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국의 아포리아]좋은 삶, 좋은 정치

머니투데이 김남국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 2021.08.19 02:05

편집자주 | 아포리아는 그리스어의 부정 접두사 아(α)와 길을 뜻하는 포리아(ποροσ)가 합쳐져 길이 없는 막다른 골목, 또는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여 진실을 규명하기 어려운 난제를 뜻하는 용어. '김남국의 아포리아'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문제에 대해 지구적 맥락과 역사적 흐름을 고려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해석과 대안을 모색한다.

김남국 교수
우리는 때로 정치를 혐오하고 때로 정치에 열광한다. 온통 정치에 휩싸여 있으면서도 정작 나 자신은 정치에 무관심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정치가 무엇인지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좋은 정치에 대한 답이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과 연관돼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좋은 삶의 규정은 개인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개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는 관용을 필요로 하고 차이를 인정하는 관용에 의해 사람들의 고유한 개성이 유지된다.

다시 말해 우리의 삶은 우리가 선택할 수 없었던 우연(contingency)에 의해 차이가 생겨나고 그 차이를 넘어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려는 열정에 의해 독특해진다. 즉 자신을 규정하는 우연을 뛰어넘고 무한(infinity)을 지향하는 열망이 더해져 고유한 내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자신의 가치와 기준에 따라 고유한 나의 존재를 추구해가는 것이 좋은 삶이라면 개인의 다양한 선택을 존중하고 그 선택의 실현을 적극 지지하는 정치가 좋은 정치일 것이다.

개인은 항상 너무 작아서 거의 눈에 띄지 않거나 강한 집단 소속감 아래 개인을 개인 이상의 무엇이라고 상상하려는 유혹이 있다. 민주주의는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을 주체로 해 '다수결의 원칙'과 '소수의 권리보호'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각자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해가는 제도적 장치이자 절차다. 원래부터 지루하고 느린 민주주의의 길은 끊임없이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로 타락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즉 민주주의는 민중주의와 과두제 사이의 좁은 길이자 우리의 인내를 바탕으로 유지되는 협소한 가능성인 것이다.

오늘날 이처럼 좁은 길로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은 포퓰리즘의 도전이다. 포퓰리즘은 정치인들이 권력을 사유화하면서 주권자와 대리인 사이가 멀어졌을 때 등장한다. 대체로 원래 네 권력이었던 것을 기득권층으로부터 빼앗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감정에 호소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기득권층과 민중,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사이의 적대적인 선동을 통해 분열을 획책하고 그 분열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확장해간다.


포퓰리즘의 결정적인 해악은 우리가 어렵게 이룩한 민주적 절차와 제도를 파괴한다는 점이다. 절차를 무시한 권위주의적 의사결정을 신속한 결단으로 홍보하고 불평등과 양극화를 향한 사람들의 불만을 부추기면서 현금을 살포한다. 이들은 공동체의 앞날과 공동선(common good)에 대해 전혀 고민하지 않는다. 놀랍게도 보편적 평등주의를 내세우는 포퓰리즘이 민족주의와 결합했을 때 파시즘이 됐고 인종주의와 결합했을 때 나치즘이 됐다.

세계적으로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 같은 좌파 포퓰리즘이나 헝가리와 폴란드의 극우 민족주의 정권 같은 우파 포퓰리즘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의 상황도 점점 이들과 닮아간다. 오늘의 상황과 비교하면 김구의 아름다운 문화국가나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처럼 민족의 생존을 위해 분투하던 시기에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변방에서 미래에 모두가 따르게 될 지구적 보편을 대한민국의 길로 제시한 앞 세대의 열정과 통찰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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