

국회의원의 도덕성을 엄격하게 요구하는 제도와 정책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책임 정치에 대해 새로운 전범의 토대를 만드는 정치인의 용기와 진정성이 필요한 이유다.

그것이 정치개혁이다. 국회의원과 정치인에게 높은 도덕성의 기준을 물을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개혁에 대한 약속은 이제 윤희숙을 기준으로 정치권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는 대선후보들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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