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공 쌀통? 매달 9900원씩 10개월 할부면 저렴한데, 한번 사볼까."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다가 TV 채널을 돌리다보면 홈쇼핑 채널이 나온다. 이전엔 별로 신경 쓰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홈쇼핑을 자주 구경한다. 주변 친구들도 화장품이나 전자기기 등을 홈쇼핑에서 샀다는 이야길 요즘 많이 한다. 백화점, 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사나 e커머스 등 온라인 유통사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 때문이다.
나와 내 친구들만의 이야기는 아닌듯한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TV홈쇼핑은 e커머스에 밀려 전년비 취급고와 영업익 모두가 줄어들어 완전히 사양 산업 취급을 받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홈쇼핑은 주로 검수가 완료된 고품질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는 만큼 가성비를 중요시하는 MZ(밀레니얼+Z)세대를 다시금 끌어들이고 있다.
그런데 홈쇼핑 방송을 자주 보다보니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모든 홈쇼핑 채널에서 '100매에 3만4900원' '월 9900원에 10개월 무이자 할부' '방송에서만 4만원 세일, 25만4600원' 등의 가격 정보가 모두 화면 왼쪽에 제시돼있었다. 마치 홈쇼핑 업체들끼리 약속이라도 정한 듯 같았기에,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실제 LG경제연구원은 '비용이 적게 드는 마케팅 노하우'란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고객의 왼쪽을 노려야한다"며 "감성이 발달한 한국 사람들은 오른쪽 뇌가 발달해 왼쪽으로 들어오는 정보에 민감하기 때문에 각종 상품 진열 시 왼쪽을 집중공략하면 마케팅 효과가 높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은 무게중심도 왼쪽으로 쏠리기 때문에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내린 후 무심코 왼쪽을 향하는 사람이 많다. 이에 따라 백화점은 신상품 마네킹을 에스컬레이터 왼쪽 동선에 두고, 홈쇼핑은 화면 왼쪽에 가격할인 등 소비자들이 민감한 정보를 배치해야한다는 것이다.
반면 이를 반대로 활용하는 곳도 있다. 만일 TV, 에어컨, 냉장고 등 제품력이 좋지만, 상대적으로 고가의 상품이라면 가격을 오른쪽에 배치할 수도 있다.
이동진 평론가는 유튜브 '이동진의 파이아키아'에서 "인간은 왼쪽부터 보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는 홈쇼핑 채널은 왼쪽에 가격표를 배치하지만, 물건의 품질이 곧 가치인 백화점에서 명품을 팔 때는 가격표를 오른쪽에 배치한다"고 설명했다.
GS홈쇼핑은 '역L바'를 택해 가격 등 상품정보를 화면 우측에 제시한다. GS홈쇼핑은 2003년 11월 '역L바'를 도입하면서 "인간 뇌의 특성상 언어·수학 등의 정보를 관장하는 좌뇌가 우측정보를 더 인지한다"고 설명했다. 또 "(우리만) 역L바로 배치한 덕분에 시청자들은 화면만 보고도 GS홈쇼핑을 인지할 수 있게 돼 이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도 했다. GS홈쇼핑은 이후에도 줄곧 '역L바'를 사용해오고 있고, 2013년 10월에는 디자인권도 출연했다.
내 경우 어느 쪽이 더 구매를 자극했는지 떠올려봤다. 그러나 나의 경우엔 L바를 차용해 화면 왼쪽에서 가격 정보를 보여주든, 오른쪽에서 보여주든 나의 경우 맛있는 음식을 파는 홈쇼핑 방송이 나오면 주문 전화를 걸어버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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