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폐 챙겨다니며 직원자녀 용돈 주던 사람"…김포 배송기사들의 증언

머니투데이 김포=김성진 기자, 김포=김도균 기자 | 2021.09.06 19:00
6일 오후 1시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씨가 운영하던 경기도 김포시의 택시대리점. 택배 승하차 차량이 모두 떠나고 텅 비어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계절마다 회식을 하는데..."

월요일인 6일 오후 1시쯤 경기도 김포시의 CJ대한통운 택배 터미널 승하차장은 트럭 한대 없었다. 주말이 막 지난 월요일은 배송 물량이 적다는 게 이곳 택배 기사들의 증언이다. 김용수(가명)씨만 혼자 남아 트럭에 박스를 싣고 있었다.

김씨는 "추모분향은 지난 토요일(4일)에 마쳤다"고 했다. 택배 터미널 정문 옆에 조그마한 현수막 두개가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현수막엔 "故 이OO 대리점장,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 적혀있었다.

이곳에서 9년 간 택배대리점을 운영해 온 이씨는 일주일 전인 지난달 30일 오전 11시53분쯤 김포시의 한 아파트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급하게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치료 중 결국 숨을 거뒀다. 당시 이씨는 현장에 A4 용지 2장 분량의 유서를 남겼다. 유서에는 택배노조의 괴롭힘을 견딜 수 없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유족 측은 유서를 공개했다. A씨는 유서에 "처음 경험해 본 노조원들의 불법 태업과 쟁의권도 없는 그들의 쟁의 활동보다 더한 업무방해, 파업이 종료됐어도 더 강도 높은 노조 활동을 하겠다는 통보에 비노조원들과 버티는 하루하루는 지옥과 같았다"고 썼다.

해당 대리점에는 배송기사 17명이 근무한다. 그중 12명이 민주노총 택배노조에 속한다. 이씨는 유서에 지회장을 비롯한 조합원 12명의 이름을 적고 "너희들로 인해 버티지 못하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한 사람이 있었단 것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직격했다.


"노조 '한번 죽어봐라'는 식"...점주, 아내와 일요일까지 택배 옮겨


지난 6월말 숨진 이씨가 운영하는 택시대리점 컨베이어 밸트에 택배 박스가 쌓여있다. 점주인 이씨와 아내 박씨, 비노조원 6명은 5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3달 동안 매일 밤 10~11시까지 남아 이렇게 쌓인 짐을 처리해야 했다. /사진=독자 제공.

김씨는 당시 상황을 전하며 "(점장님이) 힘들다고 무척 얘기했다"고 했다. 대리점에 일하는 12명 노조원은 지난 5월 1일 조합원 50여명과 '김포지회'를 신설하고 같은 달 중순부터 사실상의 태업에 돌입했다. "배송비 책정이 잘못됐다"며 부피가 크고 무거운 생수 등 이른바 '똥짐'의 배송을 거부한 것이다.

택배 상자의 무게와 크기를 재는 기계가 도입돼 배송을 완료한 후 단가를 수정할 수도 있지만 노조원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씨는 "태업이 끝난 8월 말까지 3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컨베이어 밸트에 똥짐이 쌓여있었다"고 했다.

노조원들이 손을 놓자 점장인 이씨가 나서야 했다. 하는 수 없었다. 김씨는 이 점장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주 일요일까지 똥짐을 혼자 날랐다"고 말했다. 혼자로는 역부족이니 나중에는 아내 박씨도 거들었다. 비조합원들도 두 팔을 걷어부쳤다. 김씨는 "점장이 혼자 일하는 모습을 매일 보니 마음이 아팠다"며 자발적으로 점장을 도운 것이라 했다.


"직원 자녀들에도 용돈 1만원씩… 고마웠다"


9일 2일 경기도 김포시 한 택배업체 터미널에 고인의 분향소. /사진=뉴시스

비노조원들이 이씨의 돕고 나선 건, 이씨의 평소 모습이 이들 마음을 움직였기 때문이다.

김씨는 세상을 떠나기 전 이 점장 모습을 떠올리며 "놀라울 정도로 인간적인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김씨는 "계절마다 회식을 하는데 돼지고기나 회를 먹은 적이 없다. 점장은 한우 등 좋은 것을 주려 했고 항상 가족과 함께 식사했다"고 떠올렸다.


직원들 자녀에게도 따뜻했다. 김씨는 "1만원 지폐를 20~30장씩 두둑히 갖고 다니다가 어느 직원의 자녀든 만나면 1만원씩 줬다"며 "부모 입장에선 그게 그렇게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김포 지역의 따른 택배점장도 비슷한 말을 했다. 익명을 요구한 점장 A씨는 이씨를 두고 "진짜 착한 친구였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이 노조에 가입하기 전까지 그들 관계는 전혀 나쁘지 않았다"며 "노조원 중에는 이씨와 같이 축구, 골프 등 운동 다니던 직원도 있었다"고 말했다.


거대 노조와 1명의 택배점주…"게임이 안됐다 "


김태완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전국택배노동조합 수석부위원장이 9월 2일 대리점 소장 사망에 대한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스1

전국택배노조는 지난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모씨(40)의 죽음과 관련해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노조는 해당 대리점 노조가 설립된 5월1일 이후 4개월간의 단체 SNS 대화방 내용을 전수조한 결과, 숨진 이씨에게 모멸감을 줄 수 있는 글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이 입수한 택배노조 김포지회의 단톡방 내용에는 지난 6월 '소장이 쓰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에 "나이롱 아니냐" "휠체어는 안 타냐" 등의 조롱과 함께 "XXX끼 XX신이" "XX끼" 등 욕설이 난무했다.

노조는 "욕설과 비방 등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조치할 예정"이라 했지만 결국 이씨가 목숨을 잃은 점을 두고 노조 '책임론'이 제기된다.

김씨는 "노조가 거대 회사를 상대로 싸우는 건 좋다"면서도 "우리는 직원 18명의 작은 회사이고 대리점주도 한명의 직장인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이 안 된다"며 "그러니까 그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겠나"라고 말했다.

택배점장 A씨도 "말이 점장이지 영업사원과 다를 것 없다. 매일 공장을 돌아다니며 고객사로 섭외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산품 등 시한성 상품은 당일 배송하지 않으면 사고"라며 "가뜩이나 회사가 작은데 노조가 집단적으로 택배 배송을 멈추면 당연히 타격이 크다. 고객사가 계약을 끊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택배점주연합회 측은 이달 초 변호사를 선임하고 유족 측 의사에 따라 고소·고발 등 법적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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