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지' 폭탄 맞은 금감원..."코인도 폐업대책 내놓아라"

머니투데이 김하늬 기자, 정혜윤 기자 | 2021.08.21 06:05
FIU(금융정보거래원)와 금융감독원이 국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 사이트(이하 거래소) 40여 곳에 영업종료 안내문과 함께 '폐업시 환급 절차'와 같은 폐업 대책을 제출하라는 공문을 일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내달 24일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개정안에 따른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 기한을 한 달 넘게 앞둔 상황에서 이달 30일까지 폐업 대책을 회사 내규에 담아 금융당국에 제출하라고 한 것이라 논란이 예상된다.

20일 가상자산 업계 등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자금세탁방지실은 지난 19일 '가상자산취급업소 신고 업무 관련 협조 요청사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금감원은 거래소가 △신고 요건을 갖추지 못해 신고를 못하거나 △신고접수 후 신고 수리가 되지 않거나 △신고수리 후 신고 말소되는 등의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 경우 이용자 보호를 위한 사전 조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공문에는 금감원이 직접 작성한 '이용자 지원 절차 권고(안)'이 첨부돼 있다. 이를 참조해 폐업에 따른 영업 종료 공지, 예치금 중단 및 출금 지원, 피해 구제절차, 가상자산 수탁기관 양도 및 이전대책 등을 회사별로 내규에 담으라는 것이다.

금감원은 권고안을 반영한 내규를 열흘 안에 작성해 이달 30일까지 제출해달라라고 했다. 또 원활한 신고 심사를 위해 사업추진계획서 내용도 포함해 제출해달라고 했다.

권고안에 따르면 신고수리가 되지 않아 폐업해야 하는 거래소는 최소 7일 전에 폐업 사실을 공지하고 거래 및 회원가입 조치도 종료해야 한다. 정리매매 기간도 7일이 보장돼야 한다. 거래 지원 종료일 이후 최소 30일까지는 이용자들이 출금할 수 있도록 지원 시스템을 유지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영업 종료로 이용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구제절차도 마련해야 한다. 거래지원 종료 코인에 대한 처리 방법도 거래소가 각각 안내해야 한다. 인터넷 홈페이지가 폐쇄된 후에도 고객센터 등 연락처를 남겨야 한다는 항목도 있다.

갑작스러운 가이드라인에 가상자산 업계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금융위 신고 준비일이 3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영업종료 대책을 먼저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직 금융위에 신고 요건을 갖춰 신고한 업체는 한 곳도 없다. 도규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이날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재 신고한 업체는 없고 8월 이내 가상자산 거래소 1~2개 업체가 신고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신고 절차가 더딘 이유는 ISMS(정보보호 관리체계) 인증을 비롯해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받는 데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금융위 조사에 따르면 현재 20여개 업체가 ISMS를 통과했다. 하지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을 확보해야 지금처럼 원화 입출금 거래가 가능한데 이를 확보한 곳은 업비트, 빗썸, 코인원, 코빗 등 4곳 뿐이다.


'폐업 대책' 명분은 이용자 보호라지만…실제는 '구조조정'


(서울=뉴스1) 유승관 기자 =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본원. 2020.12.8/뉴스1
금융당국이 가상자산(암호화폐) 거래소에 '영업 정지'에 따른 사후 대책을 약관에 담아 금융감독원에 제출하라고 요구한 데는 '이용자 보호'라는 명분을 달았다.

가상자산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서 영업하고 있는 암호화폐 거래소는 200여개에 달한다. 토종거래소도 있고 해외거래소의 지사나 한국어 홈페이지만 운영하는 방식이다.


20일 현재 금융당국에 따르면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을 받았거나 준비 중인 거래소는 30여개. 금융 당국은 이들 30여 곳만 우선 합법 영업을 할 '의지'가 있다고 간주하고 나머지 거래소에 대해 '질서 있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내달 24일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른 암호화폐 거래소 신고수리 기한이 지나면 소수 거래소만 살아남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음지에 있는 코인거래소 이용자를 위한 '문닫기 수순'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소위 '벌집계좌(법인계좌를 만들어 그 안에 여러 개의 개인 가상계좌를 연결하는 형태의 계좌)'를 운영하던 거래소의 경우 은행 실명계좌를 구하지 못하면 최소 원화마켓 영업은 정지된다"며 "그렇다면 이후 대책이 순서대로 나와야 하는데 현재는 환불과 코인 보관, 지급 등에 대해 대부분 계획이 없다는 게 도리어 충격이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특금법에 따른 사업자 신고를 접수하는 거래소들도 모두가 '나는 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만 품고 있다"며 "신고수리가 안 될 경우 일부 또는 전체 사업을 종료해야 하는데 이에 대해선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추후에 신고 접수를 받은 뒤 심사 과정에서도 폐업대책을 얼마나 잘 세웠는지도 거래소 (적정성)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최근 금융감독원을 덮친 '머지런'(머지포인트+뱅크런) 사태도 긴급 공문 발송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돈처럼 쓰이던 선불 충전금 '머지포인트'가 하루 아침에 무용지물이 됐는데 운영사인 머지플러스는 전자금융업자 등록을 하지 않고 영업을 해왔다. 이 같은 제도적 허점 때문에 금감원은 '머지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었다. 머지플러스와 유사한 등록 선불업체가 65개나 더 있다. 금감원은 머지 사태가 터지고 나서야 정확한 금융소비자 보호실태 파악에 나섰다.

즉 '피해자 보호 대책'에 대한 걱정이 암호화폐까지 옮겨온 셈이다. 사실 지난 4년간 금융 당국은 암호화폐는 '금융'이 아니라며 '권한 밖' 업무로 간주해 왔다. 지난해 4월 가까스로 통과된 특금법 개정안에 암호화폐 거래소가 포함되고 나서야 자금세탁 방지 차원의 '관리 감독' 업무만 FIU(금융정보분석원) 관할로 넘어 온 상태다.

공문을 받은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2017년 이후 그동안 수많은 (가상자산 관련) 문의를 해봐도 소관사항이 아니라며 외면하던 당국이 갑자기 회원 약관에 금융 피해자 보호 대책을 넣으라는 공문을 발송했다"며 했다.

또 다른 거래소 임원은 "내부 규정에 이용자 보호 대책을 자율적으로 반영하라고 '권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약관에 반영한 뒤 그 결과를 금감원에 '제출'하라고 하고 기한까지 정해줬다"며 "사실상 (권고가 아닌) 명령이자 강제"라고 했다. 내달 24일 이후 신고서를 접수하면 심사를 하는 게 금감원인데 금감원이 보낸 공문을 과연 거래소가 무시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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