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님 '입모양' 봐야하는데…PPT만 떠 있었다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 2021.08.28 04:30

[미완성 수업 - ①] 장애학생 배제하고 '수업 끝', 수어통역·속기 지원 미비…학교간 편차 심해, "매뉴얼 필요"

편집자주 | 잔혹한 '비대면 수업' 이야기. 교수가 강의를 완벽하게 해도, 학생들이 모두 출석해서 들어도, 영상이 끊기지 않고 나가도, 채 완성될 수 없었던.

/사진=뉴스1(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오후 3시, 온라인 강의가 시작됐다. 전공 수업이었다. 대학교 1학년인 이슬기 학생(가명)은 긴장했다. 그는 청각 장애가 있었다. 청각 장애인들은 수어(손의 모양과 위치로, 시각적으로 의미 전달)나 구화(입술의 움직임과 표정, 소리를 조합해 음성 언어로 이해), 필담(문자 언어로 주고 받는 대화)로 소통한다. 전부 수어만 하는 게 아니다. 슬기씨는 구화를 주로 썼다. 그러니 교수님의 입모양과 표정을 보는 게 중요했다.

그러나 그 교수님은 이 사실을 모르는듯 했다. 어떤 때는 PPT 화면만 띄웠다. 입모양을 봐야할 교수님이 사라졌다. 또 다른 때는 PPT 화면이 크게, 교수님 얼굴이 작게 보였다. 이 역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리고 다른 날엔, 교수님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수업이 다 끝났어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끝난 게 아녔다. 그를 위한 수어통역도, 속기지원도 없었다. 제대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아녔다.

이것은 배려가 아니라 당연한 '권리'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 14조, '교육책임자는 재학 중인 장애인의 교육 활동에 불이익이 없도록 한다, 교육보조인력과 수어통역, 문자통역 등을 제공해서'. 그러니 슬기씨는 교육 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거였다.



이것, 저것, 사진, 영상


/사진=뉴스1(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 수업이 계속되면서 실제 벌어진 일들이다.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에게도, 비대면 수업은 힘들다. 대학교 2학년 김우섭 학생(가명)은 시각 장애인이다. 그리고 온라인 강의를 들을 때 교수님은 이런 표현을 많이 쓰곤 했다. "이 동영상에서 보면", "저 사진에서 얘기하는 건"이라고. 평소엔 그래도 이를 설명해줄 장애학생 도우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부재했다. 김씨는 "지시어와 시각 자료가 나오면, 이해할 방법이 도저히 없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온라인 수업과 병행되는 채팅도 곤혹스럽다. 송경은 학생(가명) 얘기다. 교수님이 채팅으로 이야기하면 채팅창을 찾아가 읽어야하는데, 실시간으로 진행되다보니 쉽지 않다. 교수님이 말하고, 학생들이 채팅으로 메시지를 남기고, 여러 개를 동시에 병행하려 하면 정신이 없다고 했다.
/사진=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누군가에게만 완성된 것 같았던 '미완성 수업'은 계속됐고, 자력으로 완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니 어떤 학생은 대학생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에 급기야 이런 글도 남겼다.

"수업을 못 들으니 죽고 싶다. 소리를 못 들어 반 강제로 독학한다. 내 등록금이 좋아서,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지른다."



그런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


/사진=뉴스1(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학교마다 지원 편차가 있다. 예컨대, 청각장애 학생들 경우엔 수어통역과 실시간 속기가 함께 지원돼야 수업을 제대로 들을 수 있다. 한국장애인재활협회에 따르면, 서울대엔 수어통역이 없고 대구대는 실시간 속기와 수어통역을 제공한다. 전문 속기사가 가장 좋지만 인력이 부족하다.

청음복지관이 마련한 청각장애학생들간의 대화에선 이 같은 편차가 여실히 드러났다.

김하정씨(연세대 아동가족학과) : "실시간 줌 강의를, 속기사가 어플로 속기해줘. 녹화 강의는 속기사가 미리 다 듣고 구글 드라이브에 올려주고."

