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해충돌방지법 시행의 서막을 열며

머니투데이 이정희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 2021.08.18 05:50
/사진제공=국민권익위원회
지난 3월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태가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다. 공직자들이 공공기관의 내부 정보를 이용해 집단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해왔다는 사실은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이는 공직사회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공직자들이 공적 지위를 악용해 부정한 사익을 추구하는 것을 막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그 결과 법안이 발의된 지 9년만인 지난 4월 29일 공직자의 직무수행과 관련한 사적 이익추구를 금지하는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이하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의 문턱을 넘었다.

이해충돌방지법은 공직자가 해야 할 5가지 신고의무와 하지 말아야 할 5가지 제한·금지 행위를 담고 있다. 예를 들어, 공직자는 직무와 관련된 부동산을 보유하고 있거나 매수할 경우 이를 신고해야 하며, 가족을 채용하거나 공공기관 물품을 사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를 위반할 경우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많은 국가들은 오래 전 이해충돌방지법을 도입해 시행해 왔다. 영국, 프랑스, 캐나다 등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물론 라트비아, 몽골 등 개발도상국들조차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에 대한 중요성을 인지하고 관련 법·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 의회는 1962년 케네디 정부가 제정한 이해충돌방지법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법'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과거 말레이반도 최남단에 위치한 작은 국가였던 싱가포르는 리콴유 전 총리의 지도력에 힘입어 세계 반부패 모델인 탐오조사국(CPIB)을 설립하는 등 강력한 반부패 정책을 실시했다. 그 결과, 국가별 평가에서 2020년 기준 국가청렴도(CPI) 3위, 기업하기 좋은 나라 2위, 국가경쟁력 1위의 나라가 됐다. 관료들의 부정부패를 처단하는 강력한 법 집행이 국가의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우리나라 역시 공직자의 이해충돌을 방지하는 제도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해충돌방지와 관련된 규범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고려 선종 9년에 '오복(五服) 친족에 대한 상피법'이 제정됐는데 이는 8촌 이내의 친족들이 한 부서에 근무하면서 사익을 나눌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이었다. 상피법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 태조 때 반포한 '육전(六典)'에 등재됐으나 일제강점기에 폐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따라서 이번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은 우리 조상들의 청백리 정신을 이어간다는 의미가 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길목에서 서성거리는 주요 이유로 늘 공직자의 청렴 수준이 서구 선진국의 그것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점이 지적돼 왔다. 이해충돌방지법이 규정하고 있는 10개의 행위기준과 신고 대상이 되는 16가지 직무 등 세부적인 내용들을 잘 숙지해 이해충돌방지법이 공직사회에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하고 우리 모두가 잘 사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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