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이는 고소·고발에 경찰은 '번 아웃'…"수사관 꿈도 포기"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 2021.08.28 05:13

[MT리포트]고소고발시대③한번에 사건 수십 건씩… 수사권 조정으로 바빠진 경찰

편집자주 | "너, 고소!" 과거 한 변호사가 자신을 홍보하기 위해 만든 이 문구는 고소·고발이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법적 절차가 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내년 선거를 앞두고 고소·고발은 정치판에서도 일상이 됐다. 시민단체들까지도 진보와 보수 성향으로 나뉘어 상대 진영의 대선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고발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고소·고발이 난무하면서 수사종결권을 가진 경찰들에게 업무가 몰리고 이 때문에 국민들이 받을 법률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된 점은 부작용으로 꼽힌다. 경찰 한 명이 1년에 맡는 수사만 88건에 달하는 지금, 개선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봤다.

/삽화=이지혜 디자인 기자

# 수도권에 있는 한 지구대에 근무하는 경찰관 A씨는 지난 3월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서 면접제의를 받았다. A씨는 의경 시절부터 수사관이 되고 싶어 면접에 응했고 면접관은 "의미있는 일을 할 것"이라며 A씨를 뽑겠다고 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그는 지구대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주변 동료 경찰들은 A씨를 말리며 "주말과 휴일에 쉴 생각은 말라"고 조언했다고 한다.

일선 경찰서 수사과에서 일하는 수사경찰들이 시름하고 있다. 1인당 담당 사건수는 수십건이 넘었고 주말과 휴일도 반납했다. 그들은 "사명감을 갖고 일한다"면서도 "살인적 업무 강도"라고 혀를 내둘렀다.



경찰 5000명 vs 사건 50만건…"살인적 업무"



28일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1~6월 경찰이 접수한 수사사건은 21만2115건이다. 이를 수사관 수대로 나눠 1명이 맡은 평균 사건 수를 계산하면 38.7건이 나온다. 4~5일에 1건씩 새로운 사건을 접수받는 셈이다.

수도권 지역 수사과 경제범죄수사팀에 근무하는 B수사관은 "주말 출근은 기본이고 평일엔 아침 8시30분에 출근해 밤 9시에 퇴근하는 게 일상"이라고 말했다.

B수사관은 "대체로 수사관 한명 당 사건 20~30개를 맡고 있어 야근은 필수"라고 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C 수사관도 "사건이 끊임없이 들어오다 보니 한꺼번에 맡고 있는 사건이 20건"이라고 했다.

수사 부담이 늘어난 이유를 두고 일부 수사관은 검·경수사권 조정을 언급했다. A씨는 "아직 과도기다 보니 변동 사항도 있고 서류 작업 등 일 자체가 늘었다"며 "다들 힘들어한다"고 말했다. 다른 수사관도 "경찰을 향한 눈높이가 높아진 게 사실"이라며 "부응하려다보니 업무부담도 늘었고 지난해보다는 일이 많다"고 했다.


사이버범죄는 상황이 더 심하다. 사이버범죄 수사관 1명이 1년동안 맡는 평균 사건 수는 2017년 197.7건에서 지난해 248.5건으로 26% 가량 늘었다.

일선서 사이버범죄과 수사경찰관은 "한번에 사건을 20건씩 맡는건 살만한 수준"이라며 "사이버 쪽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50~60건씩 맡고 심할 경우 100건을 담당하는 경찰관도 있다"고 했다. 이어 "올해는 특히 업무강도가 살인적이다"라며 "명예훼손이나 로맨스스캠(사기) 등도 늘었다"고 말했다.



수당 3만원 더 준다지만…경찰들은 "무의미"



지난 24일 경찰부대원들이 광화문 일대에서 이동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사진=뉴스1

상황이 이렇다보니 경찰 내부에선 수사부서를 기피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수사관 자리를 거절했다는 A씨는 "어릴 때는 수사관이 꿈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라며 "현실적으로 수사과로 옮겨갔다면 녹초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경찰 지도부가 이런 분위기를 모르는 건 아니다. 경찰청은 현재 '범죄수사 수당'을 기존 4만원에서 7만원으로 증액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범죄수사 수당은 일선 수사관들에 한달에 한번 지급하는 수당이다.

그러나 현장 반응은 무덤덤하다. B수사관은 "일주일에 60시간씩 일하는데 봉급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수당이 조금 오른다고 살만해지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또다른 수사관도 "수당 인상은 크게 의미가 없다"며 "그냥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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