한채정씨(경희대 행정학과): "부럽다. 난 대필 도우미(학생) 도움을 받거든. 그래서 바로 받아보기 어려워. 당일 주는 게 원칙이지만, 다음날이나 다다음날 주거나 심한 사람은 일주일 걸리기도 해."

각 학교에 마련된 장애학생지원센터도 마찬가지. 직원 1명당 담당하는 중증 장애 학생 비율이 다르단다. 최범준 한양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차장은 "상위 5개교는 중증 장애 학생 25명을 직원 1명이 맡고, 하위 5개교는 학생 5.4명을 맡는다"고 했다. 어느 학교에 입학하느냐에 따라, 장애 학생이 지원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디에서도 제대로 교육 받기 위한, '매뉴얼' 필요


/사진=뉴스1(기사 내용과 관련 없습니다)
학생들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서울대학교 장애인권동아리 위디는 '매뉴얼' 마련에 주목했다. 어느 학교는 되고, 어느 학교는 안 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 환경에서 정당한 교육을 받게 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내용을 한국장애인재활협회가 마련한 청년포럼을 통해 발표했다.

시각장애를 가진 학생이 있다면, 예컨대 이런 수업 매뉴얼이 필요하다.

교수는 수업 진행과 동시에 채팅창을 활용하지 않고, 채팅창만 단독으로 쓴다. 모든 수업 참여자는 채팅창에서 불필요한 대화를 하지 않는다. 시각장애 학생이 수업에 있는 경우 모든 수업 참여자는 꼭 채팅창에서 진행해야 할 대화, 질문, 토론이 아니라면 구두로 한다.

수업에 임하는 교수들의 인식이 바뀌어야 한단 주문도 나왔다.

손지영 대전대학교 교수는 해당 포럼에서 "예전에는 학생들을 동질적인 걸로 봤다면, 지금은 장애 학생, 외국인 학생까지 정말 다양한 요구와 특성을 가지고 있다"며 "교수들은 이 다양한 요구를 내 수업에서 충족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게 교수의 책무성이자 역량"이라고 했다. 이어 "장애학생들은 이 기본적인 권리를 당연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교수와 학생들은 정말 우리 책임이라 생각하고 바뀌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장애학생도우미, 10명 중 6명은 "뭔지 모르겠다"…지원 절실


/그래픽=대학 온라인 커뮤니티 에브리타임
또 다른 문제는 장애학생들을 도울, 장애학생 도우미에 대한 관심 부족이다.

장애학생 도우미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돕는 제도다. 강의 내용 필기를 해서 전달하거나, 학교 내 이동을 할 때 돕는 등의 역할을 한다. 같은 수업을 꼭 듣지 않아도 공강 시간이 맞으면 지원할 수 있다. 근로장학금과 봉사 시간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가 있는지 모르는 학생들이 여전히 많은 걸로 조사됐다. 기자와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인 에브리타임이 대학생 46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0.2%가 "장애학생 도우미 제도를 모른다"고 답했다. 참여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97.9%가 "없다"고 했다.

그러니 매 학기 도우미 모집에 허덕인다. 추가 모집을 계속해야 한다. 이에 학교도 시급을 올리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최범준 한양대 장애학생지원센터 차장은 "이번에 시급 9000원에 더해, 국가근로장학금 50%를 추가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며 "그래도 3분의 1 정도만 모집했다. 혜택이 늘어난 것에 비하면 원활히 되고 있지 않다"고 했다. 2학기는 9월 1일부터 수업을 시작하지만, 9월 말까진 모집할 예정이다.

코로나19로 온라인 강의가 많아지며 도우미 지원이 더욱 절실한 상황. 장애학생 도우미를 하려면, 각 대학교 장애학습지원센터에서 지원하면 된다.
한양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가 학생들에게 보낸 문자. 장애학생들의 수업에 큰 도움이 되지만, 늘 도우미 모집이 쉽지 않아 허덕인다./사진=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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