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내 M&A" 공언했는데…반도체 안보경쟁에 꼬인 삼성 청사진

머니투데이 심재현 기자 | 2021.09.11 07:42

"요새 시장을 보면 삼성전자가 M&A(인수합병) 골든타임을 이미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반도체업계 한 인사는 10일 업계 최대 규모의 거래로 주목받는 엔비디아의 ARM 인수가 영국과 중국 정부에 이어 EU(유럽연합)의 견제에 부딪혔다는 소식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삼성전자가 올 들어 신성장동력 확보를 위해 3년 안에 의미 있는 M&A 성과를 내겠다고 예고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얘기다.

최근 반도체업계 M&A에서 최대 변수는 업체간 협상이 아니라 각국 정부의 승인 심사로 바뀌었다. 반도체산업이 경제를 넘어 각국의 안보 자산으로 떠오르면서 '빅딜'을 통한 쏠림 현상에 대한 상호 견제가 심해진 것이다.

업체간 계약이 체결된 M&A가 세계 주요국 반독점 심사기구의 승인 거부로 무산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반도체업체간 M&A(인수합병)는 시장 독점을 방지하기 위해 주요국 심사기구의 승인을 거친다. 주로 미국, 중국, 한국, 일본, 영국 등 6~7개국에서 이뤄지는 심사에서 한 곳이라도 불허 판단이 나오면 거래가 틀어진다. 특히 세계 1위 반도체 소비국인 중국이 승인을 거부할 경우 중국시장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에서 사실상 거래 성사가 불가능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의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 무산이다. 중국 정부의 심사가 이렇다 할 이유 없이 9개월 넘게 지연되면서 지난 3월 거래가 무산됐다. 업계에선 중국 정부가 미국의 수출규제에 따라 중국 업체들의 반도체 장비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을 우려해 심사를 미룬 것으로 본다.


2018년 미국 통신 반도체업체 퀄컴의 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업체 NXP 인수도 중국 정부의 승인 지연으로 좌초됐다. 전문가들은 최근 추진되는 것으로 알려진 미국 웨스턴디지털의 일본 키옥시아 인수 역시 양사간 계약이 성사되더라도 중국 정부의 벽을 넘어서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본다.


최근에는 미국과 영국, EU 등도 M&A에 제동을 걸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전세계적인 반도체 공급 부족 사태를 겪으면서 자국 반도체 공급망 유지 전략이 우선 과제로 떠오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영국 경쟁당국은 최근 엔비디아의 ARM 인수에 대해 독점의 우려가 있다며 2단계 심층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힌 상태다. EU에서도 엔비디아가 규제 승인을 신청하기도 전에 부정적인 의견이 흘러나왔다. 영국과
EU는 엔비디아가 ARM을 인수할 경우 시스템반도체 지적재산권 주도권마저 미국에 넘어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부의 반대로 반도체 M&A가 줄줄이 무산되면서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업체들의 M&A 전략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난달 이재용 부회장 복귀와 맞물려 3년 안에 M&A 성과를 내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지만 국제정치 리스크에 부딪힐 가능성이 커졌다. 인텔 낸드플래시사업부 인수를 두고 중국 정부의 승인만 남겨둔 SK하이닉스도 조바심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다.

전세계적인 반도체 부족 현상으로 반도체 업체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는 점도 M&A 장벽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퀄컴의 NXP 인수 무산도 중국의 승인이 늦어지는 사이 NXP의 주가가 급등한 게 주요 원인이었다.

업계 한 인사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3~4년 전 글로벌 시장에서 M&A가 한창 진행됐을 때 사법 리스크 등과 맞물린 대·내외 악재로 실기(失機)한 게 무엇보다 뼈아플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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