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돌연변이, 쓰레기봉투에 짐을 챙겨 고시원을 떠돈다"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오진영 기자 | 2021.09.12 08:01

[MT리포트-백발의고시촌]②6년째 고시원 생활하는 64세 김모씨

편집자주 | 44만513명. 지난해 늘어난 65세 인구 숫자다. 한해 사이 의정부시(인구 46만여 명) 한 곳을 채울만큼 노인 인구가 늘었다. 노령인구 증가폭은 계속 커져 2028년에는 한 해 52만8412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인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년 뒤인 2025년엔 20%를 돌파해 국민 다섯 중 한 명은 노인인 사회가 된다. 이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한 때 청운의 꿈을 품은 젊은이들로 가득했던 고시원은 이제 늘어나는 노인을 수용하는 시설로 바뀌고 있다. 생산과 소비라는 자본주의의 미덕에 열위에 있는 저소득 노인은 1평 남짓 고시원에 사실상 격리돼 하루를 보낸다. 치솟아만 가는 아파트들 사이에서 그림자처럼 낡은 간판을 달고 들어서 있는 '실버 고시원'들이 한국사회의 미래를 경고한다.

8일 저녁 8시쯤 서울 관악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김모씨의 방안. 수납장 한켠에 약이 수두룩하다. /사진=김성진 기자.

수납장 문을 여니 약이 한가득이었다. 뇌졸중약부터 피부 연고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김모씨(64·남)는 "탈모 때문에 아까 피부과에 다녀왔다"며 멋쩍게 웃었다. 단번에 임산부처럼 부푼 배가 눈에 들어왔다. 김씨는 다낭신(신장 질환)을 앓고 있다. 사망 위험이 높다고 알려진 유전질환이다. 이곳은 병실이 아닌, 머니투데이가 7일 찾은 서울 관악구의 고시원 ㅇㅇ리빙텔의 한 방이었다.

고시촌이 백발로 물들었다.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고시원을 떠난 청년들의 빈자리는 노인들이 채웠다. 김씨도 그중 한명이다. 그의 삶을 1인칭 시점으로 각색했다.



기초수급비로 살 곳은, 빛 한 줌 들어오지 않는 고시원밖에 없었다


8일 밤 9시쯤 취재진과 대화를 마친 김씨가 늦은 식사를 위해 고시원 밖으로 나서고 있다.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는 물음에 김씨는 "뒷모습을 찍어주세요"라 말했다. /사진=김성진 기자.


벌써 홀로 고시원을 전전한 지 6년째다. 창문 하나 없고 고개 돌리면 코끝에 벽이 닿는 좁은 방이지만 그래도 깔끔해서 살만하다. 지난해 8월 이곳으로 옮기기 전 살았던 고시원은 셀 수 없이 많은 진드기 때문에 간지러워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때에 비하면야. 이곳으로 옮길 때 짐은 단출했다. 옷은 외투 5벌과 속옷 몇 점 정도였다. 가방도 없다. 반찬통 몇 개와 약 더미, 짐을 50L 쓰레기봉투 한 장에 욱여넣고 왔다.

이곳의 월세는 28만원이다. 고시촌에 들어오기 전엔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와 관리비까지 합쳐 47만원짜리 방에 살았다. 그래도 거긴 창문은 있었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주거급여, 생계급여를 다 합쳐 82만원으로 생활을 꾸리기 빠듯하다보니 급한 맘에 찾은 게 고시원이었다.

처음부터 혼자는 아니었다. 어릴 적엔 가족과 함께 살았다. 1957년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태어나 10남매 중 막내로, 귀여움 받으며 컸다. 형, 누나 모두 논일에 힘을 쓰는데 나는 일이 적은 편이었다. 막내니까.

스무살이 되던 1976년 서울로 올라왔다. 첫 직장은 구로구 가리봉동의 가방공장이었다. 월급이 8400원인데 공장은 식비로 매달 5000원씩 뺏어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3달 만에 가죽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다. 프레스기로 가죽을 잘랐는데, 당시 많이들 손가락이 잘렸다. 그러다가 굴착기 자격증을 따고 30년 가까이 굴착기 몰았다. 초창기 월급은 17만원이었는데, 공장보다야 낫다는 생각으로 견뎠다.


삶이 바뀐 건 34살 다낭신 판정을 받으면서였다. 신장에 물혹이 생기는 만성질환이다. 치료 약이 없어 완치가 불가능하다. 더욱 낙담한 건 다낭신이 '유전 질환'이란 점이었다. 결혼한다면 자녀도 다낭신을 앓을 터였다. '돌연변이'로 혼자 살다 죽자, 했다. 어차피 결혼할 돈도 없었다.

2014년엔 갑작스런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이 때 땅바닥에 머리를 부딪히는 바람에 왼쪽과 오른쪽 눈이 서로 달리 보이는 '복시'가 왔다. 어지러움을 견딜 수 없었다. 병원에서 의사에게 "한쪽 눈을 멀게 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안경을 받아 왼쪽 눈에 빛이 통하지 않는 렌즈를 꼈다. 지금도 왼쪽 눈 앞을 손으로 가려야 더 잘 보인다.
김씨가 사는 서울 관악구 고시원 방의 전경./사진=김성진 기자.

이런 내가 고시원에 오자 고시원장부터 걱정하고 나섰다. 고시원장은 사회복지사에게 전화해 '이분이 여기서 지내도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가족이 인계하지 않는다면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다"는 답을 받았다. 사회복지사는 1년에 한두번 연락한다. 죽었나 안 죽었나 확인하는 용도려니 생각한다.

더 아픈 건 외로움이다. 내가 피하기도 했지만 결국 연락을 먼저 끊은 건 지인들이었다. 작년엔 20년 동안 알아 온 직장 동료 김씨에게 연락했는데 반가운 눈치가 아니었다. 통화는 했지만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더는 연락을 안했다. 그가 정상이다.

가족과 연락도 끊겼다. 몇년 전까진 설, 추석에 오라고 전화하더니 요새는 전화도 안 온다. 이번 추석도 별 계획없이 혼자 지낸다. 누군가 찾아온다고 해도 미안할뿐이다.

내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내 몸 하나 건사할,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이다. 밥 해먹을 수 있고, 샤워실과 화장실도 있고, 환기도 잘 되는 그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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