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판] "왜 쉬는데?" 사유 알려줘야 연차 승인해준다는 팀장

머니투데이 정영희 법률N미디어 에디터 | 2021.09.04 05:00
본문 내용과 관련 없는 이미지입니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유튜브 '워크맨' 커뮤니티
직장인 A씨는 최근 팀장 B씨와 다퉜습니다. B씨가 특별한 사유 없이는 연차 사용을 승인해주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B씨가 연차 사유를 꼬치꼬치 묻는 통에 A씨는 여간 답답한 게 아니었습니다. 참다 못한 A씨가 "그냥 피곤해서 쉬고 싶다"고 말하니 B씨는 다짜고짜 퉁을 줍니다. "누군 안 피곤하냐? 누군 쉴 줄 몰라? 그런 이유론 연차 못 써."라고 쏘아붙이더니 연차를 쓰지 못하게 합니다.

결국 폭발하고야 만 A씨, B씨보다 직급이 높은 상사에게 찾아가 B씨가 연차를 승인할 때마다 매번 이유를 묻고 그 이유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쉬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이후 B씨는 시말서를 썼고 A씨 팀의 휴가 관리도 다른 직원이 맡게 되는데요. 연차 사용 때마다 사유를 캐묻는 B씨, 법적으로 보면 어떨까요?

◇"연차 사유 뭐라고 쓰지?"…고민 안 해도

연차 유급휴가는 법으로 보장된 근로자의 권리입니다. 근로기준법은 1년간 80% 이상 출근한 근로자에게 15일의 유급휴가를 줘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근로 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또는 1년간 80% 미만 출근한 근로자에게도 1개월 당 1일의 연차 유급휴가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사측은 연차 사용에 대한 사유를 요구하거나 특정 시기를 정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정당한 이유 없이 연차유급휴가를 거부했음이 밝혀지면 사용자(고용주)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회사가 합법적으로 직원의 연차 승인을 거절하는 예외적인 상황도 있긴 합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라 근로자가 청구한 시기에 휴가를 주는 것이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때 회사는 그 시기를 변경할 수 있습니다. 이때 어떤 경우가 '사업 운영에 막대한 지장이 있을 때'에 포함되는지가 문제가 됩니다.

통상 근로자가 지정한 시기에 휴가를 준다면 그 사업장의 업무 능률이나 성과가 평상시보다 현저하게 저하돼 영업상 불이익이 상당히 클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이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크게 △근로자가 담당하는 업무의 성질 △남은 근로자들의 업무량 △사용자의 대체 근로자 확보 여부 △다른 근로자들의 연차휴가 신청 현황 등을 고려한 뒤 회사의 연차휴가 시기변경권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데요.

현재 법원은 이를 매우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습니다. 특정 기간에 대부분의 근로자가 한꺼번에 휴가를 떠나는 바람에 대체 인력이 부족하다거나, 직원이 하루 연차도 못 쓸 정도로 업무량이 급격히 늘었다고 해도 회사는 사전에 이를 모두 예상하고 대체인력 확보 등 다른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즉 아예 대체인력을 통한 업무처리나 대체인력 확보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객관적 사정이 있어야만 회사가 나서서 근로자의 휴가를 미루거나 날짜를 옮길 수 있는 거죠. (서울행정법원 2016. 8. 19. 선고 2015구합73392 판결)


아울러 취업규칙에 연차 휴가 기간이 아예 정해져 있는 경우에도 근로자의 휴가 날짜는 조정될 수 있는데요. 특정 시즌에 일이 갑자기 몰리는 일부 직종은 근로계약 체결 당시부터 근로자의 동의를 받아 이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근로자 울리는 '연차 갑질' 대다수가 불법

연차를 승인해주지 않는 B씨에 화가 난 A씨가 "그럼 어떨 때 연차 쓸 수 있냐?"고 묻습니다. B씨는 이에 "너 지금 대드냐"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요. 이유 없이 연차 사용을 못 하게 하고 강압적인 자세로 일관하는 B씨의 모습, 직장 내 괴롭힘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직장에서의 지위나 우위적 관계를 이용해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받는다면 사측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분리한 뒤 지체 없이 사안을 조사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려야 합니다.

괴롭힘이 있음을 알면서도 묵인하거나 늑장 대응을 하면 사업주가 처벌받게 됩니다. A씨의 사연에선 B씨가 곧바로 업무 배제 등의 제재를 받았으므로 별도의 법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사실 이밖에도 많은 회사들이 연차 사용을 두고 근로자와 갈등을 빚곤 합니다. 이른바 '연차 갑질'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직원들의 허락을 받지 않고 공휴일을 연차로 대체하거나, 연차 제도 자체가 없이 연간 제공돼야 할 연차 일수만큼의 수당을 모두 모아 연초에 지급하는 회사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휴일을 연차 일수에 포함하는 등 연차 사용 방식을 변경하려면 사측과 근로자의 협의가 선행돼야 합니다. 또, 연차유급휴가를 사전에 금전으로 정산하는 사전매수협약은 아예 무효이므로 연차수당을 미리 당겨받는 대신 아예 쉬지 못한다고 못 박는 행위는 불법입니다.

이밖에도 이른바 '연차 갑질'에 해당하는 절차들의 다수가 현행 근로기준법이나 노동법 위반인 경우가 많습니다. 연차 사용 권리를 침해당했다면 그 즉시 관련 기관에 피해구제를 신청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